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면...밀고 갈래요?
많은 분들이 익숙한 파스타의 모습은 길쭉하고 딱딱한 면이 비닐에 포장되어 나온 것일텐데요. 면을 바싹 말려서 보관과 유통을 쉽게 한 그런 파스타는 보통 '드라이 파스타(dry/dried pasta)'라고 해요. 전 세계적으로 파스타가 알려지고, 이역만리에있는 저같은 사람도 다양한 파스타 요리를 만들게된 데에는 드라이 파스타의 역할이 결정적이라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드라이 파스타(건 파스타 또는 건면), 만큼이나 파스타 문화에서 중요한 부분은 프레쉬 파스타(생 파스타 또는 생면)입니다. 파스타의 건면과 생면을 구별하는데는 지리, 문화, 역사, 경제 등 여러가지 설명이 가능하다고 하네요. 이를 이탈리아 남북부의 차이로 일반화하기도 하고요.
그냥 결과물 자체만 놓고 봤을 때 둘의 가장 큰 차이점은 '달걀'의 유무입니다. 단순하게 말해서, 건면은 밀가루와 물만 가지고 반죽을 하고 생면은 밀가루와 계란을 가지고 반죽을 하거든요.
딱히... 뭐 없습니다. 생 파스타를 접한다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기는 하지만, 영양적으로나 맛으로나 생면이 건면보다 낫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은 없어요. 생 파스타를 소개하는 글을 봐도 '절대 생 파스타가 건 파스타보다 우월한 것이 아니다'라고 신신당부를 합니다. 한 요리사는 '생 파스타는 먹기에 너무 무거워서 건 파스타를 더 선호한다'고 까지 하더라구요.
어려서부터 생 파스타를 접했을 이탈리아 사람들이야 생 파스타를 더 특별하게 여길 수는 있겠지만, 저희는 그냥 '스파게티, 링귀네'처럼 서로 다른 형태의 파스타일 뿐이라고 보는 편이 맞을 것 같아요.
물론 생 파스타를 만드는 일이 전혀 쓸모없는 일은 아닙니다. 먼저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생 파스타를 만들고 먹는 경험은 재밌고 새로운 경험입니다. 내가 뭔가를 직접 만든다, 요리한다는 즐거움은 제가 브런치에 글을 쓰는 원동력이자 많은 분들이 접하셨으면하는 느낌이죠.
또한 실질적으로, 생 파스타를 만들면 다양한 모양의 파스타를 직접 만들 수 있습니다. 특히 라비올리, 토르텔리니 등 만두 형태의 파스타를 빚기 위해서는 생 파스타를 직접 밀어낼 필요가 있거든요. 아니나 다를까, 오늘 제가 이렇게 생 파스타를 소개해드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레시피]의 하나로, '토르텔리니'를 준비했기 때문이죠!
본격적으로 토르텔리니 레시피를 다루기 전에 그것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생 파스타 만들기부터 한번 알아보도록 할게요~
필요한 재료는 다음과 같습니다.
*아래 레시피는 대략 성인 2인분 분량입니다.
요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위생이지만, 특히 오늘은 반죽을 칠 것이기 때문에 매우 깔끔하고 깨끗한 작업 환경이 필요합니다. 손도 깨끗해야한다는 것, 알고 계시죠?
포크와 믹싱볼이 어떻게 쓰이는지는 아래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중력분(다목적 밀가루)을 사용하시면 돼요. 외국 레시피를 보면 뭐 '꼭 더블 제로(00) 밀가루를 써라'고 얘기하는데("더블 제로"라는 것은 이탈리아식 밀가루 분류법에 따른 명칭입니다), 이것은 시중에서 찾기 힘들죠. 그러니까 그냥 중력분 ㄱㄱ 합시다.
밀가루 100g 당 달걀 1개를 봅니다. 달걀은 좀 큼지막한 것으로 써 주시는 것이 좋구요. 뭐 수분이 부족하다 싶으면 물을 살짝살짝 묻혀가면서 반죽해도 되니까 크게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나저나 요즘 AI 때문에 난리라서 참 걱정이네요... 달걀 한판씩 쟁여두면 마음이 참 든든했는데, 이제는 그것도 쉽게 하질 못할 것 같아요. 조류들아 아프지마 ㅠㅠ
(3. 세몰리나)
세몰리나는 말하자면 아주 거친 밀가루입니다. 특히 듀럼 밀로 만든 세몰리나는 건 파스타를 만드는데 사용되는데요. 이것을 생 파스타에 넣어주면 건 파스타의 '알덴떼'와 비슷한 식감을 줄 수 있습니다. 즉, 씹는 맛이 생긴다는 거죠.
세몰리나를 넣어주실 경우 위에서 말씀드린 다목적 밀가루 100g에서 일정량을 빼시고, 그만큼 넣어주시면 됩니다. 예를 들어 다목적 밀가루 75g과 세몰리나 25g을 넣는 식으로 말이에요. 이 비율은 파스타를 계속 만들어 보시면서 본인 입맛에 맞게 조절하시는 것이 좋겠네요.
다만 개인적으로 세몰리나를 넣은 반죽은 되게 단단해져서, 좀 다루기가 힘들더라구요. 이번에는 면의 씹는 맛보다는 빠르게 파스타를 만들기 위해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조리과정을 알아봅시다.
'생 파스타 만들기'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바로 위와 같은 '밀가루 우물'입니다. 마치 이탈리아 파스타 장인이 된 것 같은 포스를 보여줄 수 있지만, 사실... 좀 어렵습니다. 자칫 잘못해서 계란물이 넘치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개판이 되거든요(실제로 실패해서 다시 찍었습니다)
그냥 테이블 말고 믹싱볼에다 하면 좀 통제하기가 쉽습니다.
믹싱볼에 담은 밀가루에도 자그마한 우물을 파고, 계란을 깬 다음, 계란을 풀어주세요. 포크로 우물 바닥을 긁는다는 느낌으로 강렬하게 원을 그려주시면 되는데요, 주변 밀가루들이 서서히 끌려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만약 밀가루가 끌려들어가기보다 바깥으로 밀려나가는 모양새가 보이면, 손가락으로 밀가루를 우물 안으로 툭툭 쳐 넣어주세요. 물론 외벽이 무너지지 않는 선에서 말이죠.
계속 반복하시다보면(생각보다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계란물의 색깔이 변하다가, 급기야 반죽이 포크에 달려서 올라오는 정도가 되는데요, 이때부터 손으로 반죽을 치시면 됩니다. 포크에 붙은 반죽을 쫙 밀어내신 뒤에...
손으로 밀가루를 계속 뭉쳐주세요.
어느정도 반죽의 형태가 갖춰졌다고 생각되면 바닥에 놓고 반죽을 칩시다.
반죽 속에서 밀가루가 뭉치거나하는 일이 없도록 잘 쳐주어야겠죠?
한 쪽 손끝으로는 반죽을 꽉 잡은 채로, 다른 쪽 손바닥으로 반죽을 쭉 밀고, 다시 접고, 또 미는 과정을 계속해주세요. 이 과정은 반죽이 밀가루를 다 머금을 때 까지 계속 해주시면 됩니다. 길어도 10분 정도? 그정도만 하시면 될거에요. 바닥에 있는 저 밀가루도 결국에는 다 반죽 속에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보통의 경우 계란 하나로 충분할 것은 같지만, 혹시나 반죽을 하는 과정에서 너무 반죽이 건조하다고 느끼실 수 있는데요, 그럴때는 물을 몇방울 떨어트려주세요.
이렇게 반들반들하고 이쁘게 공 모양을 만들 수 있으면, 반죽이 다 되었다고 보셔도 될 것 같아요.
바로 드시기보다는 숙성을 해서 드시는 편이 좋습니다. 랲으로 잘 싸서 최소 1시간 냉장고에 넣어두세요. 저는 보통 하룻밤정도 숙성시키는 편인데, 왜냐면 보통 밤에 심심할 때 만들고 자거든요... 이거 한번 하고 나면 잠 잘~ 옵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편하거나 쉬운 과정은 아닙니다. 특히 이 반죽을 밀어서 펴는 과정까지 더해지면 '내가 왜 사서 이 고생을...'하는 생각이 들 정도니까요.
그래도 이렇게 생 파스타 반죽을 만드는 일은 꽤 유용합니다. 시중에서 구하기 힘든 다양한 종류의 파스타를 직접 만들 수 있고, 무엇보다 재미와 보람이 있어요. 제가 별볼일없는 실력에도 불구하고 이것저것 만들어보는 이유가 바로 그 재미 때문이거든요!
그렇게 제가 좋아하는 일이니 만큼, 나중에 가족이 생기면 같이 먹을 파스타를 함께 만들어 보고 싶네요. 왜 그런거 있잖아요, 단독 주택에서 주방 창문을 내다보면 드넓은 초원이 펼쳐져있고, 오손도손 모인 가족들과 화기애애하게... 그런 그림말이죠. 아마도 저한테 생 파스타는 그런 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뭐... 단독 주택 부분은 실현하기 힘들더라도 주방에서 화기애애한 부분은 이룰 수 있기를 바라면서, 글을 마무리 지어볼게요.
감사합니다!
*2017년 12월30일 수정(사진 상하단부 검은 줄 제거) / 썸네일 사진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