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고산 옹기마을을 걷다>>

by 박은아

<<외고산 옹기마을을 걷다>>


외고산 옹기마을에 들어서자마자 낮은 기와지붕 집들이 옹기 굴뚝을 올려놓은 듯 이어져 있었다. 넓게 펼쳐진 흙 마당에는 빛바랜 황토색이 따스하게 스며 있었고, 크고 작은 장독대들이 줄지어 앉아 있었다.


늦은 오후, 아직 햇볕이 남아 있는 시간이었지만, 마을은 고요했다. 사람의 발자국 소리보다 바람이 더 묵직하게 길을 장악한 듯했다. 그 고요 속에서 나는 옹기마을을 천천히 걸었다.


옹기는 단순한 그릇이 아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의 밥상과 삶을 지탱해 온 “숨 쉬는 그릇”이다. 물을 담고, 장을 발효시키며, 생명을 이어가게 한 웅대한 도구였다. “숨 쉬는 그릇”이라 불리며 음식이 발효되고 보존되는 마법 같은 과정을 품어온 옹기는, 그러나 이제 플라스틱, 유리, 스테인리스에 밀려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다. 외고산 옹기마을은 이런 사라져 가는 전통을 붙잡아 두려는 마지막 보루처럼 느껴졌다.


한때 수많은 가마 연기가 하늘을 덮었던 국내 최대의 옹기 생산지. 마을 전체가 거대한 야외 전시장처럼 옹기의 역사와 생활을 원형에 가깝게 보여준다. 장독 모양의 조형물이 길목마다 세워져 있고, 도예 체험장이 곳곳에 자리 잡아 있다. 잘 정비된 길은 시간만 허락한다면 하루 종일 천천히 머물며 풍광과 전통의 색을 음미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 길을 함께 걷는 이는 많지 않았다. 몇 발자국 건너면 텅 빈 마당뿐이었다.


마을 안 유일한 카페 앞에 섰다. 4시 50분. 들어설까 망설이던 찰나, 직원이 “5시에 문 닫는다”라고 말했다. 하루의 영업을 그렇게 일찍 끝내야 하는 현실. 카페는 사람들로 북적여야 할 공간인데, 이곳에서는 사람이 없어 문을 닫아야 했다. 그 모습이 마을의 쓸쓸한 현실을 대변하는 듯해 마음이 아렸다.


잘 꾸며진 마을, 흙 속에서 피어난 예술처럼 빛나는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옹기 전시 건물들, 그리고 예쁜 풍경. 하지만 그 아름다움을 함께 나눌 이는 없었다. 사라져 가는 것들을 붙잡으려는 노력은 눈에 보였지만, 현대의 일상과 연결되지 못할 때 그것은 단순한 전시로만 남는다.


옹기마을을 거닐며 문득 무명의 음악가로 살아가는 내 삶이 겹쳐졌다. 수고스럽게 무대를 준비하고, 전통과 기술과 정성을 다 걸어도 객석이 비어 있으면 그 울림은 흙벽에 부딪혀 사라진다. 시간을 들여 잘 가꿔도, 찾는 이가 없다면 결국 잊히고 만다. 그러나 그 자리에는 누군가 반드시 지켜야 할 자취가 있다. 옹기마을의 조용한 풍경 속에서, 나의 작은 존재가 이 오래된 전통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깨달음이 마음을 울렸다. 옹기는 점점 사라져 가지만, 여전히 한국인의 식탁과 삶 깊은 곳에서 숨 쉰다. 무명의 음악가 역시 큰 목소리를 내지 못할지라도, 음악 없는 삶은 늘 허전하다. 사라질 듯 희미해 보이지만, 곳곳에서 끈질기게 살아 숨 쉬는 것들이 있다.


수십 년 전, 이곳 외고산에 모여든 장인들은 굴뚝에서 피어나는 연기와 흙, 불, 바람으로 삶을 빚었다. 전국 옹기의 절반을 만들어내던 전성기를 지나, 이제는 조용히 명맥을 이어가는 몇 채의 가마만이 남았다. 포토존, 박물관, 아카데미관 사이를 잇는 걷기 좋은 길들은 내 삶의 지난한 연습 시간과도 닿아 있었다. 사람의 발길이 줄어든 이곳의 고요와 적막은, 객석이 가득 차지 않은 무대에서의 공허함과 같았다.


하지만 소박한 숨결이 모여 시대를 이어가듯, 옹기마을도 누군가의 작은 방문으로 무너져가는 전통을 단단히 버텨낸다.


옹기는 흙으로 돌아가며 자연과 순환한다. 나 역시 음악을 만들고 글을 써 내려가며, 이름 없는 순간에도 누군가의 마음에 닿기를 바란다. 시간이 지나면 내 흔적도 흙으로, 음악으로, 추억으로 돌아가겠지만, 이 자리에 서서 삶과 역사를 생각하는 지금, 나는 옹기처럼 순간순간을 살아 숨 쉬는 존재가 된다. 외고산 옹기마을의 텅 빈 마당과 닫힌 카페, 사라져 가는 옹기의 빛깔 속에서 느껴진 쓸쓸함. 그 안에는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픔만이 아니라, 나 또한 이 전통의 한 조각임을 깨닫는 감동이 있었다.


사라질 듯 이어지는, 그러나 누군가 반드시 지켜내야 할 아름다움. 그 울림을 안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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