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보고 지하의 추억이 떠올랐다.
나는 간척지와 염전 사이에서 살았다. 나의 시야를 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것이 넓었다. 흑백티비에는 우리동네에는 없었던 2층건물, 안내양, 전화기, 승용차, 신호등, 소파, 책상, 축구공 같은 것이 가득 보였다. 모든 게 궁금했다. 무엇보다 2층에 올라가면 어떤 느낌일까 궁금했다. 그건 그저 다른 세계의 이야기였다. 다른 종족의 이야기였다.
1987년. 어쩌다 서울에서 살게 되었다. 2층짜리 빌라가 가득한 동네였다. 이리저리 안내받아 땅 아래로 내려갔다. 땅속에 사람이 산다는 사실에 놀랐다. 땅을 파내 30센치의 창을 만들었으니 집은 완전히 지하실이었다. 낮에도 불을 끄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칠흑이었다.
환기시스템은 당연히 없었으므로, 온통 쾌쾌했다. 슬금슬금 기어다니던 바퀴는 불을켜면 순식간에 사려졌다. 하수구 없는 싱크대 옆에는 허드렛물이 담기는 커다란 저장고가 있었다. 더러워진 물이 가득차면 모터로 품어 올렸다. 물을 빼낸 자리에는 까만 곰팡이가 가득했다. 땅위로는 재래식 공용화장실이 있었다. 그렇게 다른 종족으로 살았다.
그러다, 1층으로 이사갔다. 햇빛이 들어왔다. 서북향이지만 부엌을 거쳐 햇빛이 들어왔다. 그것만으로 대단했다. 밖과 유일하게 연결된 부엌 창은 철망만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여름이 되면 모든 벌레가 날아 들어왔고, 겨울이 되면 모든 것이 얼었다. 부엌에 있는 배수구는 배수구라기 보다는 구멍에 가까워서 언제나 쥐가 다녔다. 구멍위에 무거운 돌을 올려 놓았지만 학교에 다녀오면 돌은 구멍 밖으로 밀쳐나 뒹굴고 있었다. TV의 세상과 다른 아이들의 일상은 나에게 여전히 다른 종족의 일이었다. 그래도 석유곤로에서 가스레인지로 바뀌었을때, 연탄으로 찬물을 데우는 기계를 샀을 때 행복했다.
반지하로 이사왔다. 창으로 열면 땅 위로 멀리 하늘이 보였다. 집안에 수세식 화장실이 있었다. 드디어 세상으로 조금 나온, 다른 사람들과 같은 방식으로 살게 되었다. 조금씩 같은 종족이 되어가는 느낌이었다.
그 이후에도 반지하로 이사갔지만, 더 높아진 반지하로 이사갔지만, 방이 두개에서, 세개로 이사갔지만 이제 더 이상 충격적인 감흥은 없었다. 물론 그동안 나의 부모님은 최선을 다해서 삶을 헤쳐오셨을 것이다. 살아보니 그건 눈물겨운 일이다.
반지하에 살았던 대학때까지 나는 영원히 아파트에 살지 못할 거라고 직감했다. 그건 계획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었으므로 계획할 필요도 없었다.
다행히 지금은 아파트에 살고 있다. 그리고 뭔가 열심히 계획을 세우며 살고 있다. 그만큼 고민할 수 있는 여건이 된다는 얘기다. 최소한 마음의 여유가 있다는 얘기다. 물론 내가 계획한대로 이루어지는 건 거의 없겠지만, 계획할 수 있는 정도의 여건이 된 것이다.
지금도 어느 곳엔가 그때의 나와 같은 어린 친구들이 있을 것이다. 많을 것이다.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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