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드라마
감독 주연
김도영 구교환, 문가영
줄거리
가장 초라했던 그때, 가장 눈부시던 우리. 고향 가는 고속버스에 올라탄 은호(구교환)와 휴학 후 어디론가 떠날 결심을 한 정원(문가영), 나란히 앉게 된 두 사람은 뜻밖의 인연을 맺는다. 서로의 꿈을 응원하며 의지하던 두 사람은 어느새 일상 깊숙이 스며들어 연인으로 발전한다. 웃고, 싸우고, 화해하며 세상을 다 가진 듯 뜨겁게 사랑하지만, 현실의 벽 앞에 두 사람은 결국 다른 길을 선택하게 된다. 그렇게 10년이 지난 후, 다시 마주한 순간 은호는 정원에게 오랫동안 묻어두었던 한마디를 꺼낸다.
※ 본 감상평은 작품의 해석을 포함하고 있어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관람 전 독자분들께서는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늘 감사합니다.
'만약에 우리'는 2018년에 개봉한 중국 영화 '먼 훗날 우리'를 리메이크 한 작품이다. 원작을 본 적이 없기에, 더욱 영화에 몰입할 수 있었고 공감할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원작이 궁금해지기도 했다. 리메이크의 순기능이라 할 수 있다. 영화는 우리가 직면하였던 현실을 사실적으로 표현하여 관객의 공감과 몰입을 이끌어낸다. 그렇게 관객이 주인공의 서사에 자신을 투영하는 순간, 영화는 ‘빛과 집’이라는 핵심 소재 외에도 치밀하게 배치된 의미들을 비로소 드러낸다.
선풍기
은호의 집에서 두 사람이 동거를 시작하는 날, 은호가 켠 선풍기는 정체돼 있던 공기를 흔들며 두 남녀의 관계 역시 그날부터 회전하기 시작했음을 은유한다.
연애 초반, 은호가 정원에게 선풍기를 쐬어주는 장면은 그의 애정이 어떤 깊이를 지니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열등감에 사로잡힌 그의 마음은 더 이상 정원을 향하지 못하고, 선풍기마저 자신 쪽으로 끌어당긴다. 더 이상 정원을 사랑할 용기도 관계를 유지할 여력도 자신을 치유할 의지도 그 자리에 없다.
이어폰
영화의 중반 은호는 정원과 나란히 누워 이어폰으로 노래를 듣는다. 한껏 팽팽해진 줄은 거리감을 통해 묘한 관계와 호감으로 연결된 두 사람을 보여준다. 하지만 영화의 후반, 은호는 정원과 함께 달리는 버스 안에서 혼자만 이어폰을 낀다. 그렇게 가장 설렜던 추억은 끝내, 가장 쓸쓸한 기억이 되었다.
일자리
은호와 정원은 서로를 위해, 그리고 주어진 현실로 인해 꿈을 잠시 접어두고 일자리를 구한다. 비참하게도 본인의 힘으로 게임을 개발하던 은호는 다른 게임을 베끼는 일을 했고, 건축가가 꿈인 정원은 이미 다 지어진 모델하우스 안내원이 된다. 꿈으로부터 두어 발자국 멀어졌다. 아이러니한 현실 속에서 두 사람이 마주한 감정은 좌절과 허무였다.
‘나’를 위한 하루가 ‘서로’를 위한 하루로 변할수록 피로감과 시련은 잦아졌다. 사랑하는 이가 자신을 위해 희생했다는 미안함과 부담 때문이다. 사실, 초기에는 고마움으로 가득했다. 서로를 배려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고마웠기에 더욱 뜨겁게 사랑할 수 있었고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환경은 그 소소한 고마움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두 사람에게 다가온 작은 파도를 견뎌내면, 큰 파도가 연이어 몰아쳤다. 이내, 깊어진 시련과 모난 감정들은 서로를 망가트리고 무너져 내렸다. 결국 그들은 알게 된다. 이제는 서로가 ‘서로를 위해’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은호와 정원은 영화의 마지막 시점에서 은호의 뒷걸음질을 통해 마침내, 두 사람의 결말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중반부터 이어진 애잔한 서사가 단 한 발자국 물러남과 동시에 끝을 맺었음에 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아버지의 편지
아버지가 정원에게 편지를 남기면서, 영화는 서서히 매듭을 짓기 시작한다. 두 사람과 연결된 아버지를 매개로, 시선은 사랑이라는 단일한 감정에서 벗어나 그들이 함께 보냈던 시절로 옮겨간다. 이로써 이야기는 은호와 정원의 슬픈 사랑담을 넘어, 함께한 시간에 대한 기억의 서사가 된 것이다.
‘만약에 우리’는 누구나 경험해봤을 법한 추억의 산물이다. 그 시절 그곳에서 가장 뜨거웠던 사랑을, 가장 애잔했던 이별을, 가장 우리다웠던 우리를 고이 간직한다. 그리고 남몰래 펼쳐, 스윽 훑고는 조용히 돌아선다.
이 동네 섹시가이로 소문나는 거 아니야?
(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