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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제주댁 Sep 30. 2020

제주에선 추석을 추석이라 부르지 않는다

팔월멩질 먹으러 가게 마씨

내일은 추석 명절이다.

추석을 앞둔 이번 가을은 코로나19로 인해 예전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의 전통시장이나 대형마트에서는 조심스레 추석 준비가 시작되고 있는 것 같다. 매일 저녁이나 주말이면 추석선물과 추석빔을 사러 나온 가족단위의 인파들이 칠성통에 몰려드는 것을 보면 그래도 명절은 명절인가 보다.

추석.
제주 사람들은 추석이라는 단어보다 팔월멩질, 혹은 고솔(가을)멩질이 더 익숙하다. 설날도 예외는 아니다. 제주사람들은 설날 역시 정월멩질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더 많다. 육지사람들에게는 명절을 멩질이라고 부르는 것도 특이하고 멩질 앞에 팔월이나 고솔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도 흥미로울 테지만 가장 재미있는 점은 뭐니 뭐니 해도 제주 사람들에게 멩질은 쇠는 것, 혹은 지내러 간다고 하는 것이 아닌 ‘먹으러 가는’ 중요한 의식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제주사람들의 추석을 일컫는 완성형 문장은

 “팔월멩질 먹으러 가게”쯤이 아닐까 싶다.

팔월멩질 먹으러 가게   일러스트. 이로이로


그런데 왜 제주사람들은 먹는다는 표현을 쓸까?


“멩질 먹으러 가게”, “잔치(결혼) 먹으러 가게”, “식게(제사) 먹으러 가게” 등 제주사람들의 일생사 중 중요한 날에는 이 “먹는다”라는 표현이 꼭 따라붙는다. 제주사람들에게 함께 모여 먹는 행위가 얼마나 중요하고 제주사람들이 얼마나 이날만 기다려왔는지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육지부에서는 봄부터 시작된 논농사의 수확 시기이고 햇과일들도 무르익어 다채로운 햇곡식과 과일로 풍성한 시기에 추석을 맞는다. 하지만 제주의 경우에는 밭농사가 추석에 맞춰 마무리되는 것도 아니고 특히나 겨울 내내 마소에서 먹일 촐(꼴)을 베러 다니느라 정신이 없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건 비단 가을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그나마 정월멩질 즈음이 오히려 농한기라 팔월멩질보다는 좀 더 여유 있게 앉아 음식을 준비할 수 있었다고 한다. 제주사람들은 일 년 내내 쉴 새 없이 바빴다. 그래서 친지나 이웃을 만나 제대로 함께 쉬고 어울릴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나마 명절이나 가문잔치, 식게날(제사날)이 유일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이런 중요한 날 제주사람들은 ‘먹는다’라는 표현을 썼던 것 같다.

그런데 위에서 이야기했듯이 추석 전후 제주사람들은 그렇게 시간적으로 여유롭지 않았다. 한창 밭농사도, 바다농사도 하고 있는 중이고 촐도 베러 부지런히 다녔어야 했다. 그래서 제주의 어른들은 사실 정월멩질(설날) 팔월멩질 (추석)에 음식을 좀 덜 하는 경향이 있는 편이라고 한다. 물론 정월멩질이나 팔월멩질 모두 정성을 다해 음식을 마련하고 진설하지만 추석 음식이 조금 더 간소하다고 하는 편이다. 그 점이 가장 크게 드러나는 부분이 바로 ‘떡’이다.


정월멩질에는 땅, 밭, 해, 달, 별 순으로 제편, 은절미, 솔벤(변), 절벤(변), 우찍(기름떡)순으로 고여 올리는 데 비해 추석에는 떡이 대폭 간소화된다. 바로 많은 사람들이 아는 제주식 송편이 이 고임떡을 대체하기도 한다.



제주의 송편


그리고 송편과 함께 상애떡도 함께 오른다. 제주의 송편은 송편인가 싶을 정도로 그 크기와 모양이 궁중에서 먹던 오색송편이나 육지식 송편과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그래서 육지 사람들은 제주의 추석상을 보고 추석인데도 송편이 올라가지 않는다고 의아해하기도 한다.


제주의 송편은 동그랗게 빚어 위아래를 납작하게 눌러 만든다. 혹은 정의현(지금의 대정) 지역에서는 가장자리를 손으로 집어 조개 모양처럼 눌러 조개송편으로 만들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상애떡도 올렸는데, 아마 아직은 더운 9월, 발효도 잘 되고 더운 날에도 쉬이 상하지 않기 때문에 팔월멩질에는 만들어 진설하기 제격인 떡이었을 것이다. 물론 성산 쪽에는 상애떡을 상 위에 올리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각각 동네의 전통과 가정의 가가례가 있기 때문에 상애떡을 올리고 올리지 않는 문제는 마을 혹은 가정마다 다를 수 있다. 상애떡을 상에 올리지 않는다고 해서 상외떡이라고 부르는 마을이 있는 것을 보아도 상애떡이 차례상에 올라가느냐 올라가지 않느냐 하는 문제는 그 집마다의 속사정(?)에 따라 다를 것 같다.


제주의 상애떡


제주사람에게 멩질음식 중 가장 중요한 음식은 무엇일까?



조상에게 올리는 음식 뭐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지 않겠지만 아마도 가장 중요한 음식은 적이 아닐까 싶다. 제주도에서는 다른 제수 음식과 달리 적만큼은 남자들이 담당했다. 즉, 돼지고기 추렴에서부터 적을 굽는 것까지 모두 남자들의 몫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가정에 따라 적을 마련하는 일을 여성들이 수행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제주사람의 인식 속에 적 담당은 집안의 남자 어른이라는 생각이 확고하다. 이는 명절이 유교적 제의이기 때문에 남자의 역할이 중요했고 그래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겼던 음식은 남자가 하지 않았을까라고 유추해 보는 정도이다.

제주에는 돼지고기적, 소고기적, 상어적, 문어적, 소라적 등등 다양한 적이 있지만 다른 지역과 다른 특징적인 적을 하나 꼽으라고 하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모멀묵적을 이야기한다.


메밀가루로도 메밀쌀로도 쑤는 모멀묵은 사실 묵 자체만 보면 그렇게 신기하거나 특이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묵을 만드는 제주사람들의 마음가짐은 좀 특별하다. 일단 부정한 사람은 절대 이 묵을 만들 수 없었고 특히 옆에 귤이 있거나 귤을 먹으면서 만들면 이 묵이 쑤어지지 않고 흐트러진다고 어른들은 말씀하신다. 아마도 산(酸) 성분이 들어가면 묵이 잘 엉기지 않아서 이런 이야기가 생겼겠지만, 아무튼 메밀묵을 만드는 데는 많은 금기가 있다. 즉, 오로지 정성을 다해 어떤 잡념과 행동을 하지 말고 묵을 쑤는 데에만 집중하도록 했다. 그리고 다른 적은 홀수로 꽂는 데 비해 모멀묵적은 모멀묵을 잘라 구운 후 4개씩 꽂는 것도 그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는 더 많은 구술채록이 필요한 부분이다.



또 육지 사람들이 신기해하는 팔월맹질 음식은 아마 카스텔라나 롤케이크, 단팥빵 등 빵이 상 위에 진설되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제주사람들에게는 차례상 위에 카스텔라나 빵이 올라가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 언제부터 카스텔라나 단팥빵이 전혀 어색하지 않게 제물로 올라왔을까? 아마도 ‘떡’이라고는 부르지만 발효시켜 부풀려 빵의 형태에 가까운 상애떡이 그전부터 제물로 진설 됐기 때문일 것이다. 밀가루를 발효하여 쪄냈기 때문에 폭신폭신한 상애떡이 빵이나 카스텔라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을 것이다.

또 한 가지 이유를 개인적인 견해로 추측해 보자면, 아마, 카스텔라가 제주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식이었으며 당시에는 귀한 음식이었기 때문일 수 있다. 제주는 육지부에 비해 무속신앙과 유교적 제의가 자연스럽게 섞여 있다. 그래서 진설 음식에 대해 엄격함이 육지보다는 덜 했을 것이라 추측된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생전 살아계신 분이 좋아했던 음식들이 유교적 음식과는 별개로 올라갔을 것이라 본다. 또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은 아마 정성과 마음을 담아 당시에 귀했던 음식을 가지고 맹질집에 갔을 것이라 생각 든다. 지금에야 카스텔라나 빵이 누구나 쉽게 구입할 수 있는 흔한 음식이 되었지만, 과거에는 고급 음식이었다. 일제강점기 이후에 일본의 단빵과 카스텔라가 그 기술과 함께 자연스럽게 제주를 비롯한 우리나라에 유입이 되었고 예나 지금에나 바다 건너 온 음식은 ‘귀한 음식’ 대접을 받았기 때문에 과거에는 조상에게 ‘귀한 음식’ 취급을 받았던 일본의 빵류를 올리기 시작했을 것이라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그리고 제주사람들이 차례상에 올리는 카스텔라를 ‘대판카스텔라’라고 부르는 부분도 흥미롭다.

나 역시 왜 진설하는 카스텔라의 이름이 대판카스텔라인지 궁금해서 단골 빵집 사장님께 물어보았다.

“아저씨, 근데 저 큰 카스텔라를 왜 대판 카스텔라라고 하는 건가요?”
“카스텔라를 굽는 틀을 대판이라고 불러서 아닌가?”

다른 사장님 말씀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냥 작게 안 자르고 올리니까 대판카스텔라라고 부르는 거여.”



제주사람들이 부르는 이 ‘대판 카스텔라’의 어원이 무엇인지는 빵집 사장님들도 정확히 모르시는 것 같다. 그런데 이 대판은 바로 일본 오사카(大阪)를 의미한다고 한다는 주장이 있다. 실제로 제주에서 먹거나 판매하기 시작한 카스텔라가 오사카 지역에서 그 상품이나 기술이 유입이 된 건지, 아님 정말 빵집 사장님들 말마따나 카스텔라를 굽는 틀이 대판이라 해서 대판 카스텔라고 하는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멩질에 유독 그 달콤한 카스텔라를 칼로 똑같이 잘라 친척들과 사이좋게 나눠먹었던 추억이 있는 제주의 중년들은 대판 카스텔라가 어떻게 그렇게 불렸는지보다 그 카스텔라에 묻어 있는 가족의 정이 더 그립다.

올해는 유난히 조용한 코로나 시대의 팔월멩질을 맞이하게 되었다.

제주 스타일대로라면 맹질날, 하루에 열 끼까지 먹을 각오(?)를 다지며 큰 소리로 “멩질 먹으러 가게!”를 외쳐야 하는데 올해는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이 어쩐지 서글프다. 코로나19 때문에 그간 만나지 못했던 가족들을 만나지 못하는 상황도 참으로 애석하고 쓸쓸하다.

그래도 팔월멩질은 그래도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척, 친구, 은사님 등 소중한 사람에게 연락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실제로 찾아뵙지는 못하더라도 언텍트 시대에 스마트 기기를 활용해 영상통화로 혹은 옛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다정한 손편지로, 그것도 어렵다면 따뜻한 마음을 담은 전화 한 통화로 서로의 건강과 행복과 안녕을 비는 마음을 전달해 보는 건 어떨까?



 글은 <제주의 소리> "제주댁, 정지에書"  연재되는 글과 일러스트입니다.


@jeju_cookinglife
오늘도 제주댁 : 제주 음식을 공부하는 제주토박이 워킹맘

@iroiro.one
이로이로 : 제주도 작은 마을 작은 공방에서 그리고 쓰는 일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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