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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Jul 15. 2020

나의 희망은 사랑이다

며칠 전, 홍제천을 걷다가 새로 지어진 아파트를 보았다. 으리으리한 건물 외관이 마치 고즈넉한 고대 성곽을 보는 것 같았다. 각 층에는 현관에 불이 켜진 집도, 꺼진 집도 있었다. 켜진 집은 감도는 불빛으로 괜스레 따스한 기운이 흐르는 것 같았고, 꺼진 집은 깜깜한 까닭에 차가운 기운이 머무는 것 같았다. 


그러한 집들을 짙은 밤은 포위하고 있었다. 시선이 아파트를 떠날수록 어둠은 점차 깊어졌고, 불이 켜진 집마저도 이내 온기를 빼앗길 것만 같았다. 슬픔이 고조되는 걸 느꼈다. 내 마음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희망'이라는, 남아있던 작은 불씨마저 꺼진다면 나는 무엇에 의지하며 살아가야 할까. 


그렇게, 멀어져 가던 시선은 한 지점에서 멈추었다. 달이었다. 어둠에 빠져있었기 때문일까.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는 줄 모르고 있었다. 달의 입장에서 아파트를 보니 불이 꺼진 집도, 켜진 집도 포근하게 느껴졌다. 뙤약볕 내리쬐는 여름 한낮보다 선선한 밤, 하늘을 바라보는 나의 두 눈은 더욱 반짝였다. 


나는 여태껏 희망이라는 동아줄을 찾아 헤맸다. 버티고, 기다리면 행운이 찾아와 어둠 속에서 허우적대는 나를 구원해줄 줄 알았다. 아니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희망은 다가오지 않았다. 발견해야 했다. 부정적인 마음만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면 탁한 두 눈에 가린 달처럼 희망은 드러나지 않으니까. 


불안하고, 외롭고, 우울한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는 일상을 뒤집어놓았고, 코로나 이전 생활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평범했던 일상이, 결코 평범해지지 않은 나날들은 절망이라는 수렁으로 깊이 빠져들게 한다. 


희망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보이지 않을 뿐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전히 찾을 수 있다. 


요즘 집에서 먹는 밥이 소중해졌다. 소시지와 고기반찬을 좋아하기로 나는 유명하다. 물론, 집 안에서 뿐이지만. 채소나 나물로만 이루어진 식탁을 볼 때면 나는 계란 프라이라도 급히 만들어 식탁에 올린다. 기름을 두른 반찬이 없으면 수저를 들 의지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작되고 집에서 혼자 밥을 먹는 시간이 늘어났다. 근로를 하는 아빠나 쌍둥이 조카를 돌보는 엄마는 여전히 바빴으니까. 나는 끼니때마다 어떤 반찬을 만들어먹을지 고민했다. 소시지를 볶아 먹는 것도 한두 번이지, 식탁에서 매번 만나다 보니 점차 물리기 시작했다. 


소스를 바꿔가며 먹던 소시지는 포장지조차 쳐다보지 않게 되었고, 고기는 애초에 없었다. 계란 프라이마저 식상해질 즈음 나는 다른 반찬들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원래의 나라면 관심을 두지 않았을 콩나물무침과 버섯볶음, 오이소박이를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냉장고에서 꺼내 들었다. 


낯설었던 반찬통들이 익숙해졌을 때, 반찬을 만들던 부모님의 모습을 나는 떠올렸다. 콩나물무침 정도는 금세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다. 물론 다른 반찬들에 비해 손이 덜 갈 수도 있지만, 새벽에 보았던 아빠는 콩나물무침을 만들기 위해 손질하고, 데치고, 양념장을 만들어 무치는 여러 과정을 거쳐야 했다. 


만드는 과정을 되새기며 반찬을 먹으니 새삼 맛있게 느껴졌다. 깨닫게 되었다. 요리는 조리과정도, 재료도 중요하지만, 손맛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서른세 살에 알게 된 게 부끄럽지만, 어떠한 마음으로 요리하느냐에 따라 맛은 크게 달라지나 보다. 엄마와 아빠는 아마도 나누어 먹을 가족을 생각하며 만든 거겠지.


나에게 희망은 사랑이다. 나는 여전히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는 잊지 않고 나에게 사랑을 나누어주고 있어다.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관계는 사랑이 되기도 하고, 절망이 되기도 한다. 나는 때때로 절망스럽기까지 한 일상에서 사랑의 의미를 발견하고 곱씹어보기로 했다.


우리 모두는 소중한 사람이다. 아니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관계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중 적어도 한 사람에게만은 소중한 사람임이 틀림없다. 돌이켜보자.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사랑으로 어려움을 극복했던 경험들이 있다. 이러한 경험들은 느낌으로 남아 우리의 마음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단단히 지켜주고 있다.  


쉬는 시간 종소리만큼이나 자주 들리는 한숨보다 웃음이 점차 번지는 일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또한, 배려하고 존중하며 서로에게 조금씩, 점차 선한 영향을 주었으면 좋겠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사랑이라는 희망을 다시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여러분은 어떤 일상을 보내고 있나요. 괜찮은 시간을 보내고 계실까요? 아니라면 잠시 눈을 감고, 호흡을 고르며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원석 같은 희망을 잠시 찾아보아요. 발견하셨나요? 그렇다면, 정말 다행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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