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바퀴 달린 집을 만나다 / 프랑크푸르트

프랑크푸르트 (Frankfurt)

by 다모토리
무려 15년 전.. 11월 14일 오후 12시 10분

아시아나 541기 편으로 인천공항을 출발해 중국의 고비사막을 넘고 대략 10시간 동안 하늘을 날아 같은 날 독일 현지시각 오후 4시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했다. 캠핑카 여행이기 때문에 이미 서울에서 기본적으로 조달할 식품 및 물건들을 잔뜩 구입했는데 다행히 아시아나에서 스폰서를 받은 덕에 짐을 실을 때 큰 부담은 없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짐 싣는 것 만도 엄청난 추가 비용을 지불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짐을 실을 때의 상황이고 공항에 내려 짐을 풀어놓으니 대책이 없을 정도로 미어터졌다. 이거 혹시 너무 많이 가져온 거 아냐? 뒤져보니 딱히 그렇지도 않다. 쌀, 고추장, 김치 같은 두 달 동안 먹을 기본 식량과 추운 겨울을 대비해 가지고 온 옷가지 하며 자전거, 테이블 등 갖은 잡동사니로 짐은 넘쳐났지만 모두 필요한 것들이었으니까. 짐 정리가 끝나자마자 일단 캠핑카를 빌리기로 한 프랑크푸르트의 캠핑카 렌트 회사가 문을 닫기 전에 빨리 찾아가야 했다. 아니면 공항 바닥에서 날을 새야 할 판이었으니까...


공항에 내린 짐.JPG


“지금 4시 맞냐? 왜 이리 어두워.,..”

“인마, 공부 좀 해라... 여가 독일 북부 아이가? 이거 택시밖엔 답이 없겠다.”


캠핑카는 국내에서 미리 예약을 한 상태여서 별 문제가 없었지만 너무 늦게 예약을 하는 바람에 조금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유럽에 도착한 이상 더 이상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주사위는 던져졌고 이제부턴 부딪쳐 보는 거야! 공항에서 거금 40유로 (눈 돌아가더구먼... 쩝)를 주고 중형택시에 짐을 잔뜩 싣고 줄달음치듯 캠핑카 렌트 회사로 달려갔다. 택시기사의 눈초리 따윈 - 이 놈들 대체 뭐하는 놈들이야 - 아랑곳하지 않은 채... 룰루 랄라... 기분이 업 되어 이제 서야 비로소 여행이 시작되었다는 설렘만이 피부 위로 도돌도돌 소름 끼치듯이 즐겁게 올라오기 시작했다.



북유럽은 4시가 지나면 해가 지고 바로 어스름한 저녁이 되고 만다. 여름에는 10시가 되어서야 해가 지더니 겨울에는 낮 시간이 난쟁이똥짜루 보다 짧아 우리 일행은 도착하자마자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였다. 완전 어둑해진 7시가 되어서야 도착한 프랑크푸르트의 캠핑카 렌트 회사에서 드디어 예약한 캠핑카를 만났다.


전면.JPG


두 달간 나의 집이자 교통수단이 되어줄 6인승 캠핑카는 피야트(PIAT)사에서 생산된 하이모(HYMER) 524라는 녀석으로 완벽한 숙식 그리고 교통수단으로써의 메커니즘을 갖춘 멋진 차이자 움직이는 집이었다.


“끝내주네... 이 녀석 완전 별장인데”


그나저나 이렇게 저렴하게 두 달간의 여행을 도와줄 녀석은 어떻게 생겼을까가 꽤나 궁금해졌다. 그리고 새로 입주한 집을 살피듯이 이곳저곳 꼼꼼하게 캠핑카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캠핑카는 대략 운전석 위에 2명이 자게 되어있고 응접실은 낮에는 책상으로, 혹은 식탁으로 그리고 밤에는 두 명의 잠자리를 제공하도록 꾸며져 있다. 후미에는 두 개의 침대가 더 마련되어 있어서 4명이 먹고 자고 여행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별도로 싱크대와 욕실이 딸려있고 전기는 차의 배터리를 이용하게 되어 있었다.


내부응접실.JPG
뒤칸침대.JPG
입구.JPG
운전석뒤.JPG


여행을 하면서 꼭 필요한 것 중 하나가 식품 보관이라 당연히 냉장고를 꼼꼼하게 살펴보았는데 냉장고는 캠핑장에서 전기가 들어올 때는 전기로, 또 전기가 없을 때는 차의 배터리를 이용하며 이 마저도 여의치 않을 때는 비상으로 가스를 이용하게 되어 있는 놀라운 메커니즘을 보여주는 핵심시설로 그 비상한 설계에 혀를 내둘렀다.


"독일 자슥들.... 역시 독사들이라니까."

“왜 아니겠어~ 이 정도면 난 인정! 베리 굿”



욕실 또한 샤워까지 가능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으며, 대소변을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좌식 변기도 갖추고 있었다. 늘 캠핑카를 몰고 여행하는 게 꿈이었던 우리는 캠핑카를 이리저리 살펴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여행이 안전하게 끝나고 나면 꼭 이 캠핑카를 하나 장만해야겠다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여행을 하면서 느낄 이 차에 대한 미스테리한(?) 즐거움은 사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이렇게 잘 만들어진 캠핑카가 그 실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주변시설들이 잘 갖추어진 캠핑장들이 필수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유럽에는 이런 캠핑카를 위해서 시설이 완벽하게 갖추어진 수많은 캠핑장들이 존재한다. 난 유럽 사람들이 즐기는 여행 중에 캠핑카를 이용하는 여행이 왜 이렇게 많은가를 이 캠핑카 렌트 회사에서 직감적으로 느낄 수가 있었다. 캠핑카를 이용하는 여행이야 말로 가장 알뜰하고 재미있는 가족들 간의, 혹은 친구들 간의 맞춤여행이기 때문이었다. 누구에게도 구애받지 않고 원하는 곳에서 잘 수 있으며 언제든지 싫증 나면 떠날 수 있는 차로 되어 있는 집이 있으니까 말이다


전면2.JPG


이 날 캠핑카를 빌려서 나오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담당 직원이 캠핑카를 넘겨주기 전에 일일이 디지털카메라로 차의 상태를 기록하고 차의 동작이나 작동법을 차근차근 알려주고 확인하고 나서야 우리 일행은 차를 받을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차를 입고할 때 생길지 모르는 사소한 시시비비를 아예 차단하고 이를 기록하는데 인색하지 않은 독일 사람들의 전형적인 모습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 날, 렌터카 직원이 소개해준 캠핑장으로 차를 타고 이동하는 중에 형광등 대신 빨갛게 불이 밝혀진 백열등의 창문들과 크리스마스 장식들을 바라보면서 유럽여행의 설렘은 더욱 깊어져 갔다. 여행 첫날 프랑크푸르트의 밤은 그렇게 깊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여행의 첫 식사가 프랑크푸르트 캠핑장에 정차된 움직이는 집에서 단출하게 이어졌다.


“근데, 캠핑카 첫 식사가 라면이라 미안네....”





Damotori's travel notes.

캠핑카를 몰고 처음으로 도로에 나온 날. 바람 속에 잠깐 보였던 그녀를 난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중에 메모리에 담긴 그녀의 얼굴을 보고나서야 짐짓 한참을 어떤 신기한 데자뷰에 시달렸던 나를 기억해 냈다. 여행의 시작. 바람속의 낯선 여인... 그곳은 독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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