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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Jun 09. 2020

흔들리는 돌다리를 건너다

인턴 근무가 끝나면 집까지는 주로 걸어서 간다. 30~40분 정도 걸리는, 굳이 따지자면 지하철 두 정거장 정도 되는 거리이다. 걸어가는 이유는 물론 걷는 게 좋기 때문이다. 상담사라는, 대면하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자기 관리가 중요하다. 상담을 할 때에는 안정된 상태여야 하며, 그게 어렵다면 최소한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는 알고 있어야 한다.


홍제천을 따라 집으로 가는 오후 5시는 나에게 평안을 안겨준다. 친구들과 하천 사이를 넘나들며 뛰노는 아이들, 벤치에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 꽃을 피우는 아주머니들, 머뭇거리며 반려견이 편히 뛰어놀 수 있도록 기다리는 사람들까지, 이 모든 모습을 햇살은 반겨준다. 만나는 사람마다 하나의 장면이 되고, 그 장면을 바라보는 나는 봄꽃이 된 것처럼 수줍게 미소 짓는다.


언제였을까. 비가 내린 날의 오후였다. 나는 집으로 가기 위해 습관처럼 홍제천으로 내려갔다. 하천의 물줄기는 눈에 띄게 거셌다. 인도로 범람할 것 같진 않았지만, 종잇장처럼 가벼워진 요즘의 내가 두려움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버스를 타고 갈까 고민하던 찰나에 마주 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기우와는 다르게 여유로운 걸음과 편안한 표정이었다.


계속 걷기로 결심하고 나아가다가 새로운 난관에 봉착했다. 낮은 지대에 빗물이 고여있었다. 마주 오던 두 아저씨들 또한 난감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냥 지나가기에는 운동화가 다 젖을 것 같고, 되돌아가기에는 제법 많이 걸어왔었다. 갈팡질팡하며 계속 걸어가다가 재미있는 걸 나는 발견했다. 돌다리가 만들어져 있었다. 정성 들여 만들었다 하기에는 크기도 제각각이었고, 길도 고르지 않았다. 그러나 균형만 잘 잡으면 빠지지 않고 건널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마주 보며 함께 웃던 아저씨들 중 한 명이 먼저 출발했다. 중간 즈음에 있던 작은 돌 위에서 균형을 잡는 듯싶더니 이내 신발이 물속에 잠겼다. '아차차차'를 몸으로 표현한다면 저런 느낌이 아닐까 생각했다. 눈치를 살피던 나는 먼저 건너오시라는 뜻을 담아 건너편에서 기다리던 아저씨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째 아저씨는 돌다리 끝에 있던, 젖은 흙을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착지하다가 진한 발자국을 남기고 사라졌다.


드디어 나의 차례가 다가왔다. 나는 과연 어떠한 흔적도 남기거나 담지 않고 건널 수 있을까. 발 앞꿈치 정도 올릴 수 있는 작은 돌 위에 오른발을 올리고, 양팔을 벌리고 균형을 잡다가 잽싸게 왼발로 착지. 그렇게, 나는 무사히 지나치는 듯했으나 집에서 발견했던 바지에 튄 탕물이 격렬했던 그 순간을 대신 설명했다.


만약 돌다리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나는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아마도 버스를 타러 되돌아가지 않았을까 싶다. 양말이 물에 젖었을 때의 감촉을 정말 싫어하니까. 하지만 누군가 만들어놓은 돌다리 덕분에 나는 추억을 새로이 얻게 되었다. 돌을 찾기 위해 주변을 돌아다니고, 적당한 크기의 돌을 옮기기 위해 손에 흙이 묻는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나와 같은 방식으로 이 길을 건넜을 그 사람에게 또한 감사했다.


과연 돌다리를 만든 사람은 무사히 지나갔을까. 신발이 물어 젖었다거나, 흙탕물이 튀었다거나, 가뿐히 넘어갔다거나 하는 구체적인 사실은 알 수 없지만, 허리 숙여 새로운 길을 만든 그의 노고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내일은 또 어떠한 일들이 나에게 감사한 마음을 느끼게 할까. 왠지 모를 기대감에 설레이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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