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내 남은 잎사귀 떨궈내니 어느새 따가운 여름이다.
햇살 아래 푸른 잎 하나둘 꺼내어 부지런히 가지에 얹는다.
오늘은 오랜 시간 함께 해온 낡은 담장과 이별한다.
내가 커가는 데로 묵묵히 세월을 지켜준 담장은 제 몫을 다했다.
망치와 드릴 소리에 겁이 덜컥 난다.
튼튼한 새 담장을 만나려면 굵은 가지 몇 개를 아프게 내주어야 한다.
어떤 가지가 잘려나갈까? 두 눈 질끈 감고 마음의 준비를 한다.
그가 다가온다. 두리번두리번
큰 톱을 내려놓더니 쓱싹쓱싹 손이 바쁘다. 시간이 걸린다.
휴... 살았다.
새 담장 위로 잘라져 나갈 뻔한 가지를 조심스레 내려놓는다.
모두 제자리다.
배려로 얻은 삶,
푸른 그늘 드리워 화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