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세일 Dec 04. 2023

아직도 낭만적인 사랑을 꿈꾸니?

영화 '비포 선라이즈' 리뷰

'비를 좋아하는 사람은 과거가 

있단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의 과거가…….


조병화 시인의 ‘비를 좋아하는 사람은’ 중에서


비가 오기 때문일까?

커피 몇 잔을 마시며 쓸데없는 상념과 씨름을 한다. 이런 날은 책보다는 영화 한 편이 더 어울린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의 과거가 있다 할지라도’ 감히 공개적인 고백은 할 수 없지만 영화는 가끔 “낭만적인 사랑을 꿈꾸는 것이 당신의 인생을 아름답게 합니다.”란 유혹을 한다. '비포 선 라이즈'는 비 오는 날에 어울리는 영화란 생각이 든다. 이유는 한순간에 찾아온 사랑의 감정이 둘만의 눈빛과 대화, 그리고 키스가 촉촉이 내리는 가랑비처럼 가슴에 스며들기 때문이다. 


낭만적인 영화는 반드시 애절한 스토리와, 인상적인 배경, 대리만족을 얻을 수 있는 아름다운 주연배우와 이 모든 것을 애잔하게 품을 수 있는 배경음악이 있어야 영화관을 나설 때 긴 여운이 드리운다.


 <비포 선 라이즈>는 이 공식에 잘 맞는 영화다.

서로 첫눈에 반한 제시(에단 호크)와 셀린느(줄리 델피)에게 주어진 시간은 불과 하룻밤이다. 사랑이 시작되자마자 이별이라는 스토리는 관객들에게 “저들의 사랑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갖게 한다. 실제적으로 이 영화는 사랑의 결말을 알 수 없도록 감독은 의도적인 연출을 했다.


영화의 배경이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이기에 눈으로 찍어 뇌 속에 저장할 수 있는 아름다운 장면이 보인다. 

열차를 따라 지나가는 창밖의 전원과 비엔나 시내의 밤 풍경, 골목길은 이들의 사랑을 꽃피우는 중요한 장소가 된다. 미국 청년 제시(에단 호크)는 이 영화보다 ‘죽은 시인의 사회’의 토드 앤더슨역이 더 친근하게 기억될 것 같고 (아래 사진 참조). 


“그 순수한 아이가 이렇게 컸다니!” 

라며 놀랄 것이다. 셀린느(줄리 델피)는 속 쌍꺼풀이 너무 진하기에 약간 졸린듯한 얼굴을 가지고 있지만 오히려 그 모습이 소르본느 대학생의 지적인 이미지에 잘 어울린다.


그리고 영화의 첫 장면과 함께 들리는 Purcell의 오페라 ‘dido and aeneas overture(디도와 아이네아스 서곡)’의 경쾌한 바이올린 소리와 달리는 기차 바퀴가 멋지게 어울리는 묘한 긴장감이 있다. 마치 두 사람의 사랑도 이처럼 경쾌하고 생동감 있게 진행될 것이란 것이란 암시를 준다. 음악을 같은 취향으로 가지고 있기에 급속히 친해진  제시와 셀린느는 비엔나의 한 레코드점에 들려 LP 음반을 고르고 음악을 감상하기 위해 둘만의 공간인 청음실로 들어간다. LP판을 걸자 Kath Bloom의 ‘come here’가 흘러나온다. 이 장면을 미리 언급하는 것은 이 영화에서 가장 멋지고 가슴 설레는 장면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어색한 둘 만의 공간이기에 눈길을 마주치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감독은 어긋나는 두 사람의 눈빛을 통해 그들의 마음속에 사랑이 시작되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누구나 연애할 때 첫 키스의 기억이 가장 강렬하게 남아있을 것 같은데 제시와 셀린느는 둘만이 있는 공간에서 음악을 들으며 가슴이 뛰고 상대방이 먼저 다가오기를 바라고 있다. 제시가 쳐다보면 셀리느가 모른 척하고 셀린느가 쳐다보면 제시가 모른 척한다. 두 사람의 입술은 타오르고 호흡은 가파르지만 첫 키스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컨추리 풍의 배경음악인 ‘come here’는 이들의 마음을 잘 표현해 준다.


‘No I'm not impossible to touch

아니, 날 느껴도 돼요

I have never wanted you so much.

당신을 이토록 원했던 적이 없는걸요

come here

come here‘



내 젊음에 첫 키스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장소는 ‘에버랜드의 허니문카’가 아니었을까?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기에 에버랜드의 정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고, 둘만이 있는 공간이기에 아마도 많은 커플들은 허니문카 안에서 사랑을 속삭였을 것 같다. 그런데 이 허니문카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퇴출당했다고 하니 소중하게 남아있던 사랑의 추억이 또 하나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제시와 셀린느의 첫 키스도 다뉴브 강이 보이는 허니문카 안에서 이루어진다. 매사에 적극적인 그녀가 먼저 다가가 제시의 목을 감으며 “나에게 키스하고 싶은 거야?”라고 물으며 둘의 첫 키스가 이루어진다.


 파리로 가는 유레일 열차에 탑승한 셀린느는 책을 읽고 있었지만 옆자리에 앉은 독일인 부부의 싸움 때문에 자리를 옮겨 앉는다. 건너편 옆자리에서 책을 건성으로 읽고 있는 남자가 있었는데 제시였다. 두 사람은 몇 번의 눈빛을 교환하고 무슨 책을 읽는지 물어본다. 서로에게 호감을 느낀 둘은 기차의 식당 칸에서 식사를 하며 서로를 알아간다. 


이렇게 영화는 한 마디로 말하면 사랑을 느낀 남녀의 수다다. 

너스레가 깊이가 있기에 집중하지 않으면 영화는 지루하고 재미없다. 낭만적인 기질이 부족한 관객이라면 이 장면부터 졸음이 쏟아지고 만다. 그러나 지나간 사랑의 추억을 그리거나 사랑을 꿈꾼다면 사랑이 얼마나 서로에게 행복을 주는지 알 수 있다. 그러기에 영화를 보면서 관객들은 


“나에게 저런 사랑이 찾아왔으면…….” 

하는 바람을 가질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비엔나에서 헤어져야만 한다. 제시는 다음날 아침 호주항공을 타고 미국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헤어진다면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제시는 셀린느에게 


“비엔나에 함께 내려 걷자!”


고 제안한다. 만약 자신이 사이코 같으면 다음 기차를 타고 가라는 말과 함께…….

그 말을 들은 셀린느는 제시와 함께 비엔나에 내리고 두 사람은 시내구경을 나선다. 


 사랑에 빠진 연인들의 특징은 무엇일까?


말이 많은 것이다. 제시와 셀린느는 처음 만났기에 어색하지만 많은 말을 통해 자신을 공개하고 상대방에 대해 알아 가는데 우리도 잘 알고 있는 진실게임을 한다. 타인에게 첫 번째로 느낀 성적인 감정에 대해서, 언제 사랑에 빠졌는지, 무엇이 자신을 화나게 했는지에 대해서, 죽음과 환생의 문제까지 묻고 답하면서 두 사람은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나아가 이들의 대화는 전화놀이 게임을 통해 더 깊은 진실을 고백한다. 셀린느는 전화놀이를 통해 제시에게 자신을 쳐다보는 눈길과 키스할 때는 사춘기 소년처럼 순수하고 귀여운 모습 때문에 자신이 홀딱 반했다는 고백을 한다. 제시도 유럽의 마지막 밤에 누굴 만났는데 ‘보티첼리의 천사’인데 똑똑하고 열정적이고 아름답다고 말한다.


대화는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때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이 있다. 

이 영화의 매력은 진솔하게 자신의 속마음을 보여주는 제시와 셀린느의 순수함이다. 

하룻밤을 함께 보낸 두 사람의 사랑이 어디까지 진행이 됐는지는 모르지만 이들은 아침을 맞이하고 

“지금 너랑 있는 것이 행복하고 중요하다”라고 한다. 

사랑은 너무 쉽게 다가왔고 두 사람의 마음은 사랑의 절정을 맞았지만 아침은 두 사람에게 이별할 시간이다.


“6개월 후에 비엔나 역 9번 승강장 앞에서 저녁 6시에 만나자”

는 약속을 하며 두 사람은 작별의 키스를 한다.


과연 두 사람은 그 약속대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 대답은 속편인 ‘Before Sunset’에서 찾을 수 있다.


아직도 버스나 기차를 탔을 때 “옆자리에 누가 앉을까?”라는 약간의 설렘이 있는 것은 가슴속에 제시와 셀린느와 같은 사랑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 아닐까?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 할지라도 마음속에 그리는 낭만적인 사랑이 하나 있다고 정죄받을 일은 아닐 것이다. 사랑 앞에서 순수해지고 그 때문에 삶의 활력을 갖는다면 멋진 사랑이다. 영화 ‘쉘 위 댄스’의 스기야마가 만들어낸 중년의 사랑이 마음에 다가오는 것도 한 여인으로 인해 삶의 활력소를 찾고 가정의 소중함을 확인하기 때문이다.


제시와 셀린느의 대화 속에서 노년의 사랑에 대한 소중한 교훈을 얻는다.

“어제 네가 한 말. 오래된 부부는 서로 뭘 할지 뻔히 알기에, 권태를 느끼고 미워한댔지?.

내 생각은 반대야. 서로를 아는 것이 진정한 사랑일 거야. 머리를 어떻게 빗는지, 어떤 옷을 입을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말할 건지. 그게 진정한 사랑이야. “ 


과연 진정한 사랑을 하고 있을까? 

자신에게 자문해 보는 것도 이 영화가 건네는 매력 아닐까?

배경음악은


Kath Bloom의 ‘come here’입니다. 

https://youtu.be/Y73f8IliSa8?si=gVTr-1aXPkW9Bky6


매거진의 이전글 내 마음이 심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