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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일 Feb 07. 2024

원더풀 이민정

영화 '원더풀 라디오' 리뷰

“그때 DJ 했더라면 잘할 수 있었을 텐데, 아니 성우에 더 어울릴 것 같은 목소리야?”

친구들이 세일에게 격려해 준 말이다. 지나간 시절을 돌이켜 보면 아쉬움으로 남는 시간이 있는데 이때는 가정법 화법을 즐긴다. 관심은 있었지만 시도해 보지 않았기에 후회로 남는 것은 새해를 맞으면 버킷리스트로 정리가 된다. 2024년은 켈리그라피, 색연필화, 수채화를 그리고 싶기에 우선 책과 미술도구를 구입해 놓았다. 택배가 올 때마다 언박싱의 즐거움을 누리는데  삶의 주인으로 살고 싶은 의욕 때문이다. 

50대 초반 라일락 향기가 퍼지는 대학 캠퍼스를 방문한 일이 있었는데 잔디밭에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는 젊음이 부러웠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지나는 저들의 모습은 그 자체가 발광체다. 간간이 들리는 웃음소리는 자신감에서 우러나온다. 

“내 인생의 주인은 나야, 마음먹은 대로 내 삶을 살 수 있어.” 

이 당찬 생각은 젊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이민정 배우를 보면서 젊음을 생각했다.
‘원더풀 라디오’의 여주인공 이민정을 보며 “예쁘다.” 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일에 대해서는 자부심이 있고, 옳다고 생각하면 밀어붙이고, 동료들과 함께 웃을 줄 알지만 자신의 내면에 고여 있는 슬픔을 가지고 있는 진아(이민정)의 매력이 다가온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성깔은 부러운 웃음이고, 그녀가 흘리는 눈물에 가슴이 아린 것을 보면 이 영화의 힘이 진아에게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원더풀 라디오’는 한국영화의 공식으로 굳어진 초반은 웃기고 중반은 울리고 결말은 해피엔딩 방식을 사용하고 있기에 상대방에게 패를 읽힌 카드처럼 긴장감이 떨어진다.



왜 그런 것 있잖은가?
진아의 삶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한 때 잘 나가던 아이돌 그룹 퍼플 시절의 영광이다. 그녀는 틈만 나면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이 퍼플의 리더였다는 것을 은근히 자랑하며 과시한다. 그러나 퍼플이라는 아이돌 그룹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게스트로 나온 걸 그룹 코비걸스에게 진아는 은근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지만 후배 아이돌은 “언니 가수였어요?”라며 진아의 심사를 뒤튼다. 자신의 앨범이 발매만 되면 퍼플시절의 인기를 회복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라며 자신만만하지만 진아에게 모든 것은 최악의 상황이다. 그녀가 진행하는 원더풀 라디오는 청취율이 2%를 넘지 못하고 개편이 되면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 재정상태도 바닥을 기고 있기에 매니저의 월급은 고사하고 자동차를 수리할 돈도 넘는 상황이다. 그래도 그녀는 씩씩하다. 퍼플 시절의 유일한 히트곡인 ‘You are my angel’을 틀며 스스로 위안을 삼을 정도다.

이렇게 최악의 상황 속에 있을 때 구원군으로  까도남(까고 싶은 도시 남자) 이재혁 PD(이정진)가 새로 온다. 한국영화의 도식이 되어버린 진아와 재혁의 만남은 서로 못 잡아먹을 것처럼 으르렁 거린다. 관객들은 안다. 저렇게 으르렁 거리면서 서로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고 어느덧 자신의 가슴속에 들어와 있는 상대를 보며 놀란다는 것을.....  사랑은 항상 그렇게 시작된다. 이 방정식에 익숙한 관객들은 안 봐도 비디오이기에 영화의 승패는 여기에서 갈린다.



진아와 재혁의 사랑이 촉촉한 봄비처럼 마음에 내리며 감동으로 다가오지만 식상한 사랑이라면 영화는 금방 종영되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유의 영화는 수없이 관객의 눈을 스쳐갔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영화는 우리의 눈을 스쳐 지나간 영화가 되고 말았다. 이유는 진아의 꿈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지도 못하고, 두 사랑의 사랑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아름답게 묘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화가 감동이 있기 위해서는 관객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하는데 ‘원더풀 라이프’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처럼 주어진 길을 달려간다. 갈등이 없는 영화의 한계가 여기에 있다. 진아는 자신이 소원하는 음반을 내고 가수로서 성공적인 출발을 할 것이고, 재혁은 까도남이 아니라 '꼬픈남'(꼬시고 싶은 남자)이 되어 그녀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가 된다는 것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고 결론은 틀리지 않는다. 불행히도 ‘원더풀 라이프’는 이민정이라는 예쁜 배우의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그녀가 가지고 있는 내면의 아픔을 끄집어내는 일에 실패했기에 평범한 영화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나이 든 남자는 눈물에 약하다. 
이 영화를 기억하고 싶은 것은 승화된 슬픔이 주는 감동 때문이다. 재혁은 ‘원더풀 라디오’의 새 PD가 되자마자 청취율을 올릴 새로운 코너를 요구하고 진아는 실종된 아버지를 생각하며 슬픈 노래를 부르는 엄마의 모습에서 힌트를 얻어 ‘그대에게 부르는 노래’라는 코너를 신설한다. 초대된 시청자는 눈물 나는 사연을 직접 소개하고 그들이 부른 노래는 청취자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어떤 사람이든지 슬픈 사연 하나쯤은 있다. 극히 사생활의 범주에 속하지만 비밀이 벗겨질 때 사람들은 눈물지으며 감동하기 마련이다. 세상을 먼저 떠난 아내를 그리워하는 남자의 애절한 사랑, 부족한 남자지만 그의 진심을 알게 될 때 여자의 마음이 돌아서고, 장애를 가지고 있고, 직업도 변변찮고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지만 엄마와 자신을 정말 사랑하는 새아빠를 위해 노래하는 딸을 보며 관객들은 대부분 눈물을 흘리지 않을까?

자신도 이 장면에서 소리 없이 검지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았다. 생선회 칼로 폭폭 찌르고, 사지를 토막 내는 끔찍한 영화보다 인간의 선함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하는 영화가 좋은 이유는 인간의 삶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누군가 나와 함께 걸어갈 사람이 있다는 것, 내가 기대어 울 수 있는 가슴이 있다는 것 하나만 메시지로 전달된다 할지라도 그 영화는 괜찮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 가운데 하나가 따뜻한 가슴이라는 것을 기억한다면 영화는 자신의 소임을 다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예쁜 여자의 눈물을 닦아주고 싶은 것은 이민정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다. ^^
또 하나 이 영화의 엔딩에서 그녀가 부르는 노래 가슴으로 듣는다. 

배경음악은 
이민정의 '참 쓰다'입니다. 

https://youtu.be/mQBvXzkqy8c?si=ZPE4QSlrQfKzmJ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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