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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Apr 11. 2017

친구가 되어주는 그 곳, 청파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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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녘 하늘은 아름답다. 퇴근하는 길의 내 마음을 들추어낸듯 세상을 비춘다. 한숨이 아닌, 깊은숨을 내쉬는 시간. 사무실에서의 엉터리 같은 모습을 벗고, '나'로 되돌아가는 이 길은 축복이다. 내딛는 걸음에 기꺼이 미소를 지으며 익숙한 카페로 향한다.


내가 다니는 직장은 숙대입구역과 가까운 곳에 위치했다. 정시퇴근을 할 때면 각 자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여러 대학생들 틈에 끼곤 하는데, 그 틈을 지나다 보면 혼자라는 이유 때문인지 괜스레 외로운 감정이 든다. 사뿐히 걷던 내 주위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온다. 하늘을 감상하던 고개는 땅으로 향하고, 홀가분하던 감정에 외로움이 들이찬다.


카페에 도착했다. 투명한 유리로 삼삼오오 앉아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오늘은 어떤 보따리들을 꽁꽁 싸매고 왔을까. 궁금하지만, 늘 앉던 자리로 향한다.

카페의 이름은 '청파맨션'이다. 여느 곳과 마찬가지로 은은한 조명과 다양한 음료를 파는 카페 이지만, 분위기와 맛 이상으로 특별한 점이 있다. 처음 이 곳을 방문한 날로부터 벌써 1년이 지났다. 관심사가 비슷했던 후배의 추천으로 알게 되었는데, 어느덧 후배보다 나의 흔적이 짙어져가고 있다.


가방을 벗고 카운터로 다가가 자주 먹던 딸기 바나나, 아메리카노가 아닌 후배가 추천해주었던 오렌지 비앙코를 주문한다. 잘 저어 먹으라는 직원의 말에 '감사합니다'라고 대답하는 나. 낯설었던 청파동이 1년 동안의 출, 퇴근으로 가까워지듯, 괴로울 때마다 찾아왔던 청파 멘션은 언제부턴가 나의 친구가 되었다.


친구는, 친구라는 건 눈빛만으로 서로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는 사이다. 애써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 구태여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괜찮다. 알고 있으니까. 상사의 부당한 요구에 화가 났고, 쌓여 업무에 지쳐있으며, 목표가 사라진 삶에 방황하고 있음을 알고 있으니까. 아무렇지 않은 듯, 포근한 눈빛과 따뜻한 몸짓을 보내는 너는, 나의 소중한 친구이다.


줄어드는 음료를 아쉬운 듯 바라보며 생각한다. 나에게는 친구인 이 곳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가족이나 연인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자신에게 필요한, 그 누군가가 되어주는 이 곳. 함께 청파맨션에 들른 이들 또한 즐거운 시간이 되기를, 되었기를 바란다.


친구 곁을 떠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 거리는 여전히 시끌벅적하다. 카페에서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무색할 만큼 혼자라는 외로움에 젖어든다. 사람은 간사한 존재인가 보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갈 때가 다르다는 옛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구나 싶다. 실 웃음이 나온다. 저 멀리, 카페의 반짝거리는 간판이 '안녕'이라고 말한다. '또 만나'라는 작별의 인사를 품은 채,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집 가는 버스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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