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를 내러 학교에 갔다. 사범관 안으로 들어가 행정실 근처로 다가갔을 때, 불길한 느낌이 엄습했다. 오전 11시가 다 되어가는데 불이 꺼져있는 건 뭐람. 잠겨있던 문 앞으로 가니 오후 2시부터 근무한다고 적혀있었다. 여유가 생겼다. 해야 될 일들이 많았기에 서류를 내고 곧장 집으로 가려했다. 하지만, 짐이 되어버린 서류를 가지고 3시간을 기다려야만 하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도서관에 가기엔 조심스럽고, 카페에 앉아있기엔 답답할 것만 같아 커피 한 잔을 테이크 아웃하여 도서관 앞 벤치에 앉았다. 나무 아래에 벤치가 있었던지라 날아오는 벌레 때로 인해 자기를 옮기기까지 몇 분 걸리지 않았지만.
사범관 앞 벤치에 앉았다. 햇볕에 그대로 노출되는 자리였지만 날씨가 흐린 탓에 무리는 없어 보였다.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공부를 했다. 책자를 들추어 보며 '분명 어제 본 내용인데 왜 이리 낯설어 보일까'하는 생각을, 기억을 되짚어 볼 때마다 했다. 후덥지근한 듯하면서도 이내 불어오는 바람은 여름 같지 않았다. 뭐랄까. 비가 멈춘 여느 흐린 여름의 해변가 같은 느낌이라면 억지스러울까. 바라보던 하늘에서는 그날의 속초가 펼쳐졌다. 해변가를 걸으며 샌들로 밀려드는 모래에도 불구하고 성큼성큼 걸음을 내딛던 나의 눈가에 자글자글한 주름이 깊어져 있었다는 건 안 봐도 뻔하다. 상상으로의 산책을 이어가던 나는 자연스레 펜을 들었다. 무엇이라도 적어야 될 것 같았다. 발표 자료의 뒷면을 펼쳐 놓고 떠오르는 대로 적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의 상처를 들추어 보기도 하고, 기억력이 떨어져 가는 엄마와의 대화를 생각하기도 하고, 점심 메뉴가 삶은 계란이라고 말하는 나에게 "삶은 계란이라니, 철학적이네요" 하고 대답하던 동료의 진지함을 회상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한 그루를 보았다. 가죽나무였다. 벤치에 앉은 지 2시간이 되어가지만, 가죽나무를 하나의 존재로서 인식하지는 못했다. 그가 끝내 몸을 내 쪽으로 기울이며 나뭇가지를 움직일 때, 비로소 그가 생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살아있었다. 생글한 잎사귀를 매달고서 쑥스럽게 손을 흔들던 그의 모습은 나와 닮은 구석이 많아 보였다. 늠름하게 서 있는 그가 손끝을 떨며 인사하는, 인적이 드문 그의 집에 찾아온 나는 얼마 만에 맞이하는 반가운 손님일까. 애타게 찾아 헤매던, 마음 한편에서 소중히 간직하던 어제의 볕을 꺼내 그를 바라보았다. 눈가에 자글자글한 주름이 어느새 깊어져 있다는 건 안 봐도 뻔하다.
멈추어 서 있던
가죽나무 한 그루
바람결에 몸을
기울이다가
흐린 하늘을
바라보고 있던
나를 발견하고는
쑥스럽게 손을
흔들며 인사한다
우두커니 앉아
잠자코 기다리던
포근해진 나는
기다렸다는 듯
웃어 보인다
수줍은 그의 몸짓에
떨리는 손끝에
흔들리는 눈길로
활짝 갠 눈빛으로
슬며시 인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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