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 출판 번역가, 편집자의 살아가는 이야기
아마도 올해 6월 즈음이었던 것 같다.
이전보다는 많아진 시간을 산책으로 채우며 머릿속에 뒤죽박죽으로 쌓여 있던 것들을 천천히 비우던 날들이었다. 그날도 지하철 한 정거장 정도는 걸어야지 하면서 슬렁슬렁 걷다가 문득 고개를 돌려본 곳에는 베이지색의 자그마한 카페가 오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코로나 때문에 자영업자가 정말 힘들다고 하던데 이런 시기에도 시작하는 곳이 있네. 이런 생각을 하며 그냥 지나쳤지만 오픈하면 가봐야지 하는 마음이 한켠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여름이 시작되고 있었다.
지금 사는 동네에는 2년 전에 이사를 왔다.
파주로 출퇴근하기 쉬운 곳이라는 전임 편집자의 말에 고른 동네였지만, 작은 카페들이 많아 단골 카페 하나쯤은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기도 했다. 하지만 회사를 다니는 동안에는 단골 카페 대신에 단골 편의점만 생겼다. 저녁에 집에 돌아오면 손끝하나 까닥할 수 없을 정도로 지쳐 있었고 그래도 몸에 무언가는 집어 넣어야 해서 뻔질나게 드나든 결과였다. 편의점에서 사용할 수 있는 휴대전화 통신사 포인트가 바닥이 보일 정도였으니 내가 생각해도 헛웃음이 난다.
그러고 나서 나는 결국 퇴사를 했고 혼자 일을 하면서 단골 카페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프리랜서 1막 시절에는 한국어 수업으로 밖에 나가는 일이 많아 단골 카페를 따로 만들지는 않았다. 가끔 집에서 일하기 답답하거나 집중이 안 될 때는 당시 살던 곳 근처에 세 개나 있던 스타벅스 가운데 가장 한가한 곳에 가던 정도. 하지만 지금은 한국어 수업을 잠시 쉬면서 집에서 일하다 보니 일주일에 며칠이고 집에 처박혀 있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밖에 나가는 일을 줄이는 안 좋은 습관이 생겼다. 뭐, 코로나 시대에는 이것이 더 나은 습관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지내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단골 카페가 될 만한 곳을 물색했다. 그리고 6월에 발견한 그 카페를 떠올렸다. 일단 내 마음대로 단골 카페 후보에 올려둔 다음 '오픈한 지 얼마 안 되었을 테니 사람도 많지 않겠지?' 이런 생각으로 주변을 어슬렁 거리며 카페를 탐색했다. 손님은 아직 많지 않았고 일하기 적당한 구석 자리도 있었으며 무엇보다 인스타를 보니 직접 구운 스콘을 판매하고 있었다.(나는 스콘이라면 쌓아놓고 먹고 싶은 사람이다.) 내 멋대로 세운 단골 카페 조건 세 가지,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으면서 작은 카페이고 커피값이 저렴할 것을 모두 충족하는 카페.
좋아! 이곳을 단골 카페로 삼겠어!
그렇게 초여름에 발견한 카페를 여름 내내 뻔질나게 드나들면서 수첩에는 끄적끄적 글들이 쌓였다. 그 사이 아직은 낯설게 있던 카페도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며 익숙한 동네 풍경으로 녹아들었고 베이커리 메뉴도 늘었으며 열 잔 마시면 한 잔 무료인 스탬프로 생겨났다. 의외로(?) 낯을 가리는 성격이라 카페 주인장과 친해지거나 그런 것은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아 눈인사만 주고받기는 하지만 카페에 가지 않는 날 그 앞을 지나갈 때는 손님이 있나 슬쩍 쳐다본다. 모처럼 내가 단골 카페로 삼았으니(니가 뭐라고?) 제발 오래오래 동네 카페로 남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동네에 단골 카페를 만든다는 것은 어쩌면 혼자 일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는 작은 숨쉴 구멍 그 이상의 존재일지도 모른다. 집과는 다른 편안한 곳이 있다는 것. (나 혼자 그렇게 느끼겠지만) 눈인사만 하더라도 보이지 않는 가느다란 유대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잠시나마 사회와 접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 이 동네를 떠날 날이 오면 이 카페는 내 단골 카페라는 족쇄(?)에서 풀려날 것이다. 그러니 다닐 수 있을 때 뻔질나게 드나들려고 한다. 연휴가 끝나면 얼른 달려가 달달한 스콘을 한입 베어물고 수첩에 끄적끄적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