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탄다.

(작가의 계절-봄)

by 고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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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는 말을 듣기 어렵다.


미세먼지, 장마, 태풍, 폭설 이런 이야기는 하면서도 정작 계절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덩달아 '계절을 탄다'는 말도 듣기 어렵다. 내 대학시절 사람마다 타는 계절이 있었다. 그 덕에 나도 '어느 계절을 타냐?'는 말을 여러번 들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무슨 계절을 타는지 알 수 없었다. 여자는 봄을 타고, 남자는 가을을 탄다고 하는데, 나에겐 모든 계절이 다를 것이 없었다.


그리고 몇 해가 지났다. 지나보니 알게 되었다. 봄에 설레었다. 꽃에도 설레었고, 바람에도 설레었고, 설레인 덕에 사랑에 빠지기도 했다. 이대로 끝날 수 없다는 가을의 쓸쓸함 보다는, 무언가 시작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함이 좋았다. 좋아하는 것들이 가득한 봄이 좋았다.


산 속에 피어있는 진달래.

가로등에 비친 커다란 목련.

가지마다 비집고 나오는 밝은 연두의 새잎.

펄펄 날리는 벚꽃.

겨울과는 다른 냇가의 물소리

땅에서 올라오는 봄바람 냄새.


무엇보다 나에게도 새로운 것이 일어날 것같은 설레임이 좋다.

나는 봄을 탄다. 그래서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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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B7Djj9ctXrU



=========<이하 발췌>


<미야모토 유리코>

수많은 창문이 5월 저녁을 향해 열려 있다.


5월은 가까운 골목길에도 있다. 집 담장을 따라 오른쪽으로 한 번, 또 한 번 돌면 수줍은 5월 보물이 사람 눈을 피해 가로놓여 있다.


붉은 빛을 띤 초록, 노란빛이 도는 초록, 푸른빛을 띤 초록, 부드러운 은빛이 도는 초록 등등 갖가지 초록이 자아내는 청순한 향기로움이며 무게감이며 찬란함이 어우려져 일제히 감각에 넘쳐흐른다. 고귀하도다 푸른 잎 어린잎에 어리는 햇빛.


<스스키다 규킨>

초봄에 오는 비는 차갑다. 또 장맛비는 너무 우울하다. 하지만 그사이에 낀 늦봄 비는 밝고 쾌활하며 따뜻함으로 가득 차서 은빛으로 반짝인다. 초봄 비는 말없이 세상을 적시고, 이맘때 비는 소곤소곤 소리를 내며 내려온다.


청개구리는 광대처럼 달랑 옷만 입은 채로 어디라도 나가고, 달팽이는 성지순례처럼 자기 짐을 몽땅 싸서는 등에 짊어지고 나간다. 두 녀석 다 마음껏 비를 즐기고 맛보며 노니느라 여념이 없다. 우물쭈물하다가는 비가 언제 그칠지 모를 일이다.


<오가와 미메이>

부드러운 바람이 얼굴을 훑고 지나갈 때마다 마음속 오래전 기억이 되살아난다.


얼굴을 봐도 기억나지 않는 게 당연하지, 머릿속에 있는 그 사람은 언제나 젊은 모습으로 헤어지고 나서 조금도 나이 들지 않았으니까.


살아 있는 동안 언젠가는 산에 오를 기회가 있으리라고 막연히 여겼던 것이 후회스럽다. 지금은 모든 게 다 늦었다는 기분이 든다. 이제껏 그저 어렴풋이 의식만 했던 죽음이란 존재가 요즘은 뭘 보든 눈에 항상 따라다니는 느낌이다.


재화를 모으는 사람이 있어야만 지상의 부가 보존되고 또 언젠가는 부와 인연 없던 사람 손에 넘어간다니, 덧없는 인생의 묘미가 아닐까.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의 나이를 생각하기에 이른다. 늙은 매화나무 한 그루가 소중히 여겨주는 은혜에 보답하고자 올해도 꽃을 한가득 피워냈는데, 유독 마른 나뭇가지가 더한층 연민의 정을 자아낸다.


<하세가와 시구레>

어젯밤 하늘을 지나간 발 빠른 바람은 지금 어디서 불고 있을까.

이 들판에 부는 산들바람이 교토 하늘도 색칠하는 걸까, 생각에 잠겨 바라본다.


지금 내 주변에는 열여섯 봄을 보내며 제 입술 색에도 마을 들뜨는 로맨틱한 소녀들이 있다.


<다카무라 고타로>

고드름은 춥다는 표시가 아니라 따뜻해지기 시작했다는 표시다. 보통 사람은 고드름 그림을 보면 추위를 느끼겠지만, 산사람은 고드름을 보면 '어, 벌써 봄이구나'하고 생각한다.


이런 글을 쓰는 사이에도 계절은 빠른 걸음으로 다가온다. 기차 창문에서 여행객이 보는 사과꽃의 청아한 아름다움은 그야말로 꿈같다.





https://blog.naver.com/pyowa/222646859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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