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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모토리 Apr 30. 2016

하늘과 바다에 대한 추억

21mm로 바라 본 세상 풍경

여행의 조건 - 하늘과 바다 그리고 땅 


우리를 둘러싼 물리적인 외부환경 중 가장 친밀한 것은 역시 자연이다. 자연은 인간이 있기 전 만들어진 환경이면서 인간이 좀 더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한 가장 필요한 조건 중 하나일 것이다. 나는 자연의 이러한 부분들(뭐..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지만)을 좋아했다. 조금은 협의적인 자연들 중에 하늘과 땅과 그리고 바다를 아우르는 경험치가 바로 여행이기에 기본적으로 우리는 새로운 바다와 새로운 땅과 그리고 새로운 하늘을 그리워하면서 사는지도 모른다.


21mm F3.4 / 울산으로 가는 국내선 비행기 안에서, 2001


인간이 도시를 만들고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언어소통 대신 전파를 만들어내고 그 전파들 속에서 우리는 미리 경험하지 못했던 자연을 조금이나마 충족하며 살아왔다. 어릴 적.... 바다는 사람이 거스르지 못하는 어떤 운명적 섭리로 다가왔고 하늘은 말할 것도 없이 더욱 그랬다. 개인적 경험에 의해 하늘과 바다는 그렇게 땅처럼 편안하지 못하고 스스로 개척할 수 없는 미지의 경험으로 아직도 내겐 남아있다. 여행은 그러한 미지의 세계를 다소나마 경험할 수 있게 해주는 것으로 세계사 공부만큼 필요한 것이지만 우리의 생활은 그러한 여유를 쉽게 허락하지 않으니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21mm F3.4 / 울진군의 어느 항구에서, 2004


그래서 가끔 마음이 동하거나 새로운 시작이 필요할 때는 그저 상상이나 하던 그 하늘과 바다를 보기 위해 가까운 어디로든 떠나곤 하는데.. 그런 여행은 시간의 길고 짧음을 지나 언제나 나에게 새로운 영감을 가져다준다. 책을 읽는 것이 그러하듯, 미지의 세계를 탐구하는 지오그래픽의 기자들이 느끼는 그 설렘들과 보람들이 그러하듯... 마음속에 숨겨진 미지에 대한 본능적 탐구 기질이 꿈틀대는 것이다. 


하지만 나의 여행이란 고작해야..... 붕 하고 하늘을 날아가서, 혹은 둥하고 바다에 떠서, 간단하게 술 한잔 하면서 시간과 여정 그리고 친밀함과 동질감을 느끼고 스스로 위안받고 오는 것이긴 해도 그러한 일정 중에 대부분의 시간은 하늘과 바다에 대한 동경심에 부여하곤 했다.

21mm F3.4 / 제주행 비행기 안에서, 2005

                                                          

파란 하늘은 그저 동심일 뿐..... 

                                                   

아버지 허리춤에도 못 미치는 키를 지닌 나이 때에 동네 형들과 화진포 기행을 한 적이 있다. 조그만 도랑을 따라 시작한 동네 꼬마들의 여행은 논길로 들길로 그리고 산길로 이어지며 그 푸른 하늘에 대한 무지막지한 동경으로 시작되었고 난 그때 보았던 파란 하늘의 경외로움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언젠가는 저 하늘 위로 올라가리라. 헬륨가스를 분사시켜 기구를 타고 세계일주를 하는 동화책을 보면서 세계여행을 꿈꾸고 밤마다 산동네에 올라가 별을 세면서 나의 하늘을 손가락으로 구획하는 장난질도 많이도 쳤다. 

피닉스가는 고속도로상에서,  애리조나  2009

                                                                   

당시 하늘은 운명이었고 내게는 그 운명에 도전하는 반골기질이 있었나 보다. 바벨탑의 전설을 읽으면서는 하늘에 대한 경외가 두려움으로 바뀌기도 했고 하루 종일 소나기가 내릴 때면 누군가가 저 위에 있다는 상상도 서슴지 않았다. 그런 하늘은 이제 개인의 하늘로 바뀌었다. 자연적 환경을 개인적 감성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도 바다보다는 하늘이 먼저다. 삶이 힘들어질 때는 하늘이 무심해 보이기도 했고 나처럼 미천한 존재는 하늘 아래 손톱 때만큼도 못한 부질없는 대상으로 전락하기도 했다. 


캄차카반도를 향해 비행하는 러시아산 여객기, 2007

                                                                       

달동네 옥탑방에 살면서 하늘은 도시 속에 공존하는 나에게 파란 희망이었지만 때로는 우울한 방패막 그 자체이기도 했다. 시골의 하늘과 도시의 하늘은 차이가 많았다. 메케한 매연 속의 서울의 하늘은 돔 경기장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막시무스의 외로운 처지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사람 사는 게 평등하다고 믿던 시절엔 하늘은 그저 구름이나 띄우는 벽지 같은 존재이기도 했다. 


하늘 아래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는 구호는 나에겐 쓰레기가 되었고 하늘은 검붉게 물들어져 계급사회를 조장하는 미천한 세상사의 껍데기가 되기도 했다. 얼마 전 난 비행기를 타고 하늘에 올랐다..... 하늘은 예나 지금이나 인간사에는 별 관심이 없는 듯 고요했다. 


사람들 마음먹기에 따라 동심으로 시작했다가 원망스러운 질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가 이젠 태양으로 구멍 난 그저 파란 하늘.... 여행 중에 느낀 그런 하늘에 대한 나의 단상은 지극히 짧은 시간이지만 나의 고소공포증을 조금은 해결해 주긴 했다.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간다... 동심에서.. 상상에서 현실로 내려간. 그리고 나는 다시 고개를 들어 그 녀석을 올려다 볼수 밖에 없다... 내가 고갯짓을 하지 못할 그때까지..... 


암스테르담, 2004

                                              

바다는 익숙한 외로움이다 

푸른색을 좋아하는 소년이 있었다. 바다는 눈동자를 가진 소년이 제일 처음 태어나 놀랍도록 처절하게 바라본 대상이다. 거기엔 그물과 걸려나온 고기들과 조그만 통통배들이 있었고... 까마득히 멀리 파란 물은 파란 공기와 맞붙어 있었다..... 나의 바다에 대한 유년의 기억은 나의 주변, 생존 그 자체였다.. 


바다에 대한 나의 기억은 나의 일생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나의 가족들은 바다로 인해 생존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얻었으며 그 바다로 인해 가계의 운영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바다는 농부의 땅과도 같은 존재이다. 내가 사는 모든 마을의 집들은 모두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으며 나는 어디든지 그 마당 안에서 손쉽게 바다를 볼 수 있었다. 


21mm F3.4 S.A / 울산 정자해변에서  2002


할아버지와 함께 조그만 나룻배를 타고 꽁치잡이를 나갔던 기억. 찰랑이는 바다 물결에 보잘것없는 나룻배는 흔들렸지만.... 할아버지의 꽁치잡이는 바다와 함께 이미 친숙해져 있었다. 나는 파도의 어울림을 따라 흔들거리던 할아버지의 리듬을 아직도 기억한다. 맞서지 않고 동화되며 바람과 물결에 못 이기는 척 져주던 할아버지의 그 노 저음.. 


바다는 난폭하다. 생존에 두 눈을 부릅뜨고 나서는 사람들은 집어삼키고 해류를 바꾸어 조그만 어촌을 고립시키기도 한다. 동네 사람들은 바다를 두려워했고 또 떠나고자 했다. 어판장에서 바라 본 바다는 삶의 시장이었다. 어린 나는 바다가 아름답고 환상적이며 시적이라는 표현을 이해할 수 없었다. 바다는 내게 삶의 경계이면서 놓칠 수 없는 동심의 끈끈한 흔적이기 때문이었다. 

21mm F3.4  S.A / 속초 어판장에서,  2005

                                                                       

소년은 바다를 떠났다. 뭍으로 들어왔다. 뭍은 바다를 잊게 해주었다. 가끔씩 보는 바다는 추억의 바다가 돼있었으며 또한 나의 지나간 회상을 기억해 주는 블루스크린이 되어 있었다. 뤽 베송의 '그랑블루'를 보고 나서 한동안 좌석에서 일어날 수 없었던 것은 에릭 세라의 찬란한 음악에도 이유가 있지만 마지막 주인공이 바다에서 돌고래의 환영을 보고 로프의 손을 놓는 순간의 감동을 잊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21mm F3.4 S.A / 울산 정자해변에서  2002


내게 바다는 환영이다. 보일 듯 말듯한 기억들과 기대 그리고 기쁨과 절망의 나락을 기억해 주는 트레이싱 페이퍼.... 나는 그 위에 가끔 먹줄을 대고 금을 긋는다. 나에게 뿌려주는 그 파도... 내가 내뱉는 그 회한의 감정들.. 인간들과의 경계는 모호해지고 삶의 기대는 잠깐이지만 바다 위에선 무력화된다. 그렇게 바다는 나에게 있어 영원한 기억의 안식처이자 동반자이다. 


21mm F3.4 S.A / 울산 정자해변에서  2002

                                                                     



                                                      

여행을 떠나며..... 

정리를 하려고 한다면 여행을 떠나라. 정리가 되었다면 여행을 떠나라. 이도 저도 아니고 개념이 없이 산다면 여행을 떠나라. 아무것도 없지만 여행은 당신의 지친, 나의 고단한 정신적 충격을 조금은 덜어준다. 하늘과 바다를 보는 것만으로도 여행은 가치가 있다. 그곳이 어디이든 간에 나에게 속삭이며 혼자 할 수 있는 여행이라면 더욱 좋다. 열심히 일한 당신만 떠나라고 속삭이는 골 빈 똥통들 사이에서 지금 떠나야 한다. 그것만이 살만한 내 마음속 세상을 만드는 소중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스위스 티틀리스(Titlis),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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