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집: 동부의 왕은 누구인가
24. Notorious B.I.G.
B.I.G.! 서부에 투팍이 있었다면, 동부의 대표는 누가 뭐라 해도 'Biggie(비기)1)'였다. 감히 말하자면, 이 문장에는 별다른 설명이나 수식어가 필요 없다. 비기의 1집 <<Ready to Die>>(1994)는 나스의 <<Illmatic>>이 나온 지 약 반년만에, 진정한 왕이 누구인지를 보여주듯 화려하게 등장했다. 한 평론가는 나스와 비기를 이렇게 비교했다. 나스가 자신의 삶을 날카롭게 보여주는 '이기적인 천재'라면 비기는 삶을 사람들과 공유하는 '포퓰리스트'라고.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나스는 자신의 가사에서처럼 '언어의 암살자'라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그의 음악은 힙합이 갖고 있는 거리의 모습만을 아주 잘 벼려 낸 날카로운 칼 같았다. 반면에 비기는 가장 힙합스러운 것에서부터 아주 일상적인 것까지 모두를 포용하는 왕의 면모를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특징을 잘 보여주는 것이 1집 <<Ready to Die>>에 수록된 트랙 <Ready to Die>와 <Juicy> 사이의 간극이다. 앨범명과 동일한 <Ready to Die>는 제목에서처럼 과격함과 비장함을 온몸에 두르고 있는 곡이다. 가사의 수위를 보자면 서부 갱스터 랩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아주 과격하다. 동부 힙합은 초기 갱스터 랩을 주류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갱스터 랩이 크게 성공함과 동시에 음악성 또한 향상되면서 자연히 그 영향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일각에서는 동부 스타일의 갱스터 랩인 '마피오소 랩(mafioso rap)2)'이란 장르도 생겨났다. 비기의 앨범도 이 연장선에 있었다.
반면에 <Juicy>는 아주 세련됐다. R&B 스타일의 싱잉으로 시작되는 비트와 비기의 독백, 후에 박자마다 떨어졌다 흐름을 타듯 미끄러지는 강렬한 라이밍. 비기는 바닥에서 성공까지 자신이 밟아온 삶을 낭만적인 노래 위에 실어서 우리에게 들려준다.3) 다음은 모두 <Juicy>의 가사다.
You never thought that hip hop would take it this far
(넌 힙합이 이렇게 멀리까지 갈 거라고 생각 못했겠지)
Now I'm in the limelight cuz I rhyme tight
(이제 난 화려한 조명 아래 있어, 제대로 된 라임을 하거든)
Born sinner, the opposite of a winner
(죄인으로 태어나, 승자의 반대말)
Remember when I used to eat sardines for dinner
(저녁으로 정어리를 먹던 시절을 난 기억해)
거두절미하고 그냥 들어보길 바란다. 이 단순해 보이는 문장들 사이에서 그가 어떻게 리듬을 만들어 내는지! 힙합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더 와닿을 수도 있다. 비기가 들려주는 목소리, 톤, 마디마다의 그루브, 강세, 호흡을 포함한 모든 것이 당신이 '힙합 음악'을 상상할 때에 가장 앞에 떠오르는 원형에 가까울 것이니 말이다.
나스와 우탱, 그리고 비기까지, 동부는 걸출한 스타들을 배출하며 힙합 문화의 중심지로 여전히 건재함을 알렸다. 특히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비기의 등장은 서부 갱스터 랩의 유행과 균형을 이루며 힙합 문화의 고공행진을 이어 줄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양쪽의 아이콘인 투팍과 비기는 경쟁자라기보다는 서로 활발히 교류하는 절친한 동료에 가까웠다. 하지만 불행한 사건은 순식간에 다가왔다.
1) Biggie(비기): Biggie Smalls(비기 스몰즈)라는 별칭의 줄임말이다.
2) 마피오소 랩(mafioso rap): 1980년대 말 'Kool G Rap(쿨 G 랩)'이 처음 선보인 힙합의 하위 장르. 서부 힙합에서 갱스터라는 정체성을 내세웠던 것처럼, 곡 안에 마피아의 정체성을 강하게 드러낸다. 그 방식으로는 갱스터 랩과 같이 스스로 곡 안에서 마피아가 된 모습을 묘사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실제 마피아나 영화적인 캐릭터를 등장시키기도 한다. 비기의 2집 <<Life After Death>>도 대표적인 마피오소 랩 앨범에 해당한다.
3) 한편 <Juicy>가 세련됐다는 말은 조금 모순적이다. 비기는 1집을 준비할 때에 <Juicy>와 더불어 그의 대표곡인 <Big Poppa> 녹음을 탐탁지 않아 했다. 싱잉이 들어가거나 펑크 사운드가 결합되는 것은 당시로선 한물간 것에다가 진짜 힙합 같지 않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프로듀싱했던 'Puff Daddy(퍼프 대디)'의 감은 정확했다. 이 두 곡은 시간이 흘러 비기의 곡 중 가장 세련되고 아름다운 곡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