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 보부상의 애환이 서린 발품 길 (영주-대구)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너무나 익숙한 말이다. 실제 고대 세계의 모든 길은 로마로 통했다. 수많은 길들이 로마를 중심으로 유럽과 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까지 이어졌다. 이 길을 통해 로마는 제국을 건설하고 통치했다. 로마가 멸망한 뒤에도 이 길은 그대로 남아서 인류문명을 이끌고 번영시켰다.
한반도에도 그런 길이 있었다. 오랜 세월 동안 인간과 물류, 문화의 혈관이 되어왔던 우리 옛길은 서울에서 전국 각지로 뻗어나간 총 6개의 대로였다. 제1도로는 서울-평안도 의주까지 이어지는 의주대로, 제2도로는 서울-함경도 경흥까지 이어진 경흥대로, 제3도로가 서울-강원도 강릉을 거쳐 경상도 평해까지 이어지는 관동대로다. 당시 중국 사신들이 오가는 교통로였던 의주대로가 핵심이었지만 관동대로 역시 주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조선시대 한양에서 대관령을 넘어 강릉, 삼척, 울진을 지나 평해까지 이르는 이 길은 대관령이라는 험악한 고개를 넘는 길이라 고생도 많았겠지만 한편으로는 동해 푸른 바다를 옆에 끼고 가는 길이라 기분은 무척이나 상쾌했으리라. 한양을 출발해 걸어서 간다면 평해까지 오는데 대략 19일 정도 걸렸다고 한다. 당시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꿈은 관동팔경을 유람하는 것이었다. 책을 통해 알게 된 동해의 아름다운 풍경에 들어가 시를 짓고 유유자적 여행을 하는 것이 평생의 꿈이었을 것이다. 그 길이 바로 관동대로였다.
하지만 이런 꽃길도 여차하면 흙탕길로 변한다. 시를 짓고 유랑하던 길이 유배지로 가는 길이 되면 엄혹한 고난의 길이 되어버린다. 관동대로의 끝 지점인 평해는 조선시대 이산해, 김약행의 유배지였다. 이산해는 임진왜란 때 파천을 주장했다가 양사의 탄핵을 받아 파직되어 평양 귀양길에서 머나먼 강원도 평해로 유배되었다. 선조 25년 5월 백발이 성성한 이산해가 평양에서 산길을 걸어 한계령을 넘는 신세가 된 것이다. 하지만 54세부터 57세까지 3년 동안의 평해 유배생활은 그에게 있어 문학적으로 매우 성숙해지는 시기였다고 한다.
바다를 낀 높은 정자 전망이 탁 트여
올라가 보면 가슴속이 후련히 씻기지
긴 바람이 황혼의 달을 불어 올리면
황금 궁궐이 옥 거울 속에 영롱하다네
-망양정(望洋亭) 시(詩), 이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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