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차림에 아주 서툰 나

너무 늦은 때는 없겠지?

by 마리스텔라

감정이 일렁인다.

불쑥 나타났다가 순식간에 흩어져 사라진다.

그 흐름은 자주 나를 건드리고 그렇게 또 머물러 있기도 한다.

조금씩 가까이 가기로 했다.

가까이 가는 건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되풀이되는 답답함이 쌓였다.

'그러니까 내가 뭐랬어, 그냥 모른 채 해버려.'

습관처럼 다가가는걸 미리 차단해 버리고 선택적 생각만 하다 갇혀버린 꼴이 되지 않았던가.

부끄러운 포기를 선택하려니 시리다.

지금의 맘이 그렇다.

너무 늦어버린 것을 되돌리기라도 하려면 가당키나 할까?

아니 그냥 망각의 틀에 가져다 둘 수만 있다면

그게 차라리 나은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 그랬구나.'그다음은?

더 이상 나아가지 않고 반복되는 꼬리물기는 오랫동안 나를 옭아매었다.

알아차림에서 인정하게 되고 스스로를 달래질 못해 원망만 있었다.

'한 번만이라도 나에게 인정의 끄덕임을 던져준다면 좋을 텐데 왜 그걸 못하는 거야'라며 상대방에게 말도 못 하는 나 역시 이기적이었다는 걸 이제 알았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받아들이기 힘든 그를 이제 그만 던져버리고 잊고 싶다는 절규를 해오며 괴로웠던 긴 시간이 나에게 아주 가까이 닥쳤던 지난 시간이 부끄러워 누구에게도 알릴 수가 없었다.

아니 '그냥 살만해'라고 체념했던 것들의 의존이 겹겹이 쌓여 자존감을 잃어버려 시름시름 무기럭 해져가기만 했다.

최근에서야 알게 된 나를 알아차림의 시작이 이것이다.

누군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결정을 해두고 그 틀에 두는 건 막연함이 부르는 불안의 시작이라고 한다.

그것을 알아가는 것과 인정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그리고 현명한 선택을 하길 바란다고 조언해 주었다.

감정의 유연함을 가지는 것조차 버겁고 그냥 인내로만 견디고 피해버렸던 나는 문을 열어두었다.

열린 문으로

자연스럽게 들어오고

그렇게 머물다가

건드려지게 자유함을 주는 것을 허용하고 맘의 근육을 만들기로 한다.

너무 늦음이라는 건 없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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