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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모토리 Mar 11. 2020

83. 울진 광비휴게소_떠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

CHAPTER 5. 보부상의 애환이 서린 발품 길 (영주-대구)


춘양에서 61 버스를 타고 31번과 36 국도를 갈아타고 울진군으로 넘어와 금강송면 광회리 광비정류장에 도착한 시각은 이미 해가 떨어진 이후였다. 여기는 정확히 말하면 외광비 마을이다. 울진 쪽으로  조금  가면 웃광비라고 하는 내광비 마을이 있다. 이곳에서 울진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갈아타야 한다. 예전에는 영주에서 울진을 가려면 반드시  앞을 지나가야 했지만, 지금은 36 국도가 새로 놓이고,  구간은 터널이 뚫려 있어 이곳을 지나려면 미리 36 국도에서 내려와야 한다.



버스에서 내리니 마을은 이미 어둠이 깔려 쥐 죽은  고요하다. 정류장 근처 광비휴게소에서 나오는 작은 불빛을 따라 주섬주섬 들어가니 떠들썩하다. 조그만  슈퍼 안에서 아저씨 네댓 명이 왁자한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뭐지?  고요한 마을에 이런 소란이란.


어이구,  시간에 요런 시골 짝 동네에  길손이랴, 일단 일루 와서 한잔하셔


엉겁결에 술자리에 합류해서 보니 동네 삼근초등학교 광비분교 동창회가 있는 날이다. 광비분교는 2017 3 1일에 폐교되었다. 아쉬움이 진하게 묻어나는 동창회 술자리가 몇 차를 지나고도  동서울행 버스를 타야 하는 동창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끈질긴 술판이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카메라를 들고 있으니 기자인 줄 알았던지  아저씨가 거나하게 동네 소개를 시작하신다.


기자양반,  동네가 이래 봬도 부자마을이여. 여기 오시면 태백 제재소에서 메다데 하시던 이춘만 씨를  안다고 하시면  통해. 그리고 절에 다니시유? 분천 2리에 철길 건너 장수바위 밑 분천 절에서 세수 한번 하면 온갖 피부병은  낫는다니,  그러냐?”


그럼 그럼, 그리고 우리 마을엔 오래전에 세워진 서낭당이 유명한데 거기가 옛날 바지게꾼이라던 지게꾼들이 묵거나 쉬어가는 곳으로 유명했어


바지게꾼은 지게꾼, 선질꾼이라고 하는데 선질이란 짐을 지고 가다가 잠시 숨을 고를 , 지게를 내리지 않고 선채로 쉬었다는 뜻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얘기를 들으니 ‘지금 내가  선질꾼이군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여기가 원래는 울진 서면인데 지금은 금강송면이라고 합니다. 저기  친구 땅에서  동네 금강송이 대부분 자라고 있어. 아주 떼부자여. 집도 얼마나 큰데. 하룻밤 재워달라고 해보슈. 아마 깜짝 놀랄걸”



 아저씨의 차는 외제차였다.  시골에 외제차라니. 진짜 부자인가 보구나. 금강송면은 태백산 백두대간 중단부에 위치하고 있다. 금강송 군락지가 유명해서 2015 4 21 울진군 서면에서 금강송면으로 지명이 바뀌었다. 금강송 숲길에 2019년에 오픈한 금강송 에코리움이 있는데 금강소나무 숲의 환경  자체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힐링공간으로 금강송면 십이령로에 있다.


, 이제 고만들 마셔라. 서울 올라가야지. 니는 돈이 많아서 가서  쭉 뻗고 자면 그뿐이지만, 우린   꼭두새벽부터  나가야 한다고


“자슥아,  그리 퍽퍽하게 사노,  잔만  더해라



그러는 사이 울진에서 동서울로 가는 시외버스가 서치라이트를 환하게 밝히며 휴게소  도로로 진입했다. 클랙션 소리가 두 번 크게 울린  슈퍼 안에 있던 아저씨들은 다들 사라졌고, 주인아주머니와 나만 덩그러니 광비의 달빛 아래 남겨졌다. 여행  처음으로 어떤 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래, 외로움도 여행의 일부였구나.


#버스오딧세이 #외광비마을 #광비휴게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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