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는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즈음 닌텐도 게임기를 구입했다. 친구네 집에 놀러 갔던 조카들이 처음 게임기를 접했고, 꾸준히 갖고 싶다고 이야기해서 결국 사주게 되었다던 누나의 결심은 조카들이 주말마다 '겜돌이'로 변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평일에는 학교와 학원으로 바쁘게 지내는 조카들은 주말이 되면 아침 일찍부터 게임기를 켠다고 한다. 우준이가 "매일이 주말이었으면 좋겠어"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고 하니, 게임에 대한 조카들의 사랑은 포켓몬스터 놀이에 비교할 바가 아닌 것 같았다.
대체로 주말마다 조카들과 놀아주던 나였기에, 우리의 놀이도 자연스레 게임으로 바뀌게 되었다. 홍은동 원조 '겜돌이'였던 나는 조카들이 구입한 어느 게임이든 금세 적응할 수 있었고, 어른이라면 누구나 쉽게 깰 수 있는 단계에서도 조카들은 크게 감탄하며 "역시 삼촌이야" 같은 반응을 보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뭐라고?' 싶지만, 그 당시에는 우쭐한 기분에 더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노력했으니 어쩌면 우리는 삼촌과 조카보다는 친구라는 호칭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마리오 카트>로 시작한 조카들의 게임 역사는 현재 <별의 커비 디스커버리>에 머물러 있다. 조카들이 하기에는 난이도가 어려운 부분도 있고, 가끔은 어두컴컴한 배경에서 험상궂은 악당들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그들은 곧잘 스토리를 깨나 갔다.
이러한 시간들이 쌓여 어느덧 최종 보스를 앞둔 때였다. 커비가 큰 엘리베이터를 타고 보스를 만나러 가는 장면이 비장한 배경음악과 함께 화면으로 나오는데 어른인 나에게도 공포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이때 조카들은 무섭다며 나에게 대신 깨달라고 했다. 나는 내가 직접 깨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아이들이 자신들의 힘으로 게임을 끝까지 깨 보는 경험은 생애 처음일 것이기에, 아이들의 기회를 빼앗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말했다. "우준이, 서준이가 먼저 해보고 그래도 어려우면 그때 도와줄게" 말 그대로 최종 보스였던 악당은 조카들에게 몇 차례 좌절감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자신들의 방식으로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는지 조카들은 한두 차례 실패를 해도 나에게 게임 패드를 넘겨줄 생각은 하지 않았다. 처음보다 두 번째에서 보스에게 더 많은 대미지를 입혔고, 세 번째가 되어 보스를 물리쳤다. 그 이후에 어떤 장면이 나올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지켜보던 조카들의 표정이 또렷이 기억난다. 손에 땀이 났다며 다한증이 있는 나에게 손바닥을 자랑하기도 했다. 이윽고 엔딩 크레딧이 이내 올라갔고,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오자 긴장을 풀던 조카들은 나와 함께 화면 앞으로 나아가 춤을 췄다. 분명, 승리의 춤이었다.
나는 최종 보스를 물리치는 데 직접 기여하지는 않았지만, 해냈다는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었다. 문득 어린 시절의 내가 집에서 혼자 게임하던 순간이 떠오른다. 그때의 나는 혼자였다. 그날도 토요일이었는데, 당시의 나는 초등학교 1학년 즈음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소닉이 나오는 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내가 기억하는 그날에 최종 보스를 물리쳤다. 수 차례의 시도 끝에 엔딩을 보았기에 나는 벅차오르는 기쁨에 어찌할 줄을 몰라했다. 내가 경험했던 최초의 '끝판'이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날에는 부모님이 집에 있지 않았다. 누나도 없었다. 게임에 대해 얘기를 나누거나, 함께 깨나 갈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나에게는 없었다.
"내가 해냈어요!" 하며 엔딩을 함께 볼 수 있는 사람이 내 곁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나는 어쩌면 그 경험을 통해 '어떠한 일이든, 그 일이 다소 어려워 보일지라도 노력하면 해낼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더욱 공고히 하게 되지는 않았을까. 그 당시의, 어두웠던 방에서 TV 화면에 의지한 채 기쁨을 삭히던 나에게도 함께 춤을 춰 주는 '친구'가 있었다면. 하지만 아쉬움을 이내 훌훌 털어버린다. 이제는 그러한 '친구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조카들에게는 오늘, 나에게는 오늘에 이르러서야 끝판을 깼다는 기쁨을 나누었다. 차오르는 기쁨을 어찌하지 못 한채, 누나에게 혼날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 한채, TV 가까이로 가서 우리는 마음을 나누었다. 나는 20년도 더 지난 지금, 어느 순간이든, 그 순간이 비단 슬플 때만이 아니라 기쁠 때에도 함께 나눌 수 있는 누군가의 존재가 우리 삶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우리 오늘 무슨 놀이하지?"
예전에는 자기가 하고 싶은 놀이를 하겠다고 서로 다투던 조카들이었지만 이제는 다르다.
"가위바위보로 정할까?"
"투표해서 정하는 거 어때?"
"뽑기를 해서 나오는 걸로 노는 건 어때?"
놀이를 정하는 것부터가 놀이가 되었고, 이마저도 정하는 게 어렵게 느껴지지만, 뿌듯하다. 조카들이 자신의 마음만 중요하게 생각지 않고, 공평하게 결정하려고 노력하는 자세에 나는 또다시 뭉클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