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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leek Nov 01. 2020

Nas

4집: 동부의 왕은 누구인가

22. Nas


나스는 불우한 어린 시절과는 다르게, (어떻게 보면) 힙합 씬 최고의 금수저였다. 그의 첫 번째 앨범 <<Illmatic>>(1994)의 제작에, 앞서 언급한 다섯 명의 스타 프로듀서들이 전부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한 명의 MC에 다섯 명의 스타 프로듀서, 이런 조합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이 앨범은 데뷔 앨범이다. 신인 MC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조건 그 이상에서 <<Illmatic>>이 제작됐다. 동부의 다른 MC들에게 시기와 질투를 한 몸에 받은 것은 당연하다. 물론 나스의 목소리를 듣고 이에 납득하지 않은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가 동부의 사랑을 독차지하게 된 것은 몇 해 전부터였다. 일찍이 라지 프로페서의 눈에 띈 나스는, 라지 프로페서가 소속된 그룹 'Main Source(메인 소스)'의 1집 <<Breaking Atoms>>(1991)에 피처링으로 참여하게 된다. 수록곡 <Live at the Barbeque>의 첫 번째 벌스, 나스의 랩은 말 그대로 곡을 찢어버렸다. 그가 뱉는 라임들은 아주 직관적이면서도 신선했는데, 그가 단 하나의 벌스 안에 쓴 변화무쌍한 라임들은 80년대 라킴의 재림을 연상케 했다.

1)

Street's disciple, my raps are trifle
(거리의 신봉자인, 내 랩은 트라이플)
I shoot slugs from my brain just like a rifle
(난 내 머리에서 나온 총알을 쏴, 마치 라이플처럼)

2)

Verbal assassin, my architect pleases
(언어의 암살자, 내 설계자가 원하는)
When I was 12, I went to Hell for snuffin' Jesus
(내가 12살 때, 난 예수를 죽이고 지옥에 갔어)


이 벌스 하나가 동부의 유명 뮤지션들을 나스의 곁으로 모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몇 해 뒤 탄생한 <<Illmatic>>의 첫 번째 트랙 <The Genesis>의 첫머리를 이 벌스가 장식했다. 흑인 사회에서 힙합이 차지하는 위상, 그리고 그 genesis 즉 '기원'에 관한 이야기. 나스는 이 트랙을 필두로 힙합과 자신의 삶에 관한 스토리텔링을 시작한다.


<<Illmatic>>


<Illmatic>의 나스는 뉴욕의 빈민으로 자라온 삶을 생생하면서도 세련된 언어로 묘사했다. 그는 이야기 안팎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면서 노래하기 때문에, 이야기의 주인공인 동시에 아주 시니컬한 평론가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늘어뜨린 이야기를 적절한 때마다 하나의 문장으로 묶어주는데, 이 함축적인 라임들이 듣는 이로 하여금 적힌 것 이상을 상상하게 만들었다.


I never sleep, cause sleep is the cousin of death
(난 절대 자지 않아, 잠은 죽음의 사촌이니까)
Beyond the walls of intelligence, life is defined
(지성의 벽 너머에, 삶의 정의가 있어)
I think of crime when I'm in a New York state of mind
(난 뉴욕과 같은 마음을 가질 때 범죄를 떠올려)


가장 유명한 트랙 <N.Y. State of Mind>의 한 구절이다. 나스가 잠에 들 수 없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지독한 게토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밤낮없이 일해야 하기 때문에.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는 아무도 믿을 수 없는 게토에선 언제 배신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가 보아 온 게토의 삶은 주류 사회의 상식 밖에 있었다. 하루하루 폭력과 살인, 마약과 배신이 들끓었다. 그래서 머리로 이해하는 지성의 벽 너머에만 진짜 거리의 삶이 있는 것이고, 이를 상징하는 것이 바로 범죄다. 나스는 힙합을, 그리고 흑인 사회를 무조건 비난하는 차별에 대해 자신의 삶과 힙합의 기원을 노래하며 아주 예술적인 카운터 펀치를 날렸다.




1) 트라이플(trifle)은 사소한 일 또는 (케이크, 과일, 크림 등을 층층이 쌓은) 디저트를 말한다. 여기에서는 그의 랩이 트라이플처럼 자신에게는 사소하고 쉽지만 동시에 층이 쌓인 듯 체계적임을 뜻한다(그래서 자신이 뱉는 라임도 라이플의 방아쇠를 당기는 것처럼 쉽지만, 두뇌에서 나오는 똑똑하고 강력한 총알인 것이다).


2) 'my architect(설계자)'가 가리키는 바가 다소 모호하다. 다만 스스로를 '거리의 신봉자'로 칭했기 때문에 자신의 '(사상적) 설계자'를 거리의 삶, 힙합으로 생각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바로 다음 라인에서 예수라는 통상의 신을 죽였다는 것으로 이어진다. 나스는 음악을 접하며 불우한 어린 시절을 이겨냈기 때문에 자신에게 유효한 신은 예수보다는 거리의 힙합이었다. 그런데 그가 10대를 보낸 80년대는 힙합에 대한 인식이 가장 나빴던 시기, 따라서 힙합을 선택한 스스로를 '예수를 죽이고 지옥에 간 언어의 암살자'로 표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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