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동네
가 본 적이 없는 동네에 처음 발을 들이게 되는 일은 늘 49퍼센트의 설렘과 51퍼센트의 두려움이 함께한다. 그 1퍼센트 모자라고 1퍼센트 넘치는 틈을 메꾸는 것은 가고 싶은 어떤 장소, 보고 싶은 무언가에 대한 호기심이다. 요가(用賀)도 그랬다. 도쿄에 있는 기간에 마침 보고 싶은 전시가 있었고, 그 전시가 세타가야미술관에서 열리고 있었으며, 세타가야미술관이 있는 곳이 요가였다.
지하철역에서 지상으로 올라와 처음 만난 요가의 느낌은, 차분하다는 것이었다. 사실 도쿄의 동네들은 중심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차분한 편이기는 한데 요가는 무언가 한 톤 더 낮은 차분함이 느껴졌다. 분명 역 앞의 좁은 길은 사람들로 북적이는데도 북적임이 북적임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미술관까지는 걸어서 20분. 구글 지도가 알려주는 루트에서 큰길이 아닌 골목으로 가는 길을 골라 역을 뒤로했다. 역 주변에서 벗어나자 곧 낮은 주택들이 이어졌다. 일본의 주택가를 걷는 걸 좋아하는 이유는 눈앞으로 하늘이 넓게 펼쳐져서다. 굳이 높이 고개를 들지 않아도 하늘은, 구름은, 해님은 늘 여기에 있다고 말해주는 듯해 마음이 놓인다. 그 하늘에 이끌려 루트에서 벗어나 다른 골목으로 접어들기도 하면서 실컷 구불구불 방황한다.
그렇게 향하다가 한 길로 접어들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걸어온 회색 길과는 뭔가 달랐다. 낮은 주택들이 이어지는 것은 비슷했지만, 갑자기 양옆의 무성한 나무들 사이로 온통 검은색인 길이 쭉 이어졌다. 길가에는 중간중간 도깨비를 닮은 장식물이나 특이한 형태의 벤치, 마치 가우디의 작품을 연상시키는 구조물 등이 놓여 있었다. 게다가 농작물을 키우는 밭까지 넓게 펼쳐졌다. 그 밭에는 '유자, 감 판매합니다'라는 손글씨 푯말도 걸려 있었다. 오호 이 동네 뭐지?
나중에 찾아보니 이 길은 이라카미치いらかみち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길이었다. 역에서 미술관까지 이어지는 길이 '걷고, 느끼고, 즐기고, 쉬는 길'이 되었으면 해서 1979년 세타가야 '생활과 문화의 축'을 만드는 프롬나드(산책길)의 일환으로 계획되어 1986년 완성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그 검은 길의 바닥은 모두 아와지섬의 기와로 되어 있었고, 그 기와에는 '100인 1구의 와카' 프로젝트로 와카(전통 시)가 기와에 새겨져 있었다. 더군다나 와카가 들어간 기와를 보수할 때는 지역 초등학생들이 직접 시를 새길 수 있도록 해 같은 시여도 글자체가 모두 달랐다. 오래전 와카 시인과 처음에 와카를 새겼던 사람, 그리고 지금의 초등학생이 시대를 뛰어넘어 하나의 시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어 근사했다. 시대가 이어지고 이어지는 느낌. 참고로 이라카는 기와를 의미한다. 생각지도 못했던 낯선 풍경과 우연히 만나 바닥의 와카로, 길가의 오브제로, 단정한 집들로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 보니 멀리 공원 입구가 보였다.
기누타 공원. 세타가야미술관은 이 공원 안쪽에 자리한다. 내가 처음 요가를 찾았던 때는 가을이 깊어가 겨울을 향하던 무렵이었다. 한가롭게 산책하는 사람, 운동하는 사람, 어린이집에서 산책 나온 아이들, 부모와 놀러온 아이들이 낙엽이 지는 공원을 차지하고 있었고, 그 사이에 껴서 공원을 누볐다. 그러다가 기누타야키라고 적힌 가게를 발견했다. 처음에는 너구리 일러스트를 보고 너구리를 뜻하는 다누키로 읽었는데 다시 보니 기누타라고 적혀 있었다. 공원 이름이 기누타라서 기누타야키인 건 알겠는데 왜 일러스트가 너구리이지?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어쩌면 기누타, 다누키로 살짝 말장난을 하며 틀지 않았을까 싶었다. 처음에 잘못 읽은 나처럼. 보통은 이런 가게를 발견해도 그냥 지나치는 편인데 이날은 그냥 그러기 싫었다. 기누타야키를 주문해 받아 들고 공원 벤치에 앉았다. 너구리 얼굴이 찍힌 포장지를 열자 똑같이 너구리 얼굴이 찍힌 기누타야키가 나왔다. 커스터드 크림이 들어간 동그란 빵을 입에 물고 주변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다 딸과 아버지로 보이는 두 사람이 산책하는 모습에 시선이 멈추었다. 지팡이를 짚은 아버지를 부축하며 걷는 그들을 눈으로 좇으며, 저렇게 할 수 있는 애정이 나에게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가 가족에게 보이는 무심함이 고스란히 그에 대한 나의 무심함으로 바뀌고 있어 속이 시끄러울 때였다. 입은 달지만 마음은 씁쓸한 채 두 사람의 모습이 오래 기억에 새겨졌다.
몇 년 후, 기누타야키를 먹었던 이날의 장면은 번역하는 책의 한 장면과 이어졌다. 책에서는 고양이가 주인공이고 붕어빵을 사 먹고 참새를 놀리지만, 번역 작업을 하는 내내 그 꼭지에만 다다르면 자꾸만 이때로 넘어갔다. 전혀 연관성이 없는 두 개의 순간이 이어지면 영영 잊히지 않는 기억이 되어 영원의 시간을 얻게 될까. 아니면 이 기억도 언젠가는 희미해질까.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혼자였을 때의 기억보다는 두 개의 기억으로 겹쳐졌을 때 더 폭신폭신한 무언가가 되는 듯하다.
<잡지로 보는 컷의 세계(雑誌で見るカットの世界)>. 이날 내가 보려고 했던 전시의 제목이다. <세계>라는 잡지와 <생활의 수첩>이라는 잡지에 들어가는 삽화, 컷에 대한 전시였다. <생활의 수첩>이라고? 삽화라고? 하나모리 야스지(花森安治)라고? 가야 할 이유는 이 세 가지만으로도 충분했다. 아니 차고도 넘쳤다. <생활의 수첩>이라는 잡지는 예전부터 좋아했던 잡지라 익히 알고 있었는데 <세계>는 어떤 잡지일까? 찾아보니 1946년에 창간되어 초대 편집장은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제목과 주제의 근본이 된 책을 쓴 요시노 겐자부로였다. <생활의 수첩>도 같은 해에 오하시 시즈코와 하나모리 야스지를 통해 창간되었는데 매일 더 아름답고 풍요로운 생활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잡지다. 이 잡지는 창간부터 지금까지도 광고를 일절 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데 제품을 직접 사용하고 소개하면서 편견 없이 전하기 위해서라고 했던 것을 전시에서 언뜻 본 듯하다. <생활의 수첩>에 들어가는 삽화와 표지는 초기에 대부분 하나모리 야스지의 손에서 탄생했다. 이 전시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당연히 하나모리 야스지의 삽화들이었지만, 다른 의미로 <세계>라는 잡지가 어떻게 창간되었고 어떤 내용을 담았느냐 하는 부분이었다. 제국주의로 치달은 일본의 침략과 전쟁을 막지 못한 것은 국민들이 세계와 세상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이었다, 지금이라도 깊고 넓게 알기 위해 이 잡지를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사실 어렴풋하지만, 그 안에 담긴 기사에는 일본이 어떤 일을 했는지, 한국에 대한 내용도 꽤 많이 담겨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세계>의 삽화는 당시 일본을 대표하던 근대미술가의 그림들이 실려 <생활의 수첩>의 하나모리 야스지의 삽화와 함께 보면서 그 스타일의 다름도 감상할 수 있었다.
이날의 전시는 그로부터 몇 개월 후 또 하나의 전시로 이어진다. <아트디렉터의 일 오누키 다쿠야와 하나모리 야스지(アートディレクターの仕事 大貫卓也と花森安治)>다. 이 전시를 보기 위해 7월의 폭염이 이어지던 도쿄를 찾았었다. 오누키 다쿠야는 대표적으로 유원지 도시마엔의 광고로 유명한데 중화요릿집에 붙어 있던 '히야시주카(중국냉면) 시작했습니다'라는 문구를 참고해 '차가운 수영장 있습니다'라는 카피를 탄생시키고 '역사상 최악의 유원지'라는 카피 아래에 '4월 1일입니다'라는 문구가 들어간 포스터 등을 만드는 등 일상생활의 친숙한 장면에서 광고 문구를 만들어내는 데 선수인 디자이너다. 이 전시에서는 삽화와 일러스트로 잘 알려진 하나모리 야스지가 맡았던 광고들도 함께 소개해 지금까지 내가 접했던 것과는 또 다른 하나모리 야스지의 작품과도 만나게 해주었다.
작은 전시에 대한 호기심이 요가라는 동네로 이끌고, 하나모리 야스지라는 축을 중심으로 서로 다른 해의 가을과 여름을 이어져 여러 갈래로 세계가 확장되면서 연결되는 느낌.
늦가을과 한여름, 어떻게 보면 상반된 계절에 찾은 기누타공원은 계절에 어울리는 공기와 풍경을 안겨 주었다. 늦가을의 기누타공원은 시작과 성장의 단계를 거쳐 성숙의 날들로 나아가는 듯 그 공기에서 편안함과 안정감이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어떤 복잡한 마음을 품고 발을 들이더라도 품어줄 듯했다. 바스락바스락 거리는 낙엽이, 듬성듬성해진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하늘이. 한여름의 기누타공원은 하늘을 빼곡하게 채운 초록색 나무들이 시원한 그늘을 내어 주면서 앞으로 더 진한 초록색을 향해 내달리는 자신들처럼 멈칫거리지 말고 조금 더 가도 된다고, 성장해도 된다고 등을 떠밀어주는 듯했다. 더운 공기였지만 약간 서늘한 긴장감도 느껴졌다고 할까. 그런 나무들 아래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오로지 벽에 향해 테니스공을 날리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사진처럼 머리에 새겨져 있다. 그리고 기누타공원 안쪽에 자리한 세타가야미술관은 공원의 초록과 갈색의 잎을 표현한 것처럼 연한 초록색과 적갈색의 지붕을 가지고 낮게 포진해 있었다.
두 계절에 빼놓지 않고 들른 곳이 있다. 킷사텐 가피탄이다. 나는 언젠가부터 도쿄의 어딘가를 갈 때면 근처에 킷사텐이 있는지 찾고는 하는데 이곳도 그렇게 해서 발견했다. 보통 킷사텐에 들어갈 때 아주 크게 호흡하고 들어가는 편이다. 동네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는 장소에 이방인인 내가 들어가도 될지 주춤하게 된다고 할까. 약간의 용기가 필요하다. 킷사텐 가피탄도 그랬다.
가을의 긴 도쿄 여행에서 나는 결심한 게 있었다. 망설이지 말고 들어가 보자. 망설이지 말고 해보자. 늘 망설이다 그 문을 열지 못하고 눈이 동그랗게 떠질 순간을 놓치는 나 자신을 깨고 싶던 때였다. 그래서 평소에는 잘 사 먹지 않는 기누타야키를 사 먹었고, 망설이던 킷사텐의 문도 열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백발의 마스터가 어서 오라며 반겨주었다. 안에는 동네 주민으로 보이는 두 마담이 슈퍼 전단지를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 뒤로 자리를 잡고 커피를 주문했다. 진한 나무색의 카운터석과 4인 좌석이 네다섯 개 있는 작은 킷사텐이었는데 자가배전을 하는지 커피콩 볶는 기계가 입구에 놓여 있었고, 카운터석 뒤 벽면에는 빼곡하게 커피잔이 쭉 진열되어 있었다. 나에게 커피를 내어주고 카운터에 앉아 신문을 펼쳐드는 마스터. 이날 계산하려고 자리에 일어났는데 속으로 훗, 하고 웃게 된 장면이 있었다. 카운터 뒤에서 마스터와 여주인이 무언가를 먹는(아마도 식사?) 모습을 본 것. 일본에서는 어디를 가든 주인이 자신의 가게에서 밥을 먹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늘 적당한 거리감으로 커피를, 식사를 내어주는 그들에게도 끼니를 챙기는 시간이 있음을 본 순간, 마음의 거리가 조금 더 가까워진 듯했다.
그다음 해 여름에 찾은 가피탄에서는 미팅을 하는 두 사람이 있었고, 걷다가 들어와 커피를 사가며 마스터와 담소를 나누던 청년이 있었다. 이 날은 가을에 보았던 마스터와 여주인 외에 젊은 마스터가 한 사람 더 있어 내가 있는 내내 커피콩을 고르고 배전을 했다.
마을 주민들의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가, 마스터의 일상의 모습이 담긴 킷사텐에 있다 보니 나까지 그들의 일상에 쑤욱 들어가는 듯하다. 여행자로 찾은 나의 일상은 이들의 눈에 어떻게 비칠까? 카피탄에서는 늘 그날 보았던 전시의 팸플릿을 펼쳐보았다. 그래서 나에게 킷사텐 가피탄은 전시를 마무리 짓는 장소이자 한 시간이라도 요가라는 동네에 머무는 주민이 되어 보는 곳이다.
처음 가피탄을 방문하고 돌아갈 때의 일이 아직도 기억난다. 내가 문을 닫고 돌아서 걸음을 뗄 때까지 안에서 나와 눈을 마주치고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고 있던 여주인의 따뜻한 눈빛. 슬라이드처럼 한 컷 한 컷씩의 장면이지만, 그렇게 이곳에 대한 기억도 하나둘 쌓아간다.
얼마 전에 번역한 킷사텐 책의 옮긴이 프로필에는 아래와 같은 문구가 들어가 있다.
킷사텐을 좋아해 '동네마다 킷사텐을'이라는 프로젝트를 조용히 진행하며 기록한다.
'동네마다 킷사텐' 프로젝트는 사실 요가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요가의 킷사텐에서 시간을 보내며 이렇게 동네에 마음에 드는 킷사텐이 늘어가는구나 싶었고 이 프로젝트를 떠올렸다. 한 번이 아닌 여러 번 가면서 느끼는 편이라 늘어나는 동네도 킷사텐의 수도 적지만, 그렇게 요가라는 동네에 좋아하는 킷사텐이 하나 생겼다.
요가라는 동네의 이름은 우리가 잘 아는 그 '요가(yoga)'에서 왔다는 설이 있다고 한다. 도대체 이 말이 언제 들어왔는데 동네의 이름까지 되었을까 싶어서 찾아보니 헤이안시대 초기에 중국을 통해 들왔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요가는 산스크리트어로 결합, 이어짐이라는 뜻. 몸과 마음의 결합을 의미한다는 것을 이 글을 쓰며 알았다. 가을의 요가와 여름의 요가. 두 계절을 평행하게 잇는 하나모리 야스지. 그리고 그를 통해 뻗어 나가는 또 다른 이야기들. 누군가의 일상에 잠시 발을 들이게 해주는 카피탄.
이제 나에게 요가는 좋아하는 공원과 미술관과 킷사텐이 있는 동네다. 언제든 낯선 마음과 낯설지 않은 마음을 품고 갈 수 있는 동네다. 처음으로 가는 동네는 멀리 떨어져 조감하게 된다면 두 번째 이후부터는 조금은 익숙하다는 감각에 의지해 현미경으로 바라보게 된다. 찾는 횟수를 거듭할 때마다 지난번에는 보지 못한 새로운 작은 순간들을 들여다볼 것이다. 그 핑곗거리를 만들기 위해 자꾸만 미술관 사이트를 들락거리고, 요가 주변의 동네에까지 시선을 뻗힌다. 요가는 그 동네 이름처럼 도쿄와 나를 묶고 연결시키는 또 하나의 장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