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갈이가 필요할 때

화초 키우기

by 해은

여러 가지 화초를 키우면서 가장 애착이 가는 것은 난 종류다. 여름 지나고 입추가 되면서 동양란에 꽃이 피었다. 우리 집에 온지 2년 만이었다. 식물을 키우기 시작하여 완전히 초보일 때 선물 받은 것인데 난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로 무심히 키웠다고 할까. 그런데도 꽃을 피운 것이 행운이 깃든 것처럼 신기하기만 했다. 연한 그린 색 꽃이 청초하고 우아한 느낌의 향이 났다. 아주 고급스러운 향수를 만난 기분이었다. 한동안 그 잔향이 기억 속에 오래 머물렀고, 그 이후로 향기 있는 꽃을 피우는 식물에 빠지게 되었다.


사람에게도 꽃향기처럼 각각이 지닌 매력이 있다. 강렬한 향기로 금세 여러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사람, 잔잔하고 은은한 향이 늘 한결같은 사람. 나는 후자가 더 좋다.


동양란은 화기가 짧은데 비해 서양란은 화기가 짧게는 두 달, 길게는 넉 달 이상 가는 것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향기없는 종류는 꽃을 오래 피우고, 향기있는 종류는 자신의 에너지를 소비하는 만큼 꽃 피우는 시기가 더 짧았다. 굵고 짧게 살 것인가, 가늘고 길게 살 것인가가 꽃의 삶에서도 적용이 되고 있는 것 같다.


사람에게 가장 향기로운 꽃을 피우는 최상의 때가 언제일까. 사람마다 각자 그 시기는 다를 것이다.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을까. 돌이켜보면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을 때가 아니었나 싶다. 아이들 키우면서 힘들기도 했지만 정신없이 분주한 가운데 즐겁고 행복했던 날들이었다. 식물의 작은 모종과 같았던 세 아이들은 부모라는 화분 안에서 온갖 보살핌을 받고 성장하였다. 식물은 분갈이를 하지 않으면 더 클수가 없다. 성장하기 위해서는 더 넓은 화분으로 분갈이를 해야 하듯 사회로 진출하여 직장 생활을 하고 결혼을 하며 각자의 세상에 터를 잡았다. 그들도 저마다의 꽃을 피우기를 응원한다.


요즘 난초의 잎 끝이 누렇게 변하는 것을 발견했다. 원인을 알기 위해서는 화분 속을 의심해 봐야 했다. 외부 조건을 아무리 맞춰 줘도 소용이 없다. 베란다에 신문지를 깔고 화분 속의 식물을 조심스레 꺼냈다. 원인은 통풍이 잘 되지 않아서 뿌리가 썩어 가고 있었다. 썩은 뿌리들을 소독한 가위로 모두 잘라주고 깨끗이 씻었다. 곰팡이가 핀 바크를 버리고 새로운 바크를 채워 토분에 옮겨 심었다.


분갈이를 하며 내 안의 화분 속은 무슨 문제가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글쓰기를 한 지 십년이 지났다. 나의 화초에도 늘 정성들여 살피고 때로 영양제도 주면서 가꾸어야 했다. 어느 결엔가 그저 방치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새로운 도전을 하지 않고 정체 되어 있었다. 인풋이 있어야 아웃풋이 생길 것이다. 분갈이를 할 때가 온 것이다.


정체되어 있던 나를 뒤집어엎었다. 방송대에 입학해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다. 시든 잎과 상한 뿌리는 잘라내고 새로운 화분에 담겨진 것이다. 좀 더 큰 화분에 옮겨지면 들썩거린 뿌리들이 제자리를 잡느라 한동안 몸살을 앓을 것 같다. 난은 심한 온도 차이가 나는 고난의 환경을 겪어야 꽃대를 밀어 올린다. 몇 년 후 무엇을 피워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서늘한 온도 차이를 한동안 견뎌내면 언젠가 다시 향기로운 꽃송이를 피울 수 있게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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