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에 대한 감상.
눈물 시리즈가 생각난다. MBC에서 제작했던 다큐멘터리 시리즈, 아마존의 눈물, 북극의 눈물, 남극의 눈물. 우리 인간이 어떻게 이 지구에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환경적 담론을 담은 이야기들이 영상과 그리고 소리와 함께 녹아져 있던 작품이었다. 딱 부러지게 말하여 주지 않는다. 그냥 보여주는 것, 느끼게 하는 것.
눈물 하면 더 생각나는 것이 있다. ‘악어의 눈물’. 인간이란 동물의 내러티브적 관점, 그리고 상식의 관점이나 본성적 감정에선 눈물이란 극명하게 나뉜다. 기뻐서, 그리고 슬프거나 화가 나서.
기뻐서 눈물이 흐르는 경우는 그 기쁨의 가운데 찰나의 순간에 모든 어려움과 고통들의 과거 순간순간이 주마등(走馬燈)처럼 순식간에 지나가서 울컥하는 순간일 것이다. 슬프거나 화가 나서 눈물이 보여 지는 것은 그 순간의 감정에 나의 육체가 온전히 순수하게 반응 한 것일 뿐.
그러나 이런 모든 것이 진실 되거나 자연스러운 과정이 아닐 수 있다. 연기자들은 연기를 위하여 그 짧은 시간 가운데 눈물을 흘려서 감정몰입을 하고 작품촬영에 들어가기도 한다. 이전에 나온 영화 중 파파로티(2012, My Paparotti)에서는 장호(이제훈 분)가 음악에 감정을 실어서 부르기 위하여 숙희(강소라 분)의 조언을 받아 멜로영화를 계속 보면서 슬픈 감정이 무엇인지 익히는 시간을 가지기도 하는 장면이 있다. 감정-눈물이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라는 것.
이런 자연스럽지 못한 것을 자기의 상황을 모면하거나 방어하기 위하여 눈물을 보이는 행위를 사람들은 악어의 눈물이라 부른다. 그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과학적으로는 이는 슬퍼서 흘리는 것이 아닌 악어의 눈물샘의 신경과 입을 움직이는 신경이 같아서 먹이를 삼키기 좋게 수분을 보충시켜 주기 위한 것이다.
말의 유래는 이집트 나일강에 사는 악어가 사람 잡아먹고 난 뒤, 그 사람의 애도를 위해 눈물을 흘린다는 고대전설에서 이야기가 전래 되었다. 셰익스피어도 ‘햄릿’ ‘오셀로’ 등 여러 작품에서 이 전설을 빗대고 있다. 이처럼 먹이를 잡아서 먹고 거짓으로 흘리는 악어의 눈물을 거짓눈물에 빗대 쓰기 시작하면서 위선자의 거짓눈물, 교활한 정치인의 거짓눈물 등을 뜻하는 말로 굳어진 말이다. 이것은 또한 다른 방향으로는 비형식적 논리에서 상황이나 논리적 관점을 모면하기 위해 감정이나 눈물에 호소하는 방법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악어의 행동은 나의 삶, 생존을 위하여서 진행 된 ‘선택’ 그리고 ‘필수’처럼 보이는 선택이었다. 그것은 그 희생물에 대한 위로와 애도는 아니다. 단순한 아니 더 복잡 미묘한 상황에서 자신의 지금이나 차후 우위를 점하기 위한 정치적인 판단 그리고 선택이다. 예를 들어 강남의 유명한 S교회의 담임목사님은 자신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하여 설교가 끝나고 광고시간에 손수건 없이 똑같이 1부예배부터 4부예배까지 똑같은 타이밍에 4번을 울어서 성도들의 동정을 샀다. 아무래도 위의 상황에 대한 정확한 사실을 접하지 못한 성도들에게 자신의 불쌍함을 어필(appeal)을 하여 조금이라도 자신의 상황적 우위를 점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라는 추측? 이다. 그냥 악어의 눈물이다.
감정이란 것에 논점을 바꾸어 흐리는 이 기술은 예나 지금이나 많이 쓰인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많이 쓰고 나중에라도 사실이 밝혀지면 결론적으로는 사람으로서 신뢰도가 없어지는 것이 되며 그 당사자는 외로워지는 상황이 된다. 순간의 트릭(trick)은 잠시이고 사실(fact)는 영원하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진정한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에 조금이라도 솔직해 지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