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집: 동부의 왕은 누구인가
잠시, 동시대 동부의 상황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갱스터 랩을 대표하는 화려한 스타들이 등장한 90년대 초, 힙합의 중심지는 바야흐로 웨스트 코스트였다. 닥터 드레의 <<The Chronic>>과 스눕 독의 <<Doggystyle>>(1993)이 씬의 대부분을 차지해버렸다. 주도권을 빼앗긴 동부는 다시 기본기부터 갈고닦기 시작한다. MC가 아니라 프로듀서부터 말이다.
21. King Makers
힙합 음악에서 프로듀서의 역할은 빼놓을 수 없다. MC의 랩 스킬만큼이나 비트의 완성도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80년대 뉴욕에 말리 말이 없었다면 힙합의 황금기는 없었을지 모르고, LA에 닥터 드레가 없었다면 G-펑크는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서부의 하드코어한 힙합을 거부했던 동부조차 그 음악성을 인정하게 만든 것이 드레의 사운드였다. 동부의 프로듀서들은 이 갱스터 랩에 대항할 새로운 사운드를 만들기 위해 약속이라도 한 듯 한 장소로 모이게 된다. 맨해튼 한가운데에 위치한 '더 루스벨트 호텔'이었다.
이곳이 동부 힙합의 성지가 된 이유는 '레코드 컨벤션' 때문이었다. 매주 일요일마다 열렸던 이 전시회에는 장르를 불문하고 수천 장의 음반들이 한 자리에 모여들었다. 샘플링을 하는 힙합 프로듀서들에겐 새로운 사운드를 접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고, 이곳은 곧 이들의 공공연한 아지트가 됐다. 이들은 일요일만 되면 새벽 6시부터 줄을 서서 들어가 하루 종일 디깅(digging)1)에 열중했다. 끊임없이 음악을 듣고, 마음에 드는 음반을 구매하고, 다른 아티스트가 고른 것들을 경계하며 지켜보고, 서로의 의견을 나눴다. 당대 최고의 아티스트들이 한 자리에 모여 정기적으로 영감을 교류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무수한 창작의 스파크가 일어나는 일이었다.
한편 비슷한 시기에 새로운 장비가 등장하며 프로듀서들의 디깅 열풍을 더욱 가속화했다. 프로듀서 'Large Professor(라지 프로페서)'가 전파한 첨단의 샘플러 'SP-1200'이 그것이다. SP-1200은 E-mu사가 1987년에 출시한 샘플러로, 전작이었던 'SP-12'의 기능을 보완한 것이었다.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샘플링 시간이었다. SP-12는 기껏해야 1.2초, 업그레이드 모델에서는 5초가 한계였지만, SP-1200에서는 10초로 대폭 확대됐다.2) 이 몇 초의 차이는 프로듀서들이 창의력을 발휘할 여지를 눈에 띄게 향상시켜 줬다.
동부 씬은 새로운 장비와 새로운 아지트를 바탕으로 90년대 힙합의 토대를 찬찬히 다져나갔다. 라지 프로페서를 중심으로 Q-Tip(Q-팁), DJ Premier(DJ 프리미어), Pete Rock(피트 록), L.E.S 등의 프로듀서들이 두각을 드러냈다. 이들은 자신을 양분 삼아 왕위에 오를 슈퍼 스타를 기다리는 킹 메이커들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다섯 명의 대형 프로듀서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는 소문이 뉴욕 시내를 뜨겁게 달궜다. 슈퍼 루키 'Nas(나스)'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1) 디깅(digging): 땅을 파거나 광물을 채굴한다는 뜻처럼, 힙합에서는 새로운 사운드를 찾는 작업을 디깅이라고 한다. 디깅을 통해 찾은 사운드는 샘플링의 재료가 되고 나아가 음반의 완성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디깅으로 어떤 사운드를 찾느냐가 참신한 음반의 밑거름을 결정한다고 말할 수 있다.
2) 늘어났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짧다. 이 10초도 2.5초씩 4개의 패드에 따로 저장해야 했기 때문. 프로듀서들은 곡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이 제한된 기능 안에서 창의적인 방법들을 동원했다. 대표적으로 속도를 빠르게 해서 녹음한 뒤 기계적으로 늘리는 방법이 있었고, 어떤 경우에는 연결 잭을 일부러 느슨하게 꽂아서 특정 사운드가 손실된 채 샘플링하는 방식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