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테르담 (Amsterdam)
나에게 여행은 두 가지 상반된 목적이 있다
한 가지는 버리는 것이고 한 가지는 얻어가는 것이다. 나의 유럽여행 중 암스테르담이 갖는 의미는 이 두 가지가 모두 해당된다. 그래서 많은 유러피안들은 이 도시를 유럽 여행의 기점으로 삼는데 주저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내가 바라본 암스테르담의 두 가지 즐거움은 무엇이었을까?
암스테르담에 있는 제법 규모가 큰 지버그(camping Zeeburg) 캠핑장에 도착한 것은 저녁 7시. 간단하게 식사를 마친 후 전기 충전과 물을 채운 후 시내로 다시 캠핑카를 끌고 나온 것은 밤 10시. 사실 지버그 캠핑장은 시내에서 외곽으로 많이 떨어져 있고 교통편이 수월치 않아 시내로 나오기가 의외로 까다로웠다. 더군다나 성수기라고 할 수 있는 여름 시즌엔 시내를 이어주는 셔틀이라도 있다지만 비성수기인 겨울엔 그마저도 없는 형편이라 우린 부득불 캠핑카를 끌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17세기에 가장 화려했던 시기를 보낸 암스테르담은 지금까지 그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역사적인 도시이다. 화려한 야경의 도심 아래로 흐르는 작은 수로들은 작은 베니스를 연상케 하고 멋졌지만 사실은 그 고스란히 남아있는 좁다란 시가지 덕분에 캠핑카는 이리저리 다니는 것 자체가 고역이자 큰 골칫거리였던 것도 사실이다. 밤새 주차할 곳을 찾다가 겨우 자리를 마련한 곳은 비교적 시 외곽이라 할 수 있는 한적한 암스테르담 파크 정문 앞 도로였다. 우린 거기서 처음으로 캠핑장이 아닌 도로에서 노숙을 하게 되었는데... 촛불을 켜놓고 와인을 마시면서 실로 자유분방함을 지닌 캠핑카의 위력을 실감한 하룻밤이기도 했다. 적적한 비까지 내렸으니까...
다음날, 암스테르담 시내로 차를 끌고 나온 우리는 지버그 캠핑장에 차를 대고 나오기가 쉽지 않다고 판단, 시내에다 차를 주차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사실 유럽에서는 주차하기 어려운 작은 골목들이 항상 존재하기 때문에 캠핑카들은 시 외곽에 주차를 해놓고 들어가야 하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우리 차 역시 1.5톤 정도의 트럭 위에 캠핑카를 얹은 것이지만 이 크기도 조그만 중세에 만들어진 골목길을 자유롭게 돌아다니기에는 늘 무리가 따랐다. 암스테르담에서 이 큰 캠핑카를 주차하기는 역시나 하늘의 별 따기였다. 하지만 어쩌랴 암스테르담을 속속들이 알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일단은 안전한 곳에 차를 주차하자였다! 그래서 찾은 곳이 중앙 역 근처의 작은 주차장이었다.
일요일이라 무료일 거라는 판단이 섰고 주차장에서 만난 할아버지가 파킹 프리라고 말하는 바람에 얼씨구나 좋다~하고 자신감 있게 차를 떡 하니 세우고 우르르 시내로 기어 들어갔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라는 선인들의 가르침을 무시한 우리는 잠시 후에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되지만 그때까지는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다. 시내로 들어온 후 암스테르담의 중앙 역 광장을 좌우로 하는 갈림길에서 나는 말머리에서 말한 버리는 것과 얻는 것에 대한 두 가지 이야기를 연상케 하는 상당히 상반된 풍경들을 만나게 되었다.
운 좋게도 그날은 암스테르담에서 매년 이맘때 열리는 성 니콜라스 축제의 키즈 위크데이 퍼레이드가 있는 날이어서 수많은 시민들이 어린이들과 함께 길거리 퍼레이드를 했는데.. 그 모습이 장관이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였다. 사람들은 칙칙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가족과 함께 손에 손을 잡고 거리로 나와 한껏 하루를 즐기고 있었다. 바야흐로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수많은 시민들과 관광객들로 붐비는 중앙역 광장을 조금 비껴 들어가면 또 다른 풍경이 우릴 압도했다. 거기엔 17세기 중세 유럽의 작은 골목길들이 즐비하게 나오는데 이곳에서는 광장 안에서 벅적거리는 축제 퍼레이드와는 달리 대낮부터 마리화나를 피우고 있거나 서로 거래를 하는 모습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오~마리화나... 우리나라에서는 대마초, 때기, 떨이라고도 불리며 요즘 들어서야 합법화 논쟁이 한창인 뜨거운 감자 아닌가? 우리나라에서는 소지만 하고 있어도 처벌받는 마리화나가 암스테르담에서는 피우거나 거래를 해도 합법적인 하나의 상품이었다. 하기사 매년 이곳에선 질 좋은 마리화나 품질대회까지 열린다니까 말 다한 셈이지.
좀 생뚱맞은 얘기지만 어쩔 수 없이 한국 토종인 나는 그 풍경에서 대한민국 군사독재 또라이들이 만들어낸 ‘경계’라는 하나의 단어를 떠올렸다.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경계하고 또 어떤 경계에서 살고 있었을까? 아침 6시에 일상적으로 울리던 새마을 운동 노랫소리, 저녁 6시면 아무도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태극기 하향식을 바라보며 애국심을 지글지글 불태우던 그 강요. 모두의 행복을 위해 한 사람의 선택도 국가의 지시를 받아야 했던 암울했던 시기를 지나 이젠 그 경계가 풀렸다고 생각했는데, 이곳엔 그 경계라는 것 자체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듯이 보였다. 이런 시스템도 존재할 수 있구나... 하는 신기함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암스테르담 시내 한복판에서 나는 내가 그동안 살았던 모든 과거의 부조리한 사실들을 다시 재확인하고 있었다. 행복은 이런 것이라고 누군가가 함부로 잣대를 들이대지 않고 서로를 존중하면서 사는 사회. 난 그것을 속으로 꿈꾸었고 남몰래 동경했다. 암스테르담은 조그만 중앙 역 광장을 기점으로 그 행복의 기준선을 반듯하게 그어놓지 않고 활짝 열어 놓고 있었다. 누구든 그 경계를 넘어 사람 사는 세상이라면 모두 다 들어갈 수 있고 공존하고 있다는 생각을 나에게 심어 주었던 것이다.
인간의 말과 글 그 자체가 그 사람을 대변하듯이 도시는 그 도시가 보여주는 풍경들로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 숨어 있는 이야기조차도 미리 알 수 있을 것 같은 복잡한 코난 도일의 도시 암스테르담은 수많은 유럽의 젊은이들을 불러들이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그것이 그들이 이곳에서 합법적으로 마리화나를 피울 수가 있어서 온다고 한들 무슨 걱정이겠는가? 여행은 그런 것을 걱정하는 발상조차도 촌스럽게 만드는 즐거운 다양성을 가지게 해준다는 것을 난 조금씩 깨닫고 있었다.
물 위에 세워진 도시 위를 걷는다. 수로 위의 다리를 건너면서 바라 본 박물관과도 같은 오밀조밀한 도시 암스테르담을 찾은 유럽의 젊은이들이 그 유명한 불독 바에 앉아 긴 소파에 드러누워 물파이프에 인생을 태우고 있다. 그 뒤의 작은 골목엔 성 니콜라스 축제 퍼레이드의 음악소리에 맞춰 늙은 창녀들이 남자들의 주머니를 유혹하고 있고, 아이들은 중앙역에서 벌어지는 성 니콜라스 축제에 흠뻑 빠져 가족들과 함께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암스테르담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렇게 모두 다 다른 가치관과 서로 다른 여행들을 하고 있었지만 공통된 한 가지는 있어 보였다.
그들은 서로를 존중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한 느낌이 거리에서 조차 존재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그것을 입증하는 좋은 사례일 것이다. 같이 어울려서 서로를 인정하고 산다는 것은 그 자체로 행복한 시스템이다. 그렇게 암스테르담 시내를 거닐며 이런저런 오만가지 생각에 휩싸이다가 갑자기 차가 걱정이 되어 급하게 다시 주차장으로 되돌아왔는데, 아뿔싸~이미 기대하지 않은 손님은 왔다간 후였다.
“오 마이 갓! 오 마이~~~ 뻑! 오 마이 불라불라... ”
당연히 공짜라고 생각하고 맘 편하게 주차해놓은 캠핑카 바퀴에 엄청난 크기의 자물쇠가 채워져 있는 것이 아닌가? 난감한 순간이었다. 캠핑카 여행을 시작하면서 만난 첫 번째 위기다. 보기 좋게 딱지를 떼인 셈인데 그 딱지의 대가가 장난이 아니다. 범칙금이 무려 69유로, 우리 돈으로 10만 원에 이르는 큰 금액이다. 젠장! 빠듯한 경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완전히 뒤통수를 얻어맞은 우리는 그때서야 비로소 이 좁은 유럽 골목들이 넘치는 차들로 몸살을 앓지 않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여기에서 단속이라는 것은 우리처럼 기분 날 때 하는 단속이 아니라 매시간마다 끊임없이 정기적으로 단속을 한다는 무서움에 있다.
그러니 잘못 주차했을 경우 백이면 백 죄다 딱지를 떼일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는 셈이었다. 더군다나 덩치가 산만한 캠핑카야 말로 해 뭣 하겠는가? 캠핑카의 경우 유럽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시내에서 주차하는 것이 상당 부분 많은 제약을 받는다. 우리는 이 캠핑카가 차량이라고 생각하지만 유럽 사람들은 이 차는 집이라는 개념도 함께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집은 안전한 곳에 주차하고 대중교통으로 시내를 돌아보는 것이 어찌 보면 올바른 판단이라고도 느껴졌다. 어차피 물게 된 벌금이야 어쩔 수 없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해서 나는 캠핑카가 차이기보다는 집이라는 개념 쪽으로 가닥을 잡기 시작했다. 캠핑카가 안전하게 주차할 수 있는 곳은 역시 캠핑장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고 그 제서야 부랴부랴 지버그 캠핑장으로 집(?)을 몰고 들어갔다. 늦은 밤, 벌금으로 지불한 69유로의 아쉬움을 달래며 한국에서 가져온 소주를 한 잔 했다.
암스테르담의 인상적이었던 밤을 정리하며 느낀 것은 유럽 사람들이 만들어 낸 다양성에 대한 공존 그리고 그러한 공존이 거리 곳곳에서 오랜 기간 동안 형성되기 위해서는 자신 스스로가 만들어 낸 경계의 잣대를 허물어 버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 바로 그것이었다. 그나저나, 짜릿한 소주 한 잔을 들이켜니 방금 전 하늘로 날라 간 69유로가 눈에 어른거리기 시작한다! 에휴~
damotori's travel notes_워터루플랜의 벼룩시장
암스테르담의 작은 상설 벼룩시장인 워터루플랜의 아침. 낡은 리어카를 받쳐놓고 하루 종일 물건을 전시하는 노인이 있었다. 낡고 부서진 가전제품에 도저히 못쓸 것 같은 잡동사니들은 소중하게 보관된 보따리에서 하나 둘씩 끌러져 나왔다. 사람들은 가끔 물건이 아니라 추억을 파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그렇다, 실은 거기에 진짜 보물들이 들어있기 마련인데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