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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일 Apr 03. 2023

입 벌리고 보기 좋은 영화

영화 '플랜멘' 리뷰

20대 시절 명절 때 영화관 가는 것은 촌스러운 일이었지만 많은 사람은 그 짓을 통해 명절의 즐거움을 누렸다. 지금처럼 인터넷으로 예매할 수 없었기에 추위를 무릅쓰고 긴 줄의 마지막에 서 있으면 어김없이 암표 장수의 유혹이 있다. 범법 정신이 강한 것도 아니었지만 웃돈을 얹어주고 영화를 본다는 것이 억울해 악착같이 줄을 섰고 두 장의 표를 손에 든 청춘은 환호성을 질렀다. 그때는 그랬다.^^ 그러나 영화의 발달은 수천수만 번을 복사해도 화질의 변화가 없는 디지털 영화를 복합상영관에서 편하게 볼 수 있기에 줄 서던 모습은 “옛날엔 저랬었지”라는 제목이 어울리는 지나간 시대의 산물로 추억될 뿐이다. 그뿐인가?

복합영화관에서 상영이 끝나면 즉시 IPTV나 OTT, 다운로드를 통해 소파에 앉아 편하게 영화를 볼 수 있다. 이것의 장점은 ‘다시 보기’를 할 수 있는 것이다. 한번 보면 이해가 잘 안 되는 영화나 분석할 필요성을 느끼는 영화를 볼 때 다시 보기는 매우 유용하다. 그러기에 한때 열심히 모아두었던 영화 CD나 DVD도 이제는 공간만 차지하는 퇴물로 전락하고 말았다.



한지민, 정재영의 결합이라면 관객들의 흥미를 끌 만도 한데(2014년 작품임, 지금은 정재영 눈에 띄는 작품 활동이 없다) ‘플랜맨’은 70만 명도 관람하지 않았기에 흥행엔 실패했지만, 굳이 이 영화를 선택한 것은 OST 덕분이다. 요즘 관객이 몰려들고 있는 대부분의 영화는 OST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어바웃 타임’에 삽입된 ‘How Long Will I Love You’는 제목처럼 톰과 메리의 사랑이 평생일 것이란 암시를 주기에 영화관을 나설 때면 잔잔한 여운으로 남아있다. ‘헤어질 결심’에 OST로 사용된 정훈희의 안개는 스트리밍이 2,350% 증가할 정도로 대중의 인기를 얻고 있다.

그렇다면 플랜맨도 여기에 뒤지지 않는 음악이 있단 말인가?
있다.

‘개나 줘버려, 플랜맨, 유부남, 삼각김밥’ 등은 Hook Song을 듣는 것처럼 중독성이 있다. (이런 음악 듣는 것을 보면 아직 늙지 않았어…….ㅎㅎ) 그리고 이 노래를 부르는 한지민의 매력을 OST로 먼저 알았기에 웃으며 편안하게 볼 수 있었다. 마치 인디밴드의 노래처럼 가사는 신선하고 멜로디는 가벼운데 그 중심에 귀엽고 예쁜 한지민이 있다. 누차 강조하지만 멜로영화의 핵심은 스토리도, 배경도 중요하지만, 여주인공이 예쁜 그것이야말로 그 영화의 가치를 높여준다.^^



이렇게 플랜맨이 나름 OST도 좋고 예쁜 여배우가 주인공인데 왜 흥행에 실패했을까?

이유는 스토리가 너무 작위적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슬슬 긴장도가 떨어지며 “꺼 버릴까?”라는 생각이 든 이유는 공감을 얻기 힘들기 때문이다. 왜, 여배우의 젖가슴이 바로 화면에 드러나는 노골적인 장면보다, 보일 듯 말 듯할 때 더 섹시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플랜맨의 첫 장면은 감독의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한국 영화의 공식은 초반에 몇 개의 에피소드를 묶어 관객들을 웃기다가 후반부로 갈수록 눈물샘을 자극하고 마침내 관객으로 하여금 손수건을 꺼내게 하는 방식에 익숙하다. 플랜맨도 이 공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데 영 웃음이 나오질 않는다. 주인공만 애를 쓰기에 관객들은 “왜 저래?” 이런 식의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다. 가령 클럽에서 ‘플랜맨’을 부르고 있는 한지민은 우쿨렐레를 연주하며 리듬을 타는데 그녀의 노래를 듣고 있는 손님들은 허수아비처럼 별 반응이 없다. 작은 클럽이라 할지라도 이 부분은 좀 더 열광적으로 가는 것이 이 장면에 어울릴 것이란 생각을 한다. 또 정신과 상담 치료를 받는 환자들의 모습도 극히 작위적인 모습으로 보이기에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그렇지만 영화는 초반부를 벗어나면 조금씩 활력을 되찾는다.



렸을 때 IQ 200이 넘어 천재라고 불렸던 한정석(정재영)은 엄마와 떨어져 홀로 미국으로 공부하러 가는 것이 두려워 생방송으로 진행된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일부로 답을 틀리게 말한다. 이로 인해 정석과 엄마는 사기꾼으로 몰리며 조롱을 당하고 엄마는 충격 때문에 사고사로 인한 죽임을 당한다. 이 상처는 그에게 결벽증과 강박증을 가져왔고 모든 로맨스 영화의 공식처럼 이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랑이 시작된다. 유소정(한지민)은 발랄하고 엉뚱한 모습으로 서서히 정석의 가슴에 스며들고 관객은 두 사람의 사랑을 응원한다.

힐링이란 단어가 들어가지 않으면 거들떠보지도 않기 때문일까?

출판업계나 방송, 강연 등의 단골 메뉴는 힐링이다. 누구나 마음속에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기만 쉽게 표출하지 못하는 것은 두려움 때문이다. 자신의 아픔을 받아줄 사람이 없다는 안타까움 때문에 사람들은 ‘너와 나’의 관계가 아닌 그것이나 그 사람으로부터 상처가 치유될 것이란 기대감이 있다. 그러기에 책을 읽고, 강연을 듣고 상담을 한다. 그러나 아픔은 철저히 너와 나의 만남을 통해서만 치유가 된다. 함께 집단정신치료를 받던 환자들도 철저히 타인이었기에 처음의 만남은 극히 이기적이고 갈등이 있지만, 그들이 자신의 마음을 열고 상대방을 받아줄 때 아픔이 치유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정석이 상처를 드러낼 때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은 그의 아픔이 자신에게 전이되기 때문이다. 주치의 김지영이 정석에게 다가가

“진우야 네 잘못이 아니야.”

라며 다독일 때 마음이 숙연한 것은 나 자신도 저 말에 인색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내 탓이오!'라고 말하던 김수환 추기경의 목소리가 절실해지는 것도 우리 시대의 모습에 대해 안타까움이 있기 때문이다. 자식의 모든 잘못을 끌어안으며 부모는 언제나 “내 탓”이라며 자신을 책망하는 것처럼 우리가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이 말을 아낌없이 사용할 수 있다면 사회가 참 따뜻해질 것이란 교훈을 얻는다.




‘플랜맨’ 몇 가지 약점을 가지고 있는 영화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눈물샘을 자극한다면 감동이다. 여유로운 시간이 있다면 가벼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다. 그리고 한지민의 노래를 따라 부르면 주말의 오후가 즐거울 수 있는 영화다.

배경음악은 플랜맨 OST 중에서 '개나 줘버려' 입니다 


https://youtu.be/A_4cmu7ktk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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