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는 현재만 있다

우리가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

by 김희성


연말을 맞아 도쿄로 떠나 일주일을 보내고 왔다. 작년 연말 도쿄에 다녀온 후 딱 1년 만이다. 크리스마스를 도쿄에서 보내고, 새해가 되기 전에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어딘가로 떠나기 전에는 늘 삶이 더 복잡해 보인다. 마무리 해야 할 원고, 가기 전에 해야지 하다가 미뤄 결국은 아직 하지 못한 정리들(이번에는 주방 하부장과 서랍장이 그랬다). 크고 작은 일들이 마음의 짐더미가 되어 머릿속을 어질어질하게 만든다. 맞다, 도쿄 가기 전에 해야 할 서류 정리도 있는데. 마침 감기 기운 탓에 스스로 정한 마감보다 타임라인이 이틀 정도 미뤄진 원고가 있어 그것까지 완성하고 나니 어느덧 밤 10시. 비행기를 타려면 새벽 3시에는 출발해야 하는데, 여행이고 뭐고 그냥 집에서 쉬고 싶어진다. 돌이켜 보면 매번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이런 패턴이었던 것 같다. 언제든 훌훌 떠날 정도로 정돈되고 가벼운 삶, 일도 짐도 홀가분해 여행 전날에도 산뜻한 기분을 유지할 수 있는 삶. 이번 생에 가능하긴 한 걸까? 다음 여행을 떠나기 전엔 반드시 그렇게 되는 게 목표다.




그렇게 도쿄로 떠나 일주일 내내 많이 걷고 많이 먹다가 돌아왔다. 걸음수를 살펴보니 2만보까진 안되고 매일 1만 5천보는 넘게 걸었다. 혹시 몰라 챙겨온 노트북 빼고는 모든 것이 가벼웠다. 여행에는 현재만 있기 때문이다. 지금 어디로 갈지, 무엇을 먹을지, 메뉴판에 이 글씨는 대체 무슨 뜻인지, 길을 잃은 것 같은데 어디로 가야할지. 모든 판단은 지금 이 순간을 위해 내려진다. 과거를 향한 후회나 미련, 미래에 대한 걱정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오늘 저녁에 뭐 먹지?', '내일은 어디가지?' 같은 가까운 미래를 위한 선택들만 있을 뿐이다.


그 과정의 반복 속에서 몸과 마음은 조금씩 평화로워진다. 아무리 피곤하고 힘들어도 일단 씻고,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는 단순한 계획 아래 새끼 발가락에 굳은살이 배길 정도로 걷고 또 걷다 보면, 그동안 짊어지고 있던 삶의 무게가 서서히 가벼워짐을 느낀다.


발이 아프고 피곤해도 아침마다 맛있는 커피를 마시러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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