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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모토리 May 10. 2016

'추억'이라는 이름의 레시피 <행복의 향기, 2008>

행복의 향기 (しあわせのかおり,2008) _ 미하라 미츠히로

<행복의 향기 (しあわせのかおり,2008) _ 미하라 미츠히로>
일본의 작은 바닷가 마을 가나자와에 위치한 중식당 ‘소상해반점’은 언제나 단골손님들로 북적거린다. 중국 출신 요리사 왕씨의 마음과 영혼이 담긴 일품요리는 사람들에게 행복한 맛의 경험을 느끼게 해준다. 남편과 사별하고 고향을 찾은 백화점 식품부 직원 야마시타 타카코는 왕씨에게 소상해반점의 백화점 입점을 제안하기 위해 찾아온다. 

왕씨는 타카코의 제안을 매몰차게 거절하지만 왕씨의 요리에 매료된 타카코는 그의 요리를 먹기 위해 매일같이 소상해반점에 들른다. 그러던 어느 날, 왕씨가 지병으로 쓰러진다. 다행히 위험한 고비를 넘기지만 후유증인 마비증세로 왕씨는 더 이상 요리를 할 수 없게 된다. 이 소식을 들은 타카코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왕씨를 찾아와 소상해반점의 맛을 잇기 위해 요리를 가르쳐 달라고 제안하는데…


영화의 주인공인 왕씨와 타카코


이 영화의 주인공은 중국 출신 요리사 왕씨(후지 타츠야 분)와 그의 제자가 되는 타카코(나카타니 미키 분_NHK 대하드라마 '군사 칸베에'에서 아내로 열연한 바 있다)이지만.... 사실 진정한 주인공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요리다. 그중에서도 마지막까지 꿋꿋하게 등장하는 하나의 요리가 있는데, 바로 '시홍스차오지단' (토마토 계란 볶음)이다... 잘 풀어놓은 계란을 프라이팬에 볶아서 스크램블 에그로 만들다가 잘라 놓은 토마토를 함께 버무려서 익히면 되는 초간단 요리. 


영화에 등장하는 요리들...보는 즐거움이 배가 된다.
이 영화의 상징적 주제가 된 요리 '시홍스차오지단'


그런데 이 초간단 요리가 '행복의 향기'라는 영화에선 주 메뉴로 등장한다. 수십 년간 중국 요리를 즐겨 먹어 왔던 사람이 자신의 죽을 날을 앞두고, 지금까지 즐겨 찾던 식당의 주방장에게 마지막으로 먹고 싶다고 주문하는 그 요리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어릴 적 요리가 불현듯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어촌에서 자란 나에게 가장 잊을 수 없으며 지금은 절대 맛볼 수 없는 식재료와 레시피가 하나 있다. 바로 날꽁치 알이다. 지금이야 원양어선들이 먼 바다에 나가 대량으로 꽁치를 잡거나, 혹은 조금 떨어진 근해에서 그물로 꽁치를 잡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내가 어렸을 적 고향 어촌에서는 방파제만 나가면 득실대던 생선이 바로 꽁치였다. 

손으로 꽁치잡이를 하는 모습


그런 이유로 어부를 하다가 그만둔 노인들이 조그만 뗌마(Temma)를 타고 근해에 노를 저어서 나가 꽁치를 잡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그 잡는 방법이 참으로 특이했다. 낚싯대도 없고 줄도 없고 바늘도 없다. 오직 나무 대롱으로 만든 꽁치 풀 더미와 고무장갑 그리고 꽁치를 담아올 바구니만 있으면 조업이 가능했다. 당시 나의 할아버지는 늘 소일거리로 근해에 나를 데리고 나룻배를 타고 나가 바다에 꽁치 풀을 드리우고 맨손으로 신선한 꽁치를 직접 건져 올리셨다. 

꽁치는 특이하게 꽁치 풀이라고 명명된 해초에만 알을 낳는 습성이 있다. 나룻배 옆으로 꽁치 풀을 드리우면 어느샌가 꽁치들이 몰려들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산란을 시작한다. 그러면 바다에 떠 있는 꽁치 풀 속에 조심스레 손을 넣어 그냥 꽁치를 건져 올리기만 하는 되는 것이다.

삶은 근해산 꽁치알...이젠 구경조차 할 수 없는 추억의 먹거리가 되었다.


그런데, 아이들은 그 맛있는 근해 꽁치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조업이 끝나면 우르를 달려가는 곳이 있었다. 바로 다음 조업을 하기 위해 꽁치 풀을 말려놓는 선창가로 몰려가는 것이다. 거기엔 정말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신선한 꽁치 알들이 꽁치 풀에 그득그득 붙어 있었다. 그 알들을 바구니에 담아 집으로 돌아오면 살짝 씻어서 그냥 날것으로 먹거나... 혹은 소금을 살짝 뿌리고 뜨거운 물에 데쳐서 꼭 도루묵 알처럼 간식 대용으로 싸가지고 다니면서 먹었는데... 그 맛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이제는 먹고 싶어도 맛볼 수 없는 유일한 추억의 음식이 되어 버린 것이다.


기어이 타카코는 왕씨에게 요리를 전수받는데...

주인공 왕씨에게 시홍스차오디안은 그런 음식이었다. 자신이 태어난 고향에서 가정집에 딸이 태어나면 술을 담가 땅에 묻는데.. 그 딸이 장성해서 시집을 갈 때 상견례에 내놓는 술이 바로 '시홍스차오디안'의 비밀 소스였던 것이다. 아주 간단한 레시피지만 그 비결을 모르면 제대로 된 자신만의 맛을 낼 수 없는 것처럼... 쉬워 보이는 일상이... 자신에게 특별하게 다가오기 위해선 남들이 모르는 추억과 비기를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는 묵직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우리의 일상을 맛스럽게 표현할 수 있는 힘은 무엇일까?


주인공이 만들어내는 요리는 단순하게 식재료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아닌 추억이라는 어떤 자신만의 삶의 궤적을 담고 있듯이. 나만이 가진 아주 맛있고 감동적인 일상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지나온 세월을 그냥 묻어버려서는 안된다는... 그 추억을 온전하게 간직하고 그리워하며, 아름답게 승화할 때 만이 진정한 삶의 행복이 찾아온다는 가장 기본적인 메시지를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맛있는 것... 


나에게 그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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