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 보부상의 애환이 서린 발품 길 (영주-대구)
경주 성동시장에서 꿀맛 같은 한식뷔페로 배를 두들기고 300-1번 좌석을 타고 아화로 향한다. 버스는 경주시내를 가로질러 태종 무열왕릉을 지나고 아름다운 가로수 길이 늘어서 있는 금척리로 들어섰다. 금척리는 경북 경주시 건천읍에 있는 삼각형 모양의 마을인데 대부분의 지역이 평지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지나는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버스에서 내려 건천읍까지 천천히 걸었다.
아직 발굴하지 않은 신라 고분군이 마을 곳곳에 젖무덤처럼 포근하게 자리 잡고 있다. 신라 때 대대로 내려오던 금자-죽은 자와 병든 자를 살려낸다는 신비한 자(尺)-를 당나라 황제가 사신을 보내 보여 달라고 떼를 쓰자, 신라왕은 이를 거절하기 위해 12만 7천㎡의 들판에 38기의 무덤을 만들어 금자를 감추었다고 한다. 금척리 마을의 유래다.
위치상으로 경주의 무열왕릉과 가깝고 고분군이 평지에 조성된 점으로 보아 신라 귀족의 무덤일거란 설이 유력하다. 마을은 큰 산이 없어 고즈넉하다. 간간이 경주로 가는 기차가 마을의 정적을 깨운다. 거리에는 주민들이 별로 보이지 않지만, 가끔 마주치는 동네 분들은 인심이 퍽 후하다. 마을 골목 안쪽으로 오래된 정미소 앞에 동네 사랑방 금척 슈퍼가 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라, 대낮부터 쥔장 아주머니와 동네 아저씨 한분이 얼근하게 낮술을 하고 계셨다. 작은 촌락임에도 언 듯 아주머니의 패션이 예사롭지 않다.
"내가 이 동네로 시집와서 여직까지 단 한 번도 이 동네를 떠나 본 적이 없어. 여기 와서 시집살이를 고단하게 했는데도 대한민국에서 여기만큼 좋은 동네를 아직 못 봤거든"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잘 꾸며야 한다는 지론을 설파하신다. 촌사람이라고 구질구질하게 다니면 얕본다며 매일 꽃단장을 하신단다. 말씀 도중에 할머니 한 분이 드르륵 슈퍼 문을 열고 들어오신다.
“어이구, 또 마시냐? 하여간 지겹지들 않은가 봐. 나두 한 잔 줘봐. 미원 있지, 근데 이건 요즘 왜 이렇게 조그맣게 만들어 파는 거야. 옛날 통이 큼지막하고 좋았는데 말이야, 세상이 점점 야박해지고 있다니까”
“한 잔 더 하실라요? 집에 가도 기다리는 양반 없잖아”
“됐다, 콩나물 국 끓여먹고 일찍 자빠져 잘란다. 니들도 적당히 혀”
금척리는 걸어서 한걸음이다. 경계에서 경계까지 평지다. 벨을 제때 누르지 않으면 쏜살같이 지나쳐 버린다. 건천 읍내에서 금척리까지 버스 타고 오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버스로 이곳을 지날 때는 일단 한번 내려서 걸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마을 곳곳이 정말 아름답게 정돈되어 한번쯤 살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들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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