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직장 동료 S는 급여일 이틀 전, 아무 예고도 없이 월급 지급이 늦어진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룹사 10개를 가진 탄탄한 대기업, 그녀가 다니는 계열사의 직원수만 해도 1,000명이 훌쩍 넘었다. 그리고 하루 만에 다시 발표된 회사의 입장은 더 가관이었다. 다음 주부터 희망퇴직 면담을 시작할 예정이며, 퇴사 시 위로금 200만 원에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지만 밀린 월급과 퇴직금은 언제 줄지 모른다는 것이 회사의 입장이었다. 결국 월급 없이 버틸 수 있는 사람은 버티고 아니면 나가라는 이야기였다.
7년 차 이하 주니어라면 고민할 여지없이 퇴사를 선택했을 것이다. 실업급여를 받으며 넥스트를 준비하는 것에 전혀 부담이 없을 것이다. S는 남기로 했다. 지금 당장 회사가 망하는 것이 아니니 일단 자리를 지키고 기회를 엿보기로 한 것이다. 팀장급 이상은 대부분 회사에 남기로 했다는 이야길 전해 들었다. 아마 나였어도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어제저녁에는 갑자기 부모님의 전화를 받았다. 무릎인대가 끊어져 병원에 갔는데 연골이 다 닳아 당장 수술을 해야 한다는 소식이었다. 수술비가 1,500만 원이 넘게 나왔다. 여기에 입원비, 간병인 비용까지 더하면 못해도 2천만 원 가깝게 한 번에 나가야 되는 상황이었다.
직장인 중에 현금 천만 원을 쌓아두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남편과 상의해서 일단 적금을 깨기로 했다.
마흔이 되면 인생 난이도가 갑자기 급격히 상승한다. 직장에서는 날이 갈수록 운신의 폭이 좁아지고, 앞으로 몇 년이나 회사를 다닐 수 있을지 미래는 불투명하다. 아직 갚아야 할 아파트 대출금은 잠실 롯데타워만큼 높아 보이고, 부모님의 노후와 나의 노후까지 생각하면 숨이 턱 막힌다.
며칠 전 회사의 연봉 동결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계약서에는 이전에 없던 한 줄이 추가됐는데, 앞으로 연봉이 동결일 때는 서명 없이 자동 연장된다는 조항이었다. 올해 회사 매출은 마이너스가 확실했고, 내년에도 우리 플러스로 돌아서기엔 불투명한 상황이기에 미리 밑밥을 깔아 두는 것이었다. 계약서에 사인을 하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문득 예전에 들었던 라디오 사연이 생각났다. 남편의 갑작스러운 퇴사로 전업주부였던 아내가 돈가스 가게에서 서빙알바를 하게 되었다. 초등학생 아이가 학교를 마치고 학원에서 돌아오는 시간까지 하루 5시간 정도 일을 하는데, 집에서 버스로 몇 정거장 가야 하는 곳에 일부러 일을 구했다. 혹여 동네 학부모들에게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들킬까 봐 생각한 대안이었다. 그 마음을 생각하니 남의 일 같지 않아 찔끔 눈물이 나왔다.
40대부터는 진짜 실전이다. 자신이 초라해지는 것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서 40대는 사는 게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