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물었던가. "요즘 마음이 조금 심란해서요" 큼지막한 배를 입 안 가득 베어 물기 전 나는 말했다. 그 자리는 다른 부서 선생님이 준비한 배 두 개를 둘러싼 동료들과의 자리였다. 오후 일과 시작까지는 10분 정도가 남았었고, 내가 속한 부서의 팀장님도 있었다.
팀장님은 "왜요, 무슨 일 있어요?"라고 물었다. 걱정하는 듯한 눈빛이 시원한 느낌의 배와 함께 마음으로 다가왔다. '괜한 말을 했나?' 하는 생각은 말로 자연스레 이어졌다. "아니요. 다들 그렇잖아요. 심란하기도 했다가, 좋기도 했다가.." 나와 마주 보고 있던 타 부서의 선임이 내 말을 받아주었다. "다 그렇죠. 마음에 저마다 힘든 일 한두 가지씩 품고 살아가죠."
내가 요즘 동료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그 말은 "언제 그만둘 거예요?"이다. 내가 먼저 자주 한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다만, 내 뒤에 앉아 있던 동료가 또 한 번 언제 그만둘지 묻는 나와 주변 동료들을 향해 "수호샘이 자꾸 본인이 그만두고 싶어서 언제 그만둘지 물어봐요!"라며 크게 말했다. 이는 야근을 시작하기 10분 전, '심란'에 대한 두 번째 대화가 벌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 부서에서 제법 경력이 많은 선임은 "무엇 때문에 힘드세요?"라고 내게 물었다. 나는 내가 하는 대체적인 업무가 나의 성향과 맞지 않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선임은 지금까지 그럭저럭 만족하며 근무할 수 있는 자신의 방법에 대해 들려주었다. 선임과의 대화는 즐거웠고 유익했지만, 모험적이고 탐험적인 성향인 그의 조언은 나의 '결'과는 맞지 않는 듯했다.
대화는 다시 내 뒤에 앉아 있던 두 동료와 이어졌다. 동료들 중 한 명은 내게 "현재 하고 계시는 일이 힘들다고 하니, 그러면 어떤 일을 해보고 싶으세요?" 라고 물었다. 나는 쓰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것이 꼭 직업이 되지는 않더라도, 글 쓰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말을 덧붙였다. 지금의 나는 글을 쓰는, 기뻐할 수 있는 순간조차 견딜 체력이 되지 않으며,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가만히 있던 내게 글감들이 연신 찾아왔지만, 이제는 그들이 예전처럼 나의 마음을 두드리지 않는 것 같다고 또한 말했다.
글쓰기는 내게 삶의 전부와도 같다. 내가 여태껏 모은 돈, 경력을 포기하더라도 글쓰기는 결코 포기하고 싶지 않다. 글을 쓰기 이전과 시작한 이후의 내 삶은 엄연히 다르다. 돌이켜보면, 나는 나의 하나뿐인 '글쓰기'라는 친구를 만나고 알아갔던 시간들을 통해 억압해 왔던 마음과 진실로 만날 수 있었다. 그간 그 누구도 내 말을 있는 그대로 들어주지 않았다. 또한, 그대로 들어줄 거란 기대를 갖지 못했다. 하지만 글쓰기는, 그는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편히 해보라며 곁을 내주었다. 나는 그의 곁에 눕기도 하고, 서기도 하고, 걷기도 하고, 울고, 웃고, 손이 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글을 써왔다.
동료들의 따스한 관심을 진심으로 맞기 위해 블로그에 꾸준히 글을 쓰고 있고, 좋은 기회로 두 권의 책을 썼다는 말도 했다. 책을 냈다는 결과가 새로운 직장에서 어떻게 쓰일지 몰라 잠자코 있었지만, 굳이 묻지 않는 데 말할 이유도 없었지만, 내 장래를 함께 고민해 주는 동료들에게 나만의 비밀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작가로 살고 싶지만 녹록지 못한 현실과 취미로라도 꾸준히 글을 쓰고 싶지만 생기지 않는 여유에 대해 동료들은 별다른 말을 해주지 않았다. 다만, 기꺼이 들어주고자 노력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그리고 '여기서 더 말해도 되나?' 생각하면서도 기어이 말하고 있는 스스로를 보며 깨달았다. '역시 고민은 들어주려는 누군가에게 말했을 때 덜어지고, 마음도 가벼워지는구나'
나는 여전히 고민하고 있다. 글을 계속 쓸 수 있는 직업을 갖고 싶다. 그렇지 않더라도 글을 쓸 수 있는 체력과 시간을 확보하고 싶다. 하지만,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나를 글쓰기와 멀어지게 하고 있다. 출근길에 이따금 만나는 창조의 두드림과 설렘은 일적으로 달려드는 누군가들의 뾰족한 마음들로 이내 사라지고 만다. 다음 브런치 활동을 시작한 지도 햇수로 9년에 이른다. 나름 고인물이지만, 성과는 뚜렷하지 않다. 다른 작가들의 글을 읽다 보면 부족한 내 재능을 원망하게 되기도 하고, 남몰래 부러워하기도 한다. 글쓰기는 내게 늘 잘하고 싶고,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일이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들인 노력만큼의 인정을 받지는 못하더라도 오늘도 내가 이곳을 찾은 이유는 나는 글쓰기를, 이걸 진심으로 좋아하기 때문이다. 사랑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아침이 열린다
날마다 눈은 뜨이고
발가락은 꿈틀거린다
미지근한 한 모금 물에
길었던 밤과 화해하고
여행의 문에 들어선다
비좁은 열차 틈에서도
쏟아지는 사람 사이에서도
곱게 감은 두 눈 너머로
마중 나온 햇살의 웃음
숨을 고르며 고요히
그늘과 발맞추어
나란히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