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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leek Nov 01. 2020

폭동에 가려진 것들

보너스 트랙

3집: 갱스터 랩은 힙합 정신을 망쳤을까

20. (보너스 트랙) 폭동에 가려진 것들


마약상에서 시작해 폭동을 거쳐 '거리의 특파원'으로 인정받기까지, 갱스터 랩을 표방했던 이들은 힙합에서 가장 극적인 이미지 반전에 성공했다. 이들의 거침없는 행보는 심지어는 어떤 숭고한 정신의 산물처럼 비치기도 한다. 하지만 어디에서건 지나친 찬양은 어두운 부분을 가리는 법이다. 갱스터 랩이 이뤄낸 업적에만 몰두하면 반대편에서 희생된 것들을 가늠할 수 없게 된다. 그들 스스로도 그런 것을 원하지는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은 거리의 무법자에서 어느 날 갑자기 인권의 투사가 '되어버린' 것에 가까웠다. 이러한 표현은 N.W.A가 인터뷰에서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갱스터 랩이 갱단을 위한 노래를 만드는 과정에서 탄생한 것처럼, 이들에게도 투쟁적인 이미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 존재한다. <Fuck Tha Police>의 탄생 비화가 대표적이다. 멤버 이지-이는 페인트 볼 총을 가지고 다니며 종종 진짜 라이플인 척을 했는데, 하루는 이 총을 갖고 드레와 함께 고속도로로 가 장난을 꾸미게 된다. 달리는 차에서 창문을 열고 반대편 차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그야말로 극한의 똘끼, 잘못하면 인명사고가 날 수 있는 일을 재미 삼아 했다). 고속도로는 패닉이 됐고 이내 경찰들이 몰려와 둘을 떡이 되도록 팼다. 풀려난 뒤 집에 돌아온 이지-이는 정신이 반쯤 나가 'fuck the police'를 되뇌었고, 이에 영감을 받아 적은 아이스-큐브의 가사가 <Fuck Tha Police>의 초안이 됐다.


한편 LA 폭동에도 가려진 부분이 존재한다. 특히나 인종과 출신을 막론하고 모두에게 치명적이었던 이 그림자는 '폭력에 폭력으로 맞서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됐다. 폭동이 시작되자 일부 흑인들은 도로를 점거하고 지나가는 백인 차량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했는데1), 이들의 목표는 '백인들에게 로드니 킹의 아픔을 똑같이 느끼게 해주는 것'이었다. 운전자를 끌어내려 사정없이 구타했고 도로에 피칠갑이 된 사람들이 방치됐다. 또한 시위대는 폭동을 확산시키며 도로의 상점들을 약탈했는데, 그 표적에 정확한 분별이 없었다. '백인'에 관한 분노가 명분이었지만 이때 삶의 터전을 잃은 것은 다수의 이민자를 비롯해 흑인들도 있었다.


그중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것은 생뚱맞게도 한인이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었다. 하나는 전부터 있어왔던 한인과 흑인 간의 인종 갈등이다. 한인 사회에도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적 시선이 있었고 이는 이미 '두순자 사건2)'으로 표면화돼 있었다. 여기에 폭동이 시작된 후 경찰이 늑장 대응을 하면서 한인 지역의 피해를 사실상 방치하기까지 했다. 한인 소유의 상가들이 불에 타고 있는데도 아무런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 터전을 지키기 위해 한인 스스로 총을 든 일화는 이미 유명한 얘기다.


백인 사회에 대한 분노가 같은 소수자에게 향했던 것은 아이러니다. 그 책임을 찾자면 여럿이 있겠지만, 힙합을 다루는 이 글에서는 폭력성을 표방한 힙합의 한계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분명 갱스터 랩이라는 힙합의 장르는 주류 사회에 의문을 던지고 흑인들을 각성시키는 데에 큰 역할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극단으로 경도되기 쉬운 무자비한 폭력의 형성에 일조했다고도 볼 수 있다. 비단 폭동이 한인에게 집중됐던 것뿐만 아니라, 이 폭동에 휩쓸려 희생된 수십여 명 중에는 진실로 폭동과 관계없는 이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힙합이 폭력성, 선정성 논란에서 항상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다.




1) LA의 대표적인 두 갱단, '크립'과 '블러드'가 폭동을 위해 연합했다. 폭력의 정도가 매우 심했을 것은 자명하다. 초반에는 비폭력을 외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시위가 폭동이 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2) 두순자 사건: 1991년 LA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던 한인 두순자가 흑인 고등학생 라타샤 할린스를 절도범으로 오해해 총으로 살해한 사건을 말한다. 라타샤는 오렌지 주스를 가방에 넣고 계산을 위해 카운터로 향했는데, 두순자가 가방에 넣는 행위만을 보고 절도범으로 오인, 몸싸움 끝에 방아쇠를 당겼다. CCTV 화면을 보면 학생의 손에 돈이 들려 있어 구매 의사가 확실히 있었던 점, 두순자의 총격이 다툼 중에 발생하지 않고 상황이 종료된 뒤 편의점을 나서는 학생의 뒤를 겨냥했던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당시 한인 사회에도 흑인에 대한 차별이 강하게 있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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