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세일 Mar 21. 2023

커피 한잔을 들고 당신 생각을 합니다.

핸드 드립 커피 한 잔의 행복

지난주 아들 회사가 단체로 베트남 나트랑으로 관광여행을 떠났다가 이틀 전에 돌아왔다. 아빠가 커피 좋아하는 것을 알기에 선물이라며 루왁 커피를 건네준다. 동남아시아 관광에서 돌아오는 대부분의 사람이 이 커피를 사 오는데 대부분 가짜인 것은 알려진 정설이다.
아들도 알고 있는지

아빠 이건 진짜야”라며 커피 봉지를 보여주는데 루왁 100%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얼마야?”
“200g에 4만 원이야, 1kg이면 20만 원이기에 싼 가격은 아니네.”
아내도 혹했는지 빨리 한 잔 내려보라고 한다.

루왁 20g을 넣고 핸드 드립으로 2잔을 내렸다. 크레마나 향은 일반 커피와 비슷하기에 별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맛은 조금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부드럽고 목 넘김이 좋기에 마시는데 부담감이 없다.
아내는 내가 내려주는 커피에 대해 “사약을 주냐?”라고 불만인데 루왁 커피에 대해서는 대만족이다.
“커피 맛있다”



내 인생이 바닥을 헤매고 있을 때 선배 목사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세일아, 우리 카페에 와서 독서 지도와 영화 감상법에 대해 알려주렴”
선배가 담임하는 교회 1층이 카페인데 수익이 아니라 전도 목적으로 쓰려고 했는데 이익도 없고 공간 활용도 잘 되고 있지 않았기에
“여기서 독서 모임 하면 좋겠다”라고 선배에게 말했다.
“그럼 네가 바리스타가 되어 손님들에게 커피도 팔고 독서 모임을 지도해 주렴”



이것이 계기가 되어 커피 학원에서 3개월 정도 바리스타와 로스팅 과정을 밟았다. 제일 쉬운 것은 아메리카노 추출이다. 기계가 모든 것을 해주기에 그리 어렵지 않은데 핸드 드립은 완전 손기술이기에 맛의 편차가 크다. 경험과 공부, 기술이 필요하다. 나아가 로스팅은 산수 공부가 필요하기에 나 같은 수포자는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거기에 고도의 후각도 필요하고 여하튼 3개월의 과정을 끝냈는데 바리스타 2급 시험을 보라고 한다. 이때만 해도 건방 끼가 살아 있어 “무슨 시험이야”라며 무시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취업을 할 때 자격증이 있어야 면접을 통과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독서 모임과 영화 모임을 진행할 수 있다는 꿈을 가지고 “잘해보자”라는 각오까지 있었는데 문제가 발생했다. 지금 근무하고 있는 직원을 해고하고 그 자리에 내가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직원 해고하기가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그 교회 출석하는 권사이기에 더 말 꺼내기가 어려운 모양이다. 결국 무효가 되었고 배운 기술은 집에서 커피 마실 때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뭐든지 마음이 가면 책을 통해 배우기를 좋아하는 성격이라 커피에 관한 책도 10권 정도 주문해 놓고 읽어가면서 커피와 친해졌다.



이때 알게 된 이름이 우리나라 바리스타 1세대를 대표하는 장인 박이추 선생이다. 몇 년 전 강릉을 여행할 때 안목해변 커피의 거리를 다녀온 적이 있지만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박이추 선생의 ‘보헤미안’은 가보지 못했는데 커피 한잔을 마시기 위해 강릉까지 오는 사람들을 보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동해를 바라보는 풍경이 약간의 사치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가끔은 이런 부유함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장되었던 커피 기술이 빛을 본 것은 박물관에 취업하면서부터다. 폼생폼사를 좋아하기에 제일 먼저 학예사들과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나름 커피 한 잔을 정성스럽게 내리면 여성 학예사들이 감탄한다.
“선생님 이런 커피는 처음이에요”

이때 우쭐거림과 특유의 잘난 척이 조화되면서
“커피는 에티오피아가 원산지인데, 칼디라는 목동이 어느 날 염소들이 커피 열매를 따 먹고 흥분이 되어 뛰고, 소리 내어 울고, 뒷발로 춤을 추는 이상한 행동을 하기에 자신이 본 것을 수도승에게 말했어요. 칼디의 말을 들은 수도승은 악마의 열매라 하며 불에 던졌는데 불에 타며 피어나는 커피 향에 수도승이 반한 거예요. 그때부터 수도승들이 뜨거운 물에 부어 커피를 마시게 되었는데 이것이 커피의 시초랍니다”



개인적으로는 시다모와 예가체프 원두로 내린 커피를 좋아하는데 부드럽고 신맛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하루에 2잔 정도의 커피를 마시며 마음이 여유로운 시간을 갖는다. 커피처럼 가격 편차가 심한 기호식품도 없다. 제일 싼 커피믹스로부터 한잔에 3백만 원 하는 고급 커피도 있다고 한다. 아마 루왁이나, 파나마 게이샤, 하와이 코나 커피는 가격 때문에 일반인들에게는 거리감이 있는 커피지만 박이추 선생은 이렇게 말한다.

“커피 원산지와 볶고 추출하는 방법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져요. 그래서 한 잔의 커피를 ‘어떻다’고 표현하기는 어려워요. 커피는 다양한 맛을 가지고 있어요. 커피를 내리는 사람의 손맛에 따라 다양한 맛을 낼 수 있지요. 이것이 커피가 가진 제일가는 매력입니다.”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창밖을 내다보면 성탱사 친구들이 생각난다. 아내가 베란다를 야외 커피숍처럼 꾸몄는데 봄바람맞으며 커피 마실만 한 공간이 되었다. 거기에 친구들 취향에 맞는 음악도 선곡해 들려줄 수 있고….

김포 쪽으로 지나가거나 거리가 좀 있어도 커피 한잔이 그리워지면 오세요. 종로 지점도 있답니다. ㅎ (주말엔 가족이 있어, 혼나니까 주말엔 종로 지점을 이용하세요  ㅠ)

당신을 위해 기꺼이 커피 한잔을 내리겠습니다. 커피 한 잔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볼 당신의 행복한 얼굴을 보고 싶군요. 난 당신이 오겠다는 말만 들어도 이미 행복하답니다.


배경음악은 마음이 가라앉을 때 듣는 곡

‘Once Upon A Time In The West (Ennio Morricone) cover’입니다.


https://youtu.be/USK1VjV-nO8


매거진의 이전글 나, 꽃을 든 남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