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여름이라면 견딜만할텐데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여름의 이미지는 이렇습니다... 만, 요즘 같은 날씨에는 그냥 여름이라는 녀석의 뚝배기를 깨버리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듭니다(참고로 뚝배기=...)
현실에서 이상적인 모습을 기대할 수 없다면, 그것을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구현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마치 현실에 좌절한 예술가의 심정이랄까요...? ㅎㅎ...
그래서 저는 그것을 요리로 표현할 방법을 찾아 봤습니다. 바질 페스토로요. 강렬한 에너지와 생동감이 느껴지고 다양한 풍미가 우리를 상쾌하게 만들어주는 레시피입니다!
페스토(pesto)는 기본적으로 다양한 재료를 갈아서 만드는 소스류를 통칭하는 이탈리아 말입니다. 다만 바질과 치즈, 견과류 등을 이용해서 만드는 페스토 알라 제노베제(pesto alla genovese : 제노바식 페스토)가 워낙 유명하고 인기가 많기 때문에 페스토의 대명사처럼 된 것이죠. 우리가 알고 있는 소위 바질 페스토가 바로 그 제노바식 페스토입니다.
한국에서 만들기에 재료 구하기가 힘들기는 하지만 실제로 저도 참 좋아하는 레시피라서 자주 만들어 먹는데요. 재료만 준비된다면 직접 만드는 시간은 5분 정도라서 빠르고 편하게 만들 수 있어요. 뭔가 고생스럽지 않은 레시피라는 점이 여름이랑 더 어울리지 않나요?
필요한 재료는 다음과 같습니다.(※사진은 2인분)
당연한 말씀이겠지만, 싱싱한 바질을 사용하시면 좋습니다.
외국 커뮤니티를 가보면 '왜 내 페스토에서 쓴 맛이 나죠?'같은 질문을 많이 접하실 수 있는데 보통은 바질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고요. 외국에서는 페스토를 만들 때 주로 본인이 직접 기른 바질을 사용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저희는 그냥 사서 씁시다(...) 저도 집에서 바질을 비롯한 허브를 기르긴 하지만 본격적으로 요리에 쓸 만큼 풍성하게 길러내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라서요. 그리고 보통 페스토 1인 분당 바질 10g 정도를 잡는데(조금 더 넣으셔도 좋아요) 바질 잎사귀 10g... 이거 수확하는 게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나저나, 구입하려고 해도 요즘 허브 구하기가 왜 이렇게 힘든지 모르겠네요. 원래 어려웠지만 최근 파는 곳이 더 줄어든 것 같습니다. 제가 이용하는 식재료 쇼핑몰 중에는 마켓 컬리가 유일하게 바질을 판매하고 있네요.
페스토를 만드는데 가장 까다롭고 부담스러운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치즈는 비싸서 그렇기도 하고, 1~2인분에 해당되는 양 정도야 갈아내는데 큰 무리는 없지만, 양이 많아질수록 일반 치즈 그레이터로 갈아서 준비히기가 쉽지 않거든요.
'요리는 정성'이라는 말이 물씬 느껴지실 겁니다.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하세요~ 팔 근육 화이팅~!
원리는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치즈와 똑같습니다. 필요한 만큼 갈아서 준비하시면 돼요.
현실적으로 한국에서 구할 수 있는 페코리노 치즈는 페코리노 로마노 밖에 없을 것입니다마는, 뭐랄까... 원칙적으로 페스토에 자연스러운 재료는 페코리노 피오레 사르도라는 치즈라고 해요.
페코리노 피오레 사르도는 페코리노 로마노와 마찬가지로 양젖으로 만드는 치즈인데, 페코리노 로마노보다 맛이 많이 순해서 페스토에 들어간 다른 재료들의 미묘한 맛과 향을 압도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또 원래 전통적으로 피오레 사르도를 사용해 왔다고 해요. 이것에 관해서 정확한 이유를 알기는 힘들지만 아무래도 지정학적인 원인이지 않겠나... 하고 추측합니다.
하지만 말씀드렸다시피 현실적으로 한국에서는 페코리노 로마노도 겨우 구하는 처지이기 때문에, 그냥 있는 것을 씁시다. 뭐, 페코리노 로마노를 사용했더니 너무 짜고 막 풍미가 너무 강하다 싶은 분들은 사용량을 적절히 줄이시고 그만큼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를 넣어보시는 것도 방법일 수는 있을 것 같네요.
기름 없이 후라이팬에 볶아서 사용하는 레시피도 있습니다만 볶지 않는 레시피가 더 많고 그러한 과정이 불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으니까 기호에 맞게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잣이 들어가면 고소~하고 고상한 풍미에 씹히는 식감까지 있어서 참 좋긴 한데요, 솔직히 잣이 꽤 비싼 재료잖아요. 사놔도 뭐 쓸데가 그리 많지 않고... 생략하셔도 크게 문제는 없습니다. 호두나 아몬드같은 다른 견과류를 사용해보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고요.
실제로 외국에는 견과류 알러지있는 사람이 많다 보니 견과류를 빼고도 페스토를 많이 만들고 먹고 그래요.
마늘 사용에는 요령이 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생마늘을 갈아서 먹게 되는 구조다 보니 너무 많이 쓰면 알싸한 맛이 좀 강하게 있기도 하더라고요. 마늘 크기에 따라서 양을 잘 조절해주세요.
예를 들어서 알이 너무 굵다 싶으면 1인분이라도 1/4톨 정도를 사용하시거나, 알이 너무 작다면 1인분이라도 한 톨을 사용하시는 방향으로요.
에이 뭐 아니면, 어떻게 해도 못 먹을 정도는 아닐 텐데 그냥 하시면서 배우면 돼요. 저도 그랬고요.
위에서 준비한 두 가지 치즈 모두 짠맛을 갖고 있기 때문에 소금은 신중하게 사용해주시면 되겠습니다.
참고로 위 사진에 보이는 만큼의 소금은 2인분이기는 해도 좀 많았던 것 같아요.
집에 있는 올리브 오일을 사용하시면 되겠습니다만, 사실 따지고 들어가면 이 문제도 그렇게 간단치는 않아요.
페코리노 치즈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올리브 오일의 맛과 향이 너무 강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보다 낮은 등급의 올리브 오일 사용을 권하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근데 솔직히 우리가 보통 쓰는 올리브 오일이 그렇~게까지 고급은 아니니까 이 부분은 크게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것이 저의 생각이네요.
편의상 1인분 단위로 계량값을 표기한 것뿐입니다. 저도 잣 3.25g씩 어떻게 계량을 하겠어요...?
페스토는 보관이 쉽고 금방금방 먹기 때문에, 한번 만들 때 2인분 이상 만들어 놓는 게 좋아요. 계산기를 활용합시다!
페스토를 만드는데 필요한 유일한 도구입니다.
페스토라는 말의 말의 어원이 '찧다', '빻다'이다 보니 '페스토는 절구에 찧어야 맛이제!'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경험 삼아 한번 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아요. 하지만 절구 이용에는 힘과 요령이 필요하다는 점도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사진에서 보시다시피 저도 옛날에 한번 해봤는데요. 지나치게 작은 절구를 사용한 탓에 아주 학을 뗐습니다. 잘 갈리지도 않고...
어쨌든 여러분, 현대 문명은 우리의 적이 아닙니다 ^0^
조리과정을 알아봅시다.
페스토는 재료 준비가 7~8할입니다. 나머지는 다 넣고 갈기만 하면 돼요. 진짜 5분도 안 걸립니다.
마늘, 소금, 잣을 넣고
바질이 잘 갈리도록 눌러 담아주세요. 믹서기 날 조심하시고요.
믹서기에 바질이 들어간 이후부터는 약간의 주의가 필요한데요, 믹서기 내부의 온도가 너무 높아지면 바질의 미묘한 향이 망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믹서기 사용 전 1시간 정도 칼날과 용기를 냉동실에 넣어 냉각시키라는 지침이 있을 정도예요.
저희는 뭐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나 싶습니다... 그냥 그런 점을 의식하시면서 적당히 갈아주시면 됩니다.
자, 올리브 오일을 붓고..
갈아줍니다. 미리 갈아놓은 재료들과 올리브 오일이 잘 섞일 정도만 해주시면 됩니다.
자, 준비한 치즈를 조심스레 넣고...
또 믹서기를 돌립니다.
믹서기 뚜껑을 열면 가장자리에 섞이지 않은 치즈 가루가 남아있을 수도 있는데요, 그런 것은 숟가락이나 주걱으로 대강 섞어주시면 되겠습니다. 치즈는 어차피 한번 갈아놓은 재료니까요.
페스토가 완성되었습니다. 믹서기를 이용하니까 너무 쉽네요. 조금 질감이 빡빡한 것 같기도 한데, 뭐 상황 봐서 올리브 오일을 좀 더 넣어줘도 좋겠고요. 취향껏 결정하셔요.
적당한 용기에 옮겨 담아줍니다. 깔끔하게 담아 보관하면 냉장실에서 1주일 정도는 가뿐하고, 냉동 보관할 수도 있다고 하니 넉넉하게 만들어서 즐기셔도 좋겠습니다!
페스토는 일종의 소스이기 때문에 그 자체만 먹기보다는 파스타나 빵과 곁들여 먹습니다.
그래서 페스토만 딱 만들고 글을 끝낼 수는 없었어요. 페스토를 이용해 파스타를 만드는 과정도 더해봤습니다.
파스타는 어떤 것을 이용하셔도 좋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스파게티, 링귀네, 펜네, 그리고 푸질리를 쓰는 경우가 많은 것 같네요.
저는 푸질리를 사용했습니다. 스크류바 마냥 베베꼬인 푸질리는 홈이 많기 때문에 소스를 많이 거느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라구, 페스토 같은 친구들과 많이 어울려 다니죠.
페스토를 곁들여 파스타를 만들 때 주의할 것은 단 한 가지, 온도입니다.
앞서 '바질의 향이 망가질 수 있으니 믹서기를 너무 많이 돌리지 말라'라고 말씀드렸죠? 그러니 페스토를 일반 소스처럼 후라이팬에 볶거나 하는 일이 있어선 안 되겠습니다.
그 외, 방법 자체는 정말 단순합니다, 잘 삶아진 파스타를 볼에 담고, 적당량의 페스토를 덜어 잘 섞어줍니다.
그리고 페스토 또는 면수를 조금씩 더해주면서 원하는 느낌을 찾아가시면 돼요.
페스토가 차가워도 금방 삶은 파스타나 면수랑 섞이면 먹기 좋은 온도로 올라오니, 냉파스타가 되진 않을까 하는 걱정은 안 하셔도 되겠습니다!
잘 섞인 페스토 파스타(ㅍㅅㅌㅍㅅㅌ...)는 그릇에 옮겨 담고 맛있게 드세요!
제가 어떤 요리는 정말 브런치 콘텐츠 작성만을 위해서 만들지만, 페스토는 그냥 편하게 자주 해 먹는 요리입니다. 금방 만들 수 있고 맛있고, 샌드위치로, 파스타로 아니면 그냥 빵과 함께, 다양하게 즐기기 편해서 저에게는 이제 집밥 메뉴처럼 되었네요. 바질만 넉넉하게 있으면 더 많이 만들 텐데...
페스토를 먹어보면, 처음에 말씀드린 여름의 이미지와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주아주 생생한 느낌입니다. 짜기도 하고 달기도 하고, 치즈와 잣, 마늘, 그리고 무엇보다 바질의 풍미가 입 안을 가득 채우거든요.
강렬하지만 싱그러운, 이런 여름이라면 기쁜 마음으로 견딜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네요~
마지막으로 바질 페스토와 관련해서 참고한 자료 몇 가지를 첨부할게요.
친절한 소냐 이모의 레시피입니다. 제가 만든 레시피와 계량이 약간 다르긴 하지만 제노바식 페스토의 공식 레시피로서, 교과서처럼 여길만한 영상입니다.
그리고 절구를 사용하는 모습을 보실 수 있으니 그 부분도 참고하시길.
90초 만에 페스토를 만드는 모습(어째서...?)을 보여주는 영상입니다. 재미도 있고, 페스토를 만드는 것이 그만큼 쉽고 빠르다는 것을 알려주네요.
언제나 열정이 넘치시는 젠나로 콘탈도 옹의 모습을 보실 수 있어서 좋아요. 참고로 속도를 사랑하는 젠나로 콘탈도 옹은 '2분 동안 라비올리 많이 만들기' 기네스 세계 기록 보유자(...)이십니다.
페스토와 관련된 내용을 다룬 기사입니다. 말하자면, 페스토에 대한 오해와 진실이랄까요?
치즈는 어떤 것을 쓰면 좋을지, 잣을 볶는 것과 볶지 않는 것 중 어느 것이 나은지, 절구에 만드는 게 맛있을지 믹서기에 만드는 게 맛있을지 등, 페스토에 얽힌 내용을 직접 실험해본 뒤 작성한 기사입니다.
무엇보다 기사 구성이 되게 재밌어요. 항상 느끼는 거지만 Serious Eats 사람들 요리뿐만 아니라 글 쓰기도 정말 잘 하는 것 같습니다.
페스토로 파스타를 만드는 과정에 대한 글입니다. 설명은 3번과 거의 유사하겠네요.
날이 정말 정말 덥습니다! 이런 날씨에는 입맛을 잃어버리기도 쉬운데요. 강렬한 별미, 페스토를 드신다면 여름을 이겨낼 원동력을 찾으실 수 있을 거예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