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집: Rest In Peace
힙합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여러 변곡점들이 있었지만, 이보다 더 비극적인 전환은 없었을 것이다. 투팍과 비기의 죽음, 당대 뮤지션들은 이 사건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너무나 갑작스러웠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런 사실이 둘의 죽음을 앞당겼는지도 모른다. 전조는 얼마든지 있었기 때문이다.
25. 동부와 서부의 갈등
바람 잘 날 없는 이 어지러운 힙합의 역사 안에서, 우리가 앞서 주목했던 흐름이 있다. 자체의 폭력을 근절하려 했던 모습, 아프리카 밤바타의 '줄루 네이션'과 KRS-원의 '폭력을 멈추자' 운동이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힙합의 여러 시도들 중 하나에 머물렀을 뿐, 확고한 법칙이 되지는 않았다. 누군가의 희생을 계기로 메시지를 전하려 했지만 그리 강하지 않았고, 이내 잊혀 버렸다. 게다가 이 폭력의 연장에 갱스터 힙합이 있었다는 점은 90년대에 있을 비극을 암시하는 첫 번째 징후가 됐다.
동부의 뮤지션들은 힙합의 발원지로서 갖는 자부심이 상당했다. 그들은 힙합이 언제나 뉴욕의 것이고, 뉴욕 밖으로 수출할 문화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서부를 중심으로 그들의 자생적인 힙합이 등장한 것은 다소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뿐인가, 미국 전역을 뒤흔든 힙합의 유행은 동부의 것이 아니라 서부의 갱스터 힙합이었다. 이 구도가 굳어진 90년대에 와서는 동서부 간에 이러한 인식이 깔리기 시작했다. 동부에게 '서부는 진정한 힙합이 아니다'라는 인식, 그리고 서부에게 '동부는 서부를 무시한다'는 인식 말이다.
먼저 방아쇠를 당긴 것은 동부였다. 1991년, 'Tim Dog(팀 독)'이란 신인 MC가 <Fuck Compton>이란 싱글을 발표했다. 서부 힙합의 고향인 컴튼을 신랄하게 욕하는 곡이었다. 팀 독은 특히 갱스터 힙합을 대표하는 N.W.A를 겨냥했고, 뮤직비디오에는 N.W.A의 멤버 이지-이와 똑 닮은 인물이 등장해 팀 독에게 된통 당하는 모습이 연출됐다. 이건 명백히 선전포고나 다름없었다.
"Why you dissing Eazy?"
("왜 이지를 디스해?")
'Cause the boy ain't shit
(그 꼬마는 아무것도 아니니까)
Chew him with tobacco, and spit him in shit
(담배랑 같이 씹어서 똥에다 뱉어줄 거야)
이 곡을 기점으로 많은 디스곡들이 발표됐다. 다들 쉬쉬하던 동서부 간의 경쟁의식이 표면 위로 드러난 것이다. 이러한 일종의 지역주의는 힙합이 자신의 출신지에 대한 강한 소속감을 바탕으로 하는 장르였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실제로 80년대에는 뉴욕 내 브롱크스와 퀸스 사이에 디스전이 있기도 했다. 한쪽은 힙합의 발원지로서, 다른 한쪽은 뉴스쿨의 중심지로서 자부심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동서부 간의 갈등은 조금 지나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여기에는 힙합의 논란을 돈벌이로 포착한 언론들의 부추김이 큰 영향을 끼쳤지만, 결정적인 한 방은 따로 있었다. 서부의 상징 투팍이 뉴욕 한복판에서 총에 맞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