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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모토리 Mar 08. 2020

69. 원주 관설동-주천_사라진 25번 시내버스의 추억

CHAPTER 4. 산골 오지에서 삶을 돌아보다 (동해-영주)

상동에서 원주로 허겁지겁 넘어와 밤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시내버스 여행 중 거점 도시에 도착하면 늘 나에게 베푸는 조그만 성찬이다. 그래 봐야 흔한 포차에서의 혼술이지만.


그러다 보니 당연히 늦잠을 잤다. 원주에서 주천 가는 시내버스를 타려면 서둘러야 하는데 전날 흥껏 마신 술이 피곤함을 더해 깊은 잠에 빠졌다. 사촌 동생이 원주 관설동까지 차로 바래다주어 급히 25번을 탈 수 있었다. (원주-주천 간 25번은 2019년 8월에 24번으로 흡수 통합되었다)



25번은 원주 장양리 차고지에서 관설동을 지나 영월 주천까지 가는 노선인데 중간에 치악재를 치고 올라 신림면 황둔리를 지나서 술 익는 마을 주천에 이른다. 이 노선은 강원도의 가을을 만끽할 수 있는 노선으로 황둔리의 섬안이강이 보였다 안보였다 하며 줄곧 따라 올라가는데, 주천강 상류와 오미에서 내려온 시냇물이 합쳐지는 곳으로 풍광이 뛰어나 야영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이 길과 함께 황둔에서 좌측으로 있는 치악산 성남 계곡, 주천에서 수주면 방향으로 들어가는 법흥리 계곡, 섬안이강에서 주수면 운학리 쪽으로 늘어진 여러 계곡들도 가을 풍광이 절정이다.



한가로이 달리는 시골 버스에 앉아 있노라면 고즈넉이 가라앉은 계곡의 그림자가 4D 스크린처럼 시공간을 압도하며 흐르고, 거기에 더해지는 풀사운드의 자글자글 물 흐르는 소리가 신중현의 아름다운 강산을 연발하게 만든다.


주체없이 달려드는 아침빛깔에 손부채를 만들어 슬며시 풍경을 가늠해 본다. 아! 이 얼마나 상쾌한 기운인지, 이 얼마나 호젓한 경험인지 아침 시골버스를 
타보지 않은 사람들은 알수없지 않겠는가를 연실 외쳐대는 것이다.

우린 너무나 소중한 것을 이렇게 무심하게도 내버려두고 있구나, 너무 가까이 있어서 미처 알지 못하고 있었구나 하는 쓰잘데기 없는 걱정이 시골길 찬바람에 흩뿌려진다. 아쉽다. 아직도 나의 눈과 귓가에 맴도는 이른 아침 25번 버스 여정이 이젠 지난 추억이 되었다는 사실이.


#버스오딧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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