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친분이 있는 타 팀 김 과장과 나눈 대화이다. 30대 중반, 아이 하나를 키우는 워킹맘인 김 과장은 스스로 물경력이 될까 봐 두렵다고 했다.
30대 중반이 넘어가면 슬슬 두려움이 엄습할 시기이긴 하다. 아직까지는 그래도 일에 대한 자신감도 좀 있고, 날 알아봐 주는 곳이 있으면 이직할 마음도 있지만 지금까지 내가 했던 일을 되돌아봤을 때 과연 경쟁력이 있나?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그저 주어지는 일을 성실히 했고, 윗사람이 내려주는 일들을 빠르게 처리하면서 분명히 나름 인정도 받았던 것 같은데, 막상 경력기술서에 그럴싸한 한 줄 넣을만한 경력이 없다. 왜 그럴까?
회사 일이라는 게 늘 새로울 순 없다. 정해진 루틴업무가 있고, 나에게 주어진 역할이라는 것이 정해져 있다. 신규 사업, 신규 프로젝트 같은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고, 그저 크고 작은 사건사고들이 매일 반복될 뿐이다. 대기업이라면 순환보직이라는 개념도 있다지만 일반 중소-중견기업에서 보직 변경은 그리 흔한 케이스가 아니다. 대부분 팀에 적응을 못해서, 팀장 혹은 그 윗사람의 눈 밖에 나서 타 부서로 인사이동을 보내버리는 정도이지 않을까.
그렇게 우리는 루틴업무라는 이름에 갇혀버린다. 매달 하는 프로모션 기획, 매일 하는 전표처리, 매일, 매달을 기계적으로 반복하다 보니 어느덧 몇 년이 훌쩍 흘렀다. 이제 내가 하는 일쯤은 눈을 감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해졌다. 전문적인 일은 아니지만 이 일에 있어서만큼은 누구보다 완벽하게 해 낼 자신이 있다. 문제는, 누구라도 세 달 정도면 내 자리를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회사 장점요? 편하잖아요.”
3년 이상 한 조직에 몸담은 사람들에게 회사의 장점에 대해 물으면 이런 대답을 종종 들을 수 있다. 출근에 대한 부담감도 없고, 월요병도 없다. 불만이 있다면 지루하다는 것 정도? 하지만 회사를 재미있게 다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차라리 워라밸이 있으면서 퇴근 후 회사 밖에서 인생의 즐거움을 찾는 게 이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그게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정말로 회사 밖에서 내 인생에 도움이 되는 생산적인 일을 하거나 최소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라도 하고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퇴근 후 집에 오면 소파와 한 몸이 되어 TV를 켜고 SNS 숏폼영상을 넘기며 2시간이고 3시간이고 보내다가 내일 아침 출근 생각에 어쩔 수 없이 자러 들어가고 있지는 않은가?
‘이 정도 업무강도에 이 연봉이면 나쁘지 않다’는 자기 합리화에 빠져버린 30대 후반에서 40대 중반의 직장인은 그렇게 버티기에 들어간다. '버티는 게 이기는 거다'라는 말은 대개 정답일 때가 많지만 준비 없는 버티기는 언젠가 가장 큰 약점으로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40대 물경력으로는 앞으로 10년은커녕 5년도 버티기 힘들지도 모른다. '우리 회사는 괜찮아'라고 막연한 안일함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면 지금부터라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회사는 우리를 절대, 절대로 책임져주지 않는다. 그리고 편안함이라는 가면을 쓴 ‘불안’은 그때 비로소 본모습을 드러내고 우리의 목을 조여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