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애들은 이력서를 노션으로 쓴단다. 잡코리아에 등록해 둔 언제 수정했는지도 모를 내 이력서가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 무슨 이력서까지 그렇게 유난스헙게 하냐고 따져 묻고 싶다. 이력서라면 자고로 가독성 있고 알기 쉽게 적으면 되지 굳이 노션까지 끌고 들어와야 하는 영역인가? MZ는 그렇단다. 링크로 포폴을 만들어 넣고, 배경 컬러도, 사진 한 장도 허투루 넣지 않는다. 나를 충분히 보여줄 수 있는지, 내 능력이 충분히 어필되는지 하나하나 계산해서 광고 카피 뽑듯 이력서를 쓴다고 한다.
회사를 옮길 때마다 다시는 이력서 쓸 일이 없기를, 이곳이 마지막 회사이길 바랐다. 지금 이 회사에 입사했을 때에도 그랬다. 이 정도면 탄탄하고 안정적인 회사라고 생각했기에 할 수만 있다면 이곳에서 퇴직까지 하고 싶었다.
늘 그렇지만 인생이 어디 마음먹은 대로 되던가. 최근 나이대가 비슷한 주변 동료들 사이에서 이력서 업데이트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었다. 회사 경영진의 무능력과 연봉 동결, 각종 복지 중단 등은 조직에 회의감을 가지기 충분했고, 이대로 가다가 결국 인원감축까지 이어질지 모른다는 위기감도 한몫했을 것이다. 나 역시 흔들리고 있었다. 그 상황이 내게 닥쳤을 때 느낄 무력감과 좌절감을 맛보고 싶지 않았다. 결국 나도 이력서를 다시 열었다.
이력서를 앞에 두고 앉으면 나도 모르게 위축된다. 이 정도의 경력으로 괜찮을까? 회사 이름, 직급 다 떼고 시장에 던져졌을 때 내가 매력적인 인재인가?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다 보면 왠지 모르게 뒤숭숭해진다. 어린것만으로도 무기가 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완벽하게 실력 대 실력으로 붙어야 하는 것이다. 상대보다 뒤처지면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더 이력서에 목을 매게 된다.
더 프로페셔널해 보일 수 있는 워딩이 없을까? 내 핵심능력은 뭘까? 경력을 어떻게 보여줘야 할까? 자기소개서는 어떻게 써야 하지?
하지만 사실 이력서라는 게 들여다보면 별 거 없다. 각 직군별로 연차마다 거쳐야 하는 업무가 있고, 그런 기본적인 플로우만 잘 따라왔다면 어디에 앉혀놓든 자기 밥값은 하게 마련이다. 우리가 면접관이었을 때를 생각하면 답은 더 간단해진다. 제 아무리 현란한 경력이 쓰여 있어도 결국 본질은 무슨 일을 해봤는가, 얼마나 기여했는가, 성과는 무엇인가를 보는 것이다. 포장지는 포장지일 뿐, 결국은 알맹이가 중요하다.
지금까지 잘 버텨왔다면 조금 뒤숭숭하더라도, 너무 겁먹을 필요는 없다. 부딪쳐보면 별 거 아니었던 경험을 우리 다 해보지 않았던가. 그러니 나와 같은 보통의 마흔이들이 너무 기죽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