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누군가가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그 순간

by 두근거림

기어코 대학원을 졸업하게 되었다. 학기가 지날수록 졸업은 무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상담 수련 과정도 벅찬데 조교로 근무하면서 논문까지 써야 했으니까. 힘듦의 절정이었던 5학기 때를 떠올리면 가슴부터 저려온다. 우울감으로 범벅이 되었던 이 시기에는 일의 효율성이 많이 떨어졌었다. 멍하니 앉아 있는 시간이 하루 대부분을 차지했기 때문이었다. 일을 하려고 해도 집중하는 시간은 채 10분을 넘기기 어려웠다. '누구에게 온 연락은 없을까?' '재밌는 동영상이 올라왔을까?' 생각하며 딴짓을 했다. 그러다가 다시 일에 손을 대고, 두세 번 양치할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딴짓의 굴레로 빠져들었다.


이런 상태였던 내가 취업을 한다는 게 망설여지기도 했다. 무엇보다 '일을 잘 해낼 수 있을까?'란 질문에 분명하게 대답하기 어려웠다. 위와 같은 집중력 저하는 상담 수련이 과도기에 접어들 때 찾아왔다. 매주 진행하고 있던 상담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고, 상담 슈퍼바이저에게 자문을 받는 과정은 고되었다. 상담자로서의 부족한 점을 발견하게 되는 시간이기도 했지만, '내가 왜 이렇게 했을까?' 하며 스스로를 자책하게 되는 시간이기도 했다. 상담 지식과 경험이 쌓일수록 상담자로서 능숙해져야 마땅했지만, 저마다의 고민을 쏟아내는 내담자들과의 상담은 갈수록 새롭게 느껴졌다. 고민의 유형이 비슷할지라도 그것을 지각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은 모두 달랐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내담자가 나에게는 새로웠고, 그만큼 내담자를 위한 적절한 과정이나 방법을 찾는 일이 어렵게 느껴졌다.


상담뿐만 아니라 논문 작성, 조교 업무, 자격증 공부, 두 번째 책의 출간 준비를 병행하며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지쳐있었다. 하지만 상담 자격증을 따거나 대학원을 졸업하기 위해서는 나를 더욱 몰아세워야 했다. 나는 '조금만 더'를 되뇌며 계속 시도했다. 무엇이든, 그것이 나에게 필요한 일이라면 어떻게든 해내려고 했다. 그러나 퍼낼 에너지가 더 이상 없다고 느껴졌던 내게 '조금만 더'가 먹히지 않는 시점이 찾아왔었고, 일의 효율보다는 시간의 양으로 대부분의 위기를 넘겼다. 이러한 내게 전리품처럼 남은 피로감과 낮은 집중력은 취업 이후에 삶에 도움이 되지 않을 거란 생각이 컸다. 그래서 어딘가에 무턱대로 입사를 한다는 것이 또한 두렵기도 했다.


그러다가 운이 좋게도 상담 수련을 하던 곳에 취업을 하게 되었다. 신분은 직원이었다. 인턴이나 자원 상담사로 근무하며 어깨너머로 배운 일들이었기에 적응하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내가 걱정했던 것은 역시 집중력이었다. '하루 8시간 가까이 근무하며, 많기로 유명한 학생상담센터의 업무를 제대로 소화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인수인계를 받을 때부터 내내 불안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예상외로 선방해내는 스스로를 이내 발견할 수 있었다. 대학원 마지막 학기 때를 떠올려보면 분명 고통스러워할 게 뻔한 일조차 몰입하며 해내는 나를 보며 '이게 무슨 일이지?' 싶은 생각마저 들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집중력이 떨어졌던 그 시기에 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긴장감을 풀 수 있는 누군가와의 시간이었다. 그때의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긴장한 채로 살았다. 상담을 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고, 눈문을 쓰는 과정도 쉽지 않았으며, 자격증 공부나 조교 업무, 그리고 책을 출간하는 일은 눈을 감으나 뜨나 나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나는 내가 의도했거나, 의도하지 않은 채 시작한 일들로 각성된 상태에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 일을 수행하기 위해 극도로 긴장했던 만큼 느슨해지는 시간도 필요했다. 하지만 나는 해내고야 말겠다는 생각을 앞세우며 소중하다고 여기던 시간들을 점차 줄여나갔다. 일에 집중하는 시간이 줄어질수록 내게 필요했던 소중한 시간은 자연스레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내가 굳이 소중하다고 얘기하지 않아도,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좋아하는 누군가와 보내는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여기서 좋아한다는 표현은 단순히 연인과의 사랑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살아가며 많은 사람들에게 호감을 갖는다. 누군가에게 호감을 가지고 난 뒤에는 외부적인 조건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물론 처음 알아갈 때에는 자연스럽게 선입견을 가지기도 하지만, 그 사람에 대한 마음이 커질수록 첫인상의 장벽은 점차 낮아진다. 호감은 점차 사랑으로 싹튼다. 마음에서 떠오르는 언어들을 검열 없이 꺼내도 가만히 알아줄 것 같고, 아무런 말없이 눈빛만 이따금씩 주고받아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특별한 대상과의 시간은 상상만으로도 행복감에 빠져들게 한다.


학생상담센터에서 근무하며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니 우울감이 점차 해소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비록 직원으로서 회사의 환경이나 구조에 익숙해져 가는 일이 스트레스이기는 했지만, 그러한 스트레스조차 나눌 수 있는 동료들이 내 주변에 많았다. 센터에서 만났던 동료들은 대부분 인턴 시절부터 호감을 쌓아 온 사람들이었다. 근무를 하다가도, 점심을 먹으면서, 혹은 퇴근을 하고 그들과 어울리는 상황이 나에게 늘 치유적이지는 않았지만, 내가 괜찮고 적절한 사람이라는 믿음을 갖게 했다. 근무하는 기간이 늘어날수록, 그러니까 동료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쌓일수록 우울감으로 인한 여러 증상과 그중에 하나였던 낮은 집중력이 나아지는 체감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유독 기억에 남는 순간은 반차를 낸 날에 펼쳐졌다. 그날은 엄마를 대신해서 조카들의 하원을 도와야 하는 날이었다. 일곱 살이 되어 유치원 고참 축에 속하던 우준이와 서준이는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을 좋아했다. 하원을 하고 나면 유치원 앞에 있는 놀이터에서 놀고 간다는 소문이 집안에 파다했다. 어린이집에 다닐 때만 해도 서둘러 집에 가기 바빴는데, 새로 사귄 친구들과 함께 논다고 하니 괜스레 뿌듯한 마음도 들었다. 조카들이 어린이집에 다니던 시절에는 하원을 도와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유치원에 다니는 조카들의 하원을 혼자 돕는 일은 처음이었으니 우준이, 서준이와 잘 만날 수 있을지, 놀이터는 안전하게 거쳐갈 수 있을지, 집에서는 그럭저럭 돌볼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점심시간에 퇴근을 하고 집에 있다가 하원하는 때에 맞춰 유치원으로 갔다. 유치원 입구에는 하원을 돕는 사람의 이름을 적는 명부가 있었고, 누나가 유치원 선생님에게 삼촌이 데리러 간다고 미리 말해놓았는지 우준이와 서준이를 데리러 왔다고 하니 곧장 "우준이, 서준이 삼촌 왔어요" 하며 불러주었다. 이윽고 열 걸음 정도 떨어진 모퉁이에서 서준이의 호기심 어린 얼굴이 튀어나왔다. "어, 따끼다!" 외치던 서준이에게 반갑다는 인사를 하기도 전에 "우준아, 따끼왔어! 따끼!" 하는 소리가 이어졌다. 서준이가 교실 안쪽으로 사라지고, 뒤이어 나타난 우준이가 고개를 내밀고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어, 따끼 왜 왔어?" 우준이가 다시 교실 쪽으로 들어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둘은 함께 가방을 메고 신발장으로 뛰어왔다.


우준이와 서준이가 나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오던 그 순간은 내 마음에 보물처럼 저장되어 있다. 나는 조카들이 저마다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뛰어올 만큼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우울증과 불안장애가 의심되는, 또래보다 뒤처진 30대 청년이었다. 독립에 대한 의지도, 결혼에 대한 계획도 없는 나약한 성인이기도 했다. 그래서였다. 새로 알게 된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할 때면 의기소침해하는 나와 마주하고는 했다. 그들은 대부분 번듯한 직장이 있거나, 독립을 했거나, 가정을 꾸렸거나, 보편적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아도 자기만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 비해 이루어낸 것도, 이루고 싶은 것도 뚜렷하지 않았다. 그랬기 때문에 모르던 사람을 알아가기에는 내세울 것이 없어 부끄러웠고, 알고 지내던 사람을 만나기에는 나의 형편이 나아진 것 같지 않아 껄끄러웠다. 하지만, 조카들은 달랐다. 어린아이로서 제한을 두는 게 아니라 인격체로서 존중하기 위해 노력해서였을까. 그저 나라서 사랑해 주는 게 느껴졌다. 그러한 증거가 바로 어깨에서 빠질 듯 배낭을 좌우로 흔들며 다가오던 조카들의 순수한 모습이었다.


나는 여전히 집중력이 저하되는 것을 경험하고는 한다. 한창 심했던 대학원 마지막 학기 때만큼은 아닐지라도, 집중해야 할 시간이 혼자서는 결코 오르지 못할 벽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런 상태가 이어질 때면 연락을 주고받거나 만날 수 있는 누군가를 찾기 시작했다. 메시지를 보내거나 전화를 걸며 사람들과 교류하기 위해 우선 노력한다. 그럼에도 나아지지 않거나, 특별히 교류할 누군가를 찾지 못할 때면 나는 조카들을 만나러 간다. 삼촌 치고는 자주 놀아준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지만, 주변으로부터 좋은 삼촌이라는 호칭을 듣게 되었으니 오히려 만족한다. 이제는 조카들과 함께 놀아주기에는 체력이 많이 달린다. 그래서 조카들이 어떤 놀이를 하고 싶은지 물으면 "낮잠 놀이하자"라고 말한 지가 꽤 되었다. 어차피 못 잘 걸 알면서도 솔직하게 대답해보는 셈이다. 그렇다 보니 요즘은 조카들과 함께 놀 때도 물론 즐겁지만, 놀러 가는 길에서의 마음을 따라갈 수 없다. '오늘은 우준이와 서준이가 어떤 모습으로 나를 반길까?' '오늘도 유치원에서 만났을 때처럼 나에게 힘껏 달려와줄까?' 설레는 마음으로 걸음에 걸음을 더한다.


"따끼따끼, 어서 놀자"

안방에서 좌충우돌하는 조카들을 보며 나는 한 번씩 불을 끈다.

"우준이, 서준이 마을에 밤이 찾아왔습니다"

나의 행동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조카들은 이내 반격한다.

"우준이, 서준이 마을에 다시 아침이 찾아왔습니다"


joy-g74e800d49_1920.jpg Image by dana279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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