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Dre
3집: 갱스터 랩은 힙합 정신을 망쳤을까
18. 폭동에서 혁신으로
LA 폭동이 있기 전 N.W.A가 수익 분배 문제로 해체됐기 때문에, 닥터 드레는 솔로 활동을 할 다른 회사를 찾아야 했다. 'Death Row Records(데스 로 레코즈)'는 '진짜 갱'을 표방한 만큼 그가 음악적 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최적의 레이블이었다. 여기서 만난 갱단 출신의 뮤지션들은 드레의 음악에 리얼리티를 더해줬다. 드레는 갱스터의 정체성에 펑크 사운드를 결합하며 'G-Funk(Gangsta Funk, G-펑크)'라는 장르를 앨범에 담아냈다.
하지만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LA와 뉴욕을 돌며 앨범의 판매처와 곡을 틀어줄 방송사를 수소문했지만 아무도 받아주지 않았다. 폭동의 여파로 인종차별과 갱스터 랩이 화두에 오르면서 주류 미디어들이 모험을 피하게 된 것이다. 폭동 직후에 갱스터 음반을 발매한다는 것은, 뮤지션뿐만 아니라 해당 음반사가 정부와 대중에게 중지를 날리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때 뜻밖에도 드레에게 먼저 제안을 보내온 별종이 있었다. 훗날 닥터 드레와 영혼의 파트너가 된, 'Interscope Records(인터스코프 레코즈)1)'의 'Jimmy Iovine(지미 아이오빈)2)'이었다.
지미 아이오빈은 이미 성공한 음향 엔지니어이자 프로듀서로, 그 유명한 비틀스의 'John Lennon(존 레논)'이나 U2의 'Bono(보노)' 등과 작업한 천재였다. 90년대에 들어서는 독립 음반사에 대한 꿈을 키워 인터스코프 레코즈를 설립, 스스로 사업가가 되어 새로운 음반을 물색하고 있었다. 하지만 태생이 사업가보다는 프로듀서였기 때문에 '잘 팔리는' 음반보다는 '색다르고 뛰어난' 음반을 찾았고, 덕분에 평단의 평가에 비해 수익이 대단하지는 못했었다. 이때 마침 전해 들은 것이 드레의 음반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음악성과 대중성을 다 갖춘 사운드는 흔치 않은 법이다. 지미는 단번에 드레의 음반이 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완벽한 사운드'라고 확신했다. 이런 그의 판단은 꽤나 의외였다고 할 수 있는데, 우선 지미는 힙합에 있어서 문외한이었고3), 게다가 백인이었다. 백인 사업가가 폭동 직후에 갱스터 랩에 투자한다는 것은 대충 들어도 앞뒤가 안 맞아 보인다. 하지만 지미는 자신의 귀와 드레의 실력을 정확히 판단해 냈고, 결국 <<The Chronic>>이 발매됐다. 결과는 폭발적이었다.
이 앨범에는 여러 타이틀이 있다. 서부의 G-펑크 스타일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첫 번째 앨범이자, 갱스터 랩으로서 빌보드 최상위권(200 차트에서 3위까지 올랐다)에 오른 최초의 앨범이며, 'Snoop Doggy Dogg(스눕 도기 독)'의 화려한 등장을 알린 앨범인 동시에, 메인 베이스에 샘플 대신 R&B의 자생적인 리듬을 결합시킨 최초의 힙합이기도 했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러한 평가들이 공통적으로 앨범의 음악성을 향한다는 점이다. 이 앨범은 갱스터 랩의 아이덴티티를 누구보다 강하게 드러냈음에도4) 대중과 평단에 음악적으로 인정을 받으며 일찍이 명반의 반열에 올랐다.
<<The Chronic>>의 성공은 흑인 문화의 지위를 파격적인 방법으로 바꿔놓았다. 흑인 사회의 가장 어두운 부분을 내세워 가장 유행하는 음악으로 만들었으니 말이다. 이들이 그리는 갱스터의 삶은 위험한 것이라기보다 매력적이고 닮고 싶은 모습이었다. 'Chronic'이라는 제목이 이를 잘 담고 있는데, 흑인 사회를 절망에 밀어 넣은 코카인 '크랙'이 기존의 갱스터에 대한 이미지였다면, 보다 건전하며 예술계에서 환대받아온 대마초 '크로닉5)'이 갱스터의 새로운 정체성이 된 것이다. 이는 차별의 이유를 문화의 트렌드로 전환시켰다는 점에서 혁신적이라 할 만하다.
한편 이 세련된 혁신과 동시에 보다 거칠고 정치적인 움직임도 있었다. 기존의 갱스터 랩이 어두운 현실과 반항의 정신을 갱스터라는 캐릭터에 옮겨 담은 것이었다면, 그보다 직접적인 방식으로 투쟁을 노래한 단 한 명의 스타가 등장한다. '2Pac(투팍)'이다.
1) Interscope Records(인터스코프 레코즈): 현재 한국의 아이돌 '블랙핑크'의 미국 소속사이기도 하다.
2) Jimmy Iovine(지미 아이오빈): 드레에게 있어서 혁신의 동반자라 할 수 있다. 후에 음향기기 회사 'Beats By Dr. Dre(Beats Electronics)'를 공동 설립했고(빨간 b가 그려진 바로 그 헤드셋 회사), 이 회사는 2014년 애플에게 30억 달러, 한화로 무려 3조 원에 인수됐다. 이로써 드레는 힙합 역사상 최초의 억만장자가 됐다.
3) 지미는 한 인터뷰에서 당시엔 N.W.A.가 누군지도 잘 몰랐다고 말했다. 사실 드레와 계약하기 1년 전에 투팍이 인터스코프에서 1집을 발매한 바 있지만 지미가 이에 깊게 관여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4) 심지어 <The Doctor's Office>라는 트랙은 처음부터 끝까지 남녀가 정사를 나누는 소리로... 이뤄져 있다. 갱스터 앨범에서 종종 등장하는 컨셉이다.
5) Chronic(크로닉): 대마초를 뜻하는 은어 중 하나다. 물론 대마초는 한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마약류로 분류되며 불법이다. 하지만 여타 마약과 비교해 유해성이 현저히 낮다는 연구 결과는 과거부터 숱하게 제기되어 왔다. 또한 대마초가 미국 사회에서 마약으로 분류된 배경에는 유해성이 아니라 인종차별이 그 중심에 있었다. 다큐멘터리 <그래스 이즈 그리너>에서 이를 자세히 다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