나무가 있는 풍경처럼

-제16회 열린아동문학상 동화수상 소감

by 고훈실


저는 나무를 좋아합니다. 깊이 존경하고 흠모합니다. 나무를 언제부터 사랑했는지 알 수 없지만 행복하거나 슬프거나 덤덤하거나 하는 제 모든 일상의 풍경에 나무가 있습니다.


어릴 적, 창밖에 보이는 먼 동네의 나무 한 그루가 저를 끌어당겼습니다. 저는 기어이 그 나무를 찾아갔지요, 오래된 아카시나무였습니다. 실루엣으로 볼 땐 근사했는데 가까이서 보니 그저 평범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그 나무가 좋았습니다. 제 마음속 깊이 들어와 있었거든요.


저는 나무를 끌어안고 인사했습니다. 만나서 반갑다고, 매일 너를 바라본다고….


그래서 열린 아동문학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 뛸 듯이 기뻤습니다.

드디어 동동숲에 제 나무가 우뚝 서니까요. 생각만 해도 설레고, 두근거리고, 입꼬리가 올라갑니다. 제게 수상의 기회를 주신 선생님들께 깊이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당선작 ‘서귀포의 환상’은 이중섭 화가의 그림 제목이기도 합니다. 오른손을 번쩍 든 아이가 새를 타고 날고 어른들은 복숭아를 나릅니다. 복숭아 가지에 매달린 아이와 바닥에 느긋하게 쉬는 아이, 복숭아를 가지째 들고 있는 두 아이의 모습이 파란 서귀포 바다를 배경으로 환상적으로 펼쳐지는 그림입니다.

이 그림을 마주했을 때 저는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이중섭 화가의 일생 중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 이 한 장의 그림에 오롯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죠. 두 아들과 아내, 네 식구가 함께하고자 했던 열망은 고작 2년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그의 서귀포 시절은 가난했지만 찬란한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중섭과 그의 그림을 제 동화에 초대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자료를 찾고 이야기의 얼개를 구상했습니다. 주인공으로 6.25가 전 국토를 휩쓴 어려운 시기에 그림을 좋아하는 제주 소년 응수를 떠올렸습니다. 응수 아버지는 할머니 말대로 환쟁이고 할머니 등쌀에 그림을 포기한 채 뭍으로 떠난 사람으로 설정했습니다. 그래야 응수의 그림 솜씨가 뛰어난 개연성이 확보되니까요. 그때 그시절엔 살아남는 게 지상 과제였으므로 응수 할머니는 모질고 독한 캐릭터로 잡았습니다. 응수 할머니에겐 좀 미안했지만 그 독함마저도 손주에 대한 사랑의 한 방법이란걸 독자들은 이미 감으로 알아챘겠지요.


이야기의 동력은 응수와 이중섭 화가의 만남으로 잡았습니다. 사제지간이 된 두 사람이 그림 그릴 종이가 떨어지고, 종이를 구하려는 절박함이 여러 에피소드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수탉 사건과 고방에서의 보퉁이를 발견한 일, 할머니의 오해와 두 사람의 결별이 자연스레 이어지도록 엮었습니다. 마침내 담배갑 은지마저 똑 떨어진 이중섭을 더욱 코너로 몰아 절정을 향해 치닫게 했지요. 응수는 주저없이 보퉁이를 내놓고 거기서 나온 화폭에 중섭은 자기 마음속 이상향을 맘껏 표현하게 됩니다.


세상을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라는 중섭의 철학이 그림 속에 오롯이 구현되는 순간, 응수는 비로소 아버지와 화해합니다. 이는 응수를 둘러싼 비합리적이고 모순적인 세상과의 결별이자 복숭아즙처럼 달달한 환상세계와의 찰나적 만남이기도 합니다.

응수에게 순간이나마 그런 기쁨을 주고 싶었습니다.


더불어 이중섭 화가에게 오마주의 마음을 바칩니다.


저에게 늘 나무가 되어주는 고마운 글 인연들에 깊이 감사합니다.

느티나무처럼 시원한 그늘이 되어주는 나의 가족들 많이 사랑하고 고맙습니다.



먼나무와 피라칸타의 붉은 열매가 새들을 불러 모으는 2월 어느날 입니다. 나뭇가지에 철학자처럼 앉아 있던 말똥가리의 옆모습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내 책이 되어주는 나무에게 미안하지 않은 글을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고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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