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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일 Apr 21. 2023

평생의 반려자가 있다

아내의 환갑


며칠 전 아내가 환갑을 맞이했다. 점심이나 먹는 줄 알고 대충 옷을 입었더니
“아빠, 오늘 엄마 환갑이잖아요. 사진도 찍어야 하니까 차려입으세요” 라기에 아차 했다.
너무 관심이 없었나?

얼른 머리에 젤 바르고 요즘 즐겨 입는 흰색 면티를 받쳐 입고 오버핏 오렌지색 셔츠를 입었다. 오전 9시에 딸 집에서 모이기로 했기에 아들 차를 타고 수원으로 이동했다. 사위와 딸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그냥 점심이나 먹는 줄 알았더니 딸과 사위는 엄마를 위해 정성껏 준비했다. 창문에는 엄마의 환갑을 축하한다는 플래카드를 걸었고, 케이크와 풍선, 꽃을 준비했다.
보면서 흐뭇한 마음이 드는 것은 엄마 환갑을 준비하기 위해 정성을 다한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케이크에 걸린 문구가 예쁘고 의미가 있다.
“꽃보다 예쁜 엄마의 세 번째 스무 살을 축하합니다”
60살이란 말보다 세 번째 스무 살이란 표현이 더 정감 있지 않은가?

아내가 22살 시절. 친구 결혼식에서 처음 만났다. 신부가 친한 언니였기에 참석한 것이다. 이때만 하더라도 함값 받아서 신랑 친구들이 뒤풀이하던 시절이기에 유심히 신부 쪽 친구들을 봤는데 눈에 들어오는 여인이 없다(이 교만함의 극치는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그나마 아내가 제일 마음에 들기에 수작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전화가 귀했고 전화를 한다고 할지라도 부모님을 통해 전화를 받을 수 있었기에 전화로 하는 사랑놀이는 힘든 시절이었다.



연애편지 좀 쓰던 시절이었기에 아내로부터 주소를 받을 수 있었고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난 그 당시 한 달에 5만 원 받는 교회 전도사였는데 어느 날 아내가 우리 교회에 나타난 것이다.
“이게 웬일”

신앙생활도 안 해 봤다는 데 출석하자마자 교회 꽃꽂이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교회학교 반사를 한다. 목사님께서 좋아하는 일만 하니 담임목사님이 아내에게 쏙 빠졌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운 어느 날 아내가 광화문 무과수 제과에서 보자고 한다.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리고 젊은 남녀에게 주어진 사랑의 시간에 제과점에서 만났다.

“전도사님은 너무 거룩하셔서 제가 그림자도 밟을 수 없는 분이세요.
전도사님 때문에 신앙생활도 잘할 수 있고 여러 가지로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크리스마스인데 제가 작은 선물 하나 준비했으니까 받아주세요”

가방 속에서 롯데 백화점 포장지에 감싸진 선물을 꺼내는데 장갑인 것 같았다. 풀어보니까 짐작한 대로 밤색 장갑이었다. 웃으면서 말했다.
“장갑이 영어로 Gloves잖아요. 지금 저한테 장갑을 선물한다는 것은 저를 사랑한다는 뜻인데. Gloves는 뜻이 G는 give의 약자고, 그다음 뭐가 남아요. Love가 남잖아요. S는 세일의 첫 자고”

“세일 씨를 사랑해요”

"이런 의미죠?"

아내가 결단코 아니라며 전도사님을 존경하기에 드리는 마음의 선물이란다. 사람 마음이 뭔가 받으면 약해지는 것이 만고의 진리다.
데이트가 시작되었다.
5만 원짜리 전도사가 돈이 있을 리가 없기에 항상 아내가 데이트 비용을 부담했다. 영화 보고 경양식 집에서 밥 먹고(아내가 부자인 줄 알았다 ㅎㅎ)



이렇게 시작된 데이트는 아내가 24살 때, 내가 31살에 결혼으로 이어졌다.
나도 모르는 비화가 있었는데 아내가
“이세일 전도사님과 결혼하겠습니다” 했더니
목사님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시면서
“이 전도사는 다 좋은데 현실감각이 없는 친구야. 결혼하면 고생할 텐데”
목사님의 예언은 맞았고 아내는 가난했지만, 일정기간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었다.

20년의 세월이 흘러서
착한 일을 해 보겠다고 교인 보증을 선 것이 불행의 시작이었다. 하나님을 원망하며 15년 정도 방황할 때 아내는 직장을 구했고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아이들 뒷바라지해서 남들에게 내놔도 뒤지지 않을 사회인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35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다.

근데 억울한 것은 세일이를 하나님과 동급으로 여기던 아내가 덤비는 것이다. 큰소리도 치고, 명령하기도 하고 짜증을 내기도 한다.
“아니 나에게 이럴 수가”
란 배신감이 들지만 나에게 책임이 있다.  경건함이 사라지고 속물이 되었으니까 ㅠ



딸아이가 수원 갈빗집을 예약해 놓았다.
바람 불고 비가 내리지만 갈빗집은 만원이다. 내 평생 가장 비싼 갈비를 먹었다. 맛있고 배부르다. 아내가 미리 점심 사겠다고 했기에 결제를 한다.

“그럼 너는 환갑에 뭘 했어?”

“나, 다이아몬드 반지 해주려고 퇴직금 받아서 아내에게 150만 원 줬어. 서프라이즈로 해야 하는데 입이 방정이라 미리 줬는데 생활비로 들어가고 남은 돈도 없데. 친구에게 물어봤더니 최소한 300만원은 있어야 한대” ㅠㅠ

아이들이 아빠 생일이라고 용돈을 줬다.

돌아오는 길에 현대 아웃렛에 들려 받은 돈으로 남방과 티셔츠를 샀다. 아내는 핸드백을 샀는데 38만 원쯤 된다. 사주고 싶었지만
“10만 원 보태줄게” 했더니 좋아한다. ㅎ



저녁 시간 둘이 앉아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지금이 제일 행복해”

아내가 말한다.

돌이켜 보면 아내가 힘든 시절을 이겨냈기에 지금의 행복이 있다. 나를 아는 친구들이 말한다.
“평생 네가 잘한 것 하나 있는데 현옥이랑 결혼한 거야”
긍정!!

이 시 생각난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배경음악은

친구들이 축가로 불러주었던
사랑의 종소리입니다.

https://youtu.be/NmvjN0BXGV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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