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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모토리 May 04. 2018

진짜 아름다움은 그것! <비우티풀, 2010>  

<비우티풀, 2010_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비우티풀, 2010_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하비에르 바르뎀 (Javier Bardem)
 


언제인지도 기억이 안 날 만큼 지난 추억의 어느 날, 청량리에 있는 후줄근한  동시상영관에서 조우한 <하몽하몽>을 시작으로 엽기의 극치를 달렸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안락한 죽음의 눈빛을 지닌 <씨 인사이드>에서의 그를 기억하는 나에게 영화 <비우티풀>은 또 다른 세상의 문을 열어준다.

 

그리고 2014년 단연 최고작인 <버드맨>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 그는 평점 별 다섯 개의 <21그램>, 삶의 묵시록 <바벨>을 기억하는 나에게 <비우티풀>이란 또 다른 삶의 시선을 각인시켜 주었다.      


안토니오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 바라보이는 바르셀로나의 깊은 빈민가 라반에 주인공인 인력브로커 욱스발이 산다. 그의 삶과 주변은 정상이 아닌 온통 불법 투성이다. 그런 그에게는 두 아이와 조울증에 알콜릭까지 겹친 아내, 그에게 뒤를 봐주며 불법 이민자들을 고용하는 차이나타운 업주들, 그리고 아무런 생각 없이 사는 친형까지 돌봐야 하는 엄혹한 현실이 눈 앞에 있다. 



사실 이 정도면 살아가는 게 신기할 정도다. 그런 어느 날, 욱스발은 피레네 산맥을 보고 싶어 하는 딸에게 뷰티플을 비우티풀(Biutiful)이라고 잘못 알려 준다. 실제 그의 삶에서 아름다움이란 단어는 어려서부터 존재하지도 않는 단어였다. 그렇게 영화는 인간이 왜 가족 구성원을 이루며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우리는 왜 사랑하고, 왜 태어났으며, 왜 이 거친 인생을 감당하고 견뎌내야 하는가에 대한 참으로 당연하지만 모진 질문이다.      



욱스발은 그것에 대해 직접적으로 묻지 않지만 인간의 삶이란 항상 자신의 것이고, 죽음이란 우리 인간이 거쳐야 하는 당연한 과정이라는 것을 영화 내내 담담한 눈빛으로 말한다. 이 영화는 뭔가 상당히 불편하지만 잔잔한 감동을 전해주기도 한다. 잡초 같은 인생에서 그의 유일한 재능은 죽어가는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 그는 처음부터 수많은 죽음을 대면했지만 자신의 죽음은 결코 인정할 수 없었다. 자신이 고아로 남겨진 어린 시절의 불행을 아이들에게 남겨주고 떠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영화는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첫 장면이자, 마지막 장면에 등장한 누군가에게 그는 생애 마지막 뒤안길을 지나 처음으로 우리가 너무나 궁금할 법한 질문을 툭하고 던진다. 그리고 비로소 영화는 끝이 난다...      


"¿Qué es eso?" 

그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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