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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일 Dec 15. 2023

이제 사랑은 현실이야

영화 '비포 미드나잇' 리뷰

 누구나 낭만적인 사랑을 꿈꾼다.

아니, 비극이라도 좋다. 사랑 때문에 목숨을 버린 러브 스토리에 감동하며 “나에게도 저런 사랑이 찾아왔으면…” 하며 완전한 사랑을 목말라한다. 이 때문일까?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사랑은 이루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아름답게 묘사한다. 소설로는 로미오와 줄리엣,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폭풍의 언덕 등이 아직도 가슴속에 남아있는 사랑이다. 영화로는 러브 액츄얼리, 레터스 투 줄리엣, 러브레터 등이 이런 부류다. 그러기에 달달한 로맨스 영화를 보고 나면 


“저들이 결혼하고 산다면 연애시절처럼 예쁘고 낭만적인 사랑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갖는다.


 ‘비포미드나잇’은 이 질문에 답을 해주는 영화다. 왜냐하면 파리에서 비엔나로 향하는 열차 안에서 만난 제시와 셀린느의 사랑이 18년째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셀린느는 제시의 붉은 수염을 보며 "떠오르는 태양이 당신의 수염을 타오르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어! “라고 고백했지만 18년의 세월은 그의 수염을 하얗게 만들어 놓았다. 셀린느의 금발은 지금도 변함없지만 상반신을 노출한 그녀의 가슴은 살짝 내려앉았고 원피스 속으로 드러나는 아랫배는 그녀 또한 이 세월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1편인 <비포 선라이즈>는 퇴폐적으로만 느껴지는 원나잇의 사랑을 가장 로맨틱하게 만들어 놓은 영화였다. 강렬한 짧은 사랑의 여운은 그들이 6개월 뒤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지만 9년이 지난 뒤에 그들은 제시의 책 사인회에서 다시 만난다.

 2편 ‘비포 선셋’은 이렇게 시작된다. 파리에서의 짧은 만남 때 셀린느의 아픈 사랑 고백은 아직도 찡한 여운이 있다. "나랑 사귀었던 남자들은 다 결혼했어. 나랑 헤어지고 나면 다들 꼭 결혼하더라고. 그리곤 나더러 고맙대. 왜 나한텐 청혼 안 하는데? 죽여 버리고 싶어 다들…" 

아직도 혼자 살고 있는 셀린에 비해 제시는 유부남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은 다시 헤어진다.



 3편 ‘비포 미드나잇’은 다시 9년이 지난 뒤로부터 시작이 된다.

전처에게 아들을 보내는 제시는 영락없는 아빠다. 그는 수도 없이 아들에게 잔소리를 한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화상통화를 하자, 과학 도면은 챙겼니?, 피아노 연습은 계속해라? “ 


그러나 아들 행크는 아버지의 말에 별 관심이 없이 시큰둥하다. 아들의 피아노 연주회 때 꼭 가겠다고 약속하지만 아들은 오지 말라고 한다. 서운한 아빠에게 아들은 속 깊은 이야기를 한다. 


”엄마가 아빠 싫어하잖아? 아빠 보면 화 낼 텐데 그게 싫어. “ 

아들은 어리지만 자신이 어떻게 처세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 아들을 보내고 쓸쓸히 돌아서는 제시의 모습은 우리의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상이다. 공항을 빠져나온 제시 앞에 전화를 받고 있는 셀린느의 모습이 보인다. 그런데 자신의 차 문을 열기만 할 뿐 제시에게는 눈곱만큼의 관심도 없는 것 같다. 차 뒷좌석에는 셀린느의 금발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예쁜 두 여자아이들이 자고 있다.  


”셀린느도 결혼했나? “ 

이런 의문을 가질 때 화면은 그리스의 바다를 배경으로 한 작은 시골길을 달리는 제시의 차를 보여준다. 막연한 동경이 있는 이 나라는 영화의 배경만으로도 눈호강을 한다. 셀린느는 아직도 통화 중인데 표정이 좋지 않다. 6개월간 공들여 추진했던 풍력 터빈 공사가 장벽에 막히자 그녀는 정부의 일을 할 계획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제시는 책임자인 레미란 사람이 마음에 안 들기에 반대한다. 점점 더 언성이 높아지는 두 사람 결국 그들도 일반적인 결론에 도달한다.


”일이 쉬운 게 없지? “

”응. 사는 게 뭔지 “


영화는 도입부에서 전처와의 아들과 셀린느의 일 때문에 갈등이 커질 것을 암시한다. 이제 영화는 달콤한 사랑이야기가 아니라 미치도록 사랑했기에 결혼(아직 법적인 결혼식은 하지 않음)한 제시와 셀린의 현실이야기다. 그러기에 공감대가 있다. 왜냐하면 두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현실이기에 그들의 대화를 통해 삶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셀린느가 독해졌다. 제시는 소설가답게 아직도 낭만을 꿈꾸며 셀린느를 향한 사랑을 고백하지만 그녀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또 많이 지쳐있다. 그리스로 초대한다는 포스터의 홍보 문구와는 다르게 영화는 풍광보다는 제시와 셀린느의 내면에 중점을 두고 있다. 스토리보다는 현실적으로 그들이 처한 문제를 솔직히 보여주고 해결책을 제시하기에 지루할 수 있다. 셀린느는 기관총으로 무장한 여전사처럼 수없는 불만을 쏟아내고 제시는 아웃복싱을 하며 기회를 노리는 권투선수처럼 수비하기에 바쁘다. 영화의 대부분은 이런 갈등으로 채워지기에 “저러다가 헤어지는 거 아냐?”란 우려를 갖게 한다.


연애시절에는 완벽해 보였던 사람이기에 “저 사람이라면 평생을 같이 할 수 있어”란 믿음 때문에 결혼하지만 그런 환상이 깨지고 현실의 문제들이 두 사람의 관계를 깨트리기에 수많은 사랑이 돌아서며 증오한다. 제시와 셀린느의 사랑도 이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영화의 후반부로 접어들면 셀린느의 아픔이 커튼을 열고 바라본 세상처럼 선명하게 보인다. 바닷가에서 석양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표정이 진지하다. 셀린느는 3번씩이나 석양을 바라보며 “아직 있다.”라고 희망적으로 말한다. 이윽고 석양이 지자 “졌다”라고 말하는 그녀의 표정이 착잡하다. 자신의 인생도 저 떨어진 석양과 같다고 말하는 아픈 마음이 전해진다. 중년기의 삶을 시작하는 그녀에게 삶은 모든 것이 등을 돌리고 있다.



지인의 배려로 꿈과 같은 달콤한 사랑을 기대하며 호텔에 투숙한 두 사람. 

모처럼 현실의 문제를 벗어나 비엔나에서의 처음 만남과 사랑을 기대했지만 의부증으로 까지 발전한 셀린느의 히스테리 때문에 더 큰 갈등을 가져온다. 두 번씩이나 극단적인 폭언을 하며 호텔방을 나선 셀린느는 다시 돌아와 대화를 시도한다. 부부 싸움의 교과서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싸울 수 도 있고 증오할 수도 있고 후회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대화로 문제를 풀어가는 것은 성숙된 부부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영화의 마지막에 셀린느를 향한 제시의 사랑고백은 숙연하지만 멋지다.


“문제도 많고 평생을 바동대면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 속을 썩여 놓고 미안해하는 한심이지만 네가 유일한 희망이야. 샐린느 네게 하고픈 충고는 이거야 넌 지금 인생의 황금기에 들어섰어.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중년이란 12살 때보다 조금 더 어려울 뿐이더라고.” 

제시는 셀린느의 아픔을 알기에 이해하며 격려한다. 셀린느는 병 주고 약 주는 식으로 수없이 제시를 자극하고 달래지만 두 사람이 갈등을 이기는 이유는 아직도 남부 펠로폰네소스에서의 오늘밤을 가장 아름다운 추억으로 삼고 싶은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중년의 부부는 성적인 만족이 부부 사이를 이어주는 가장 중요한 교량인가 보다…


   

‘비포미드나잇’은 제목 속에 두 가지 의미를 담은 것 같다. 첫째는 40대의 인생은 시간으로 말하면 인생에서 가장 깊은 의미를 발견하는 때이기에 갈등과 고민도 있다는 것. 두 번째 부부 사이는 성적으로 가장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이라는 것. 로맨스를 벗어난 사랑은 현실이라는 벽 앞에서 갈등하지만 그것을 이기는 것은 서로에 대한 변함없는 신뢰고 육체적인 사랑을 통해 확인된다는 생각을 한다. 이 영화는 눈으로 보는 것보다는 대사 하나하나의 의미를 생각하며 몇 번 봐야 더 감동적일 것 같다. 9년 뒤에 50대의 부부가 된 제시와 셀린느의 사랑을 기대하는 것은 그들의 사랑 앞에 아직도 많은 삶의 문제들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슬기롭게 헤쳐 나가는 두 사람의 사랑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배경음악은 


비포 미드나잇 ost 중 

'The Best Summer of My Life'입니다. 


 https://youtu.be/CYDM-8jAG6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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