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 보부상의 애환이 서린 발품 길 (영주-대구)
울진에서 숙박한 모텔이 좀 불편했는지 잠을 설치다가 그냥 이른 아침에 나왔다. 버스여행 중 지인 찬스가 없이 처음으로 홀로 숙박했다. 혼술을 즐기지 않으니 멀뚱멀뚱한 정신으로 잠이 들었는데 숙면이 그리 오래가지 못했나 보다.
일단은 인근 터미널로 와서 아침식사를 시켰는데, 기사식당치곤 밥값이 많이 비싸다. 그런데 젠장, 아침밥에 계란 프라이도 안 준다. 뭐냐 이거. 게다가 밥과 찌개, 찬까지 삼위일체로 훌륭하게 맛이 없다. 원래 반찬투정 안 하는 스타일인데도 이런 식사는 정말 오랜만이다. 아, 여긴 빨리 떠야겠다는 생각뿐.
터미널로 가서 평해 가는 버스를 탐색하는데, 평해는 터미널에서 출발하지 않고 시내 정류장에서 타라 고 한다. 괜히 여기까지 걸어왔네. 울진에 와선 짜증이 조금씩 겹쳐진다. 숙박, 교통, 식사 올 C-수준이다.
울진터미널은 강릉과 포항을 위주로 동해안 7번 국도 선상에 있는 지역만 연결하는 노선이 주를 이룬다. 깡촌답게 시내버스도 일찍 끊긴다. 죽변, 부구 방면 버스 막차가 19시 55분이니까 외지에서 울진으로 올 때는 막차 주의보에 신경 써야 할 정도다. 터미널 맞은편에 동해선 울진역이 개통되면 터미널 이용객 감소는 불 보듯 뻔하리라.
울진읍의 농어촌버스노선 기점은 울진터미널이 아닌 울진군청 앞이라 그리로 갔다. 평해 가는 완행버스를 기다린다. 울진은 완행이 어울리는 도시가 확실하다.
완행 緩行
1. 느리게 감.
2. 도중에 다른 곳에 머무르거나 먼 쪽으로 둘러 감.
3. 같은 말 : 완행버스(일정한 구간을 빠르지 않은
속도로 운행하며 승객이 원하는 곳마다 서는 버스.
이른 아침 평해행 첫차를 탄다. 그런데 완행이라는데 좌석이다. 심지어 차종이 현대산 2012년형 뉴-슈퍼 에어로시티 버스다. 완행 아니잖아, 게다가 스피드가 장난 아니다. 7번 국도 배틀 수준이다. 왕피천을 시작으로 망양정해변, 산포/진복/오산/망향/기성/척산/봉산/구산까지 해안가를 버스가 신나게 질주한다.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콧가를 스쳐간다. 동해의 해변을 달리는 7번 국도는 언제나 상쾌하다. 버스가 들썩인다. 내 옆에 앉은 등교하는 여학생은 그 빠른 속도에도 내 어깨에 코를 박고 버스가 스핀무브 할 때마다 헤드뱅을 심하게 하고 계신다. (학생, 고만 좀 일어나라고 쫌!!)
경북지역은 시, 군 규모와 관계없이 일반버스와 좌석버스가 같은 노선, 같은 번호로 동시에 다닌다. 단거리 승객보다 중장거리 승객이 많기 때문이다. 특이한 건 울진 버스만 가격이 다르다는 사실. 좌석이 더 비싸다.
평해에서 포항을 갈아타야 해서 중도에 내리는 게 좀 아쉬웠던 건 이 버스의 종점이 유명한 백암온천이었기 때문이다. 거기서 더 들어가면 신선들이 노닐던 마을 온정면이 나온다. 하긴 이리가나 저리가나 아쉽기는 매 한 가지다. 여행이란 본디 한 곳은 필히 포기해야 하는 게 숙명이 아니겠나.
#버스오딧세이 #울진_평해_좌석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