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자리 잡는 비법

by 고길동

지난 번에 올린 '가위바위보에서 이기는 비법'이 나름 반응이 좋았다.


네이버 블로그(가위바위보에서 이기는 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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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두었던 나만의 비법 하나를 또 꺼낸다.

바로 '도서관에서 자리 잡는 비법'이다.


'가위바위보 이기는 비법'과 똑같은 말로 시작해 본다.


먼저, 이건 누구에게 배운 것도 아니고, 학문적 기반을 두고 있는 것도 아니다.

어디까지나 나의 경험과 뇌피셜에 따른 분석이 유일한 근거다. 끝까지 읽어보시라 효과가 있을테니.



나는 우연한 기회에, 도서관 생존본능을 통해, 도서관에서 자리맡는 비법을 알게 되었다.

그 비법을 25년간 사용하고 있는데, 뉴턴의 역학법칙과 같이, 정확히 들어맞고 있다.

나는 지금도 어느 공공도서관이건, 교보문고, 영풍문고와 같은 서점에서건 자리잡는 고민을 해 본적이 없다.


젊었을 때 누구나 그렇듯이, 나는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났다.

매학기 5학점씩 F를 맞을 때는 말할 것도 없고, 공부하기로 작정했을때도 늦게 일어났다.

밤에는 왠지 자기 아까웠고, 일찍 잔다한들 아침에는 역시 일어나기 어려웠다.

따르릉 시계를 사서 간신히 1시간 일찍 일어난 날은 도서관에서 하루종일 졸았다.


'아침형 인간'이란 애시당초 나에겐 가당치 않은, 범접하기 어려운, 고상한 신세계였던 것이다.

그래서 과감히 포기했다. 그리고 새로운 다짐을 했다.


눈 떠질때까지 잔다.


눈은 언제나 9시가 넘어야 떠졌다. 아침을 먹지 않아도 중앙도서관에 도착하면 10시쯤이었다.

너무도 당연하게 '자리가 없었다'. 가방을 메고, 빈 자리를 찾아봤지만, 찾는다고 없는 자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저절로 메뚜기가 되었다. 도서관의 여러자리를 퍼덕거렸다.

새로운 자리에 내려앉으면, 책을 펴기도 전에 '제 자린데요'라고 말하며 나를 쫓아내었다.

그럼 푸드득 거리며 다른 자리로 옮겨 뛰었다. 도서관 메뚜기의 전형이 되었다.

이렇게 공부를 할 수는 없는 거였다.


운동을 하면 굳을 살이 베기듯이, 메뚜기 생활을 하면서 낯이 점점 두꺼워져 갔다.

이제는 자리 주인이 와도 민망하지 않았다. 서두루지도 않았다. 누구나 그 정도는 기다려 주었다.

엎드려 자고 있는 나를 깨워도 당황하지 않고 품위있게 자리를 비켜주었다.


메뚜기의 경력이 쌓여가자 점차 도서관의 생리를 알게 되었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 청춘이건 인생의 가장 설레는 시기 아닌가. 열심히 공부하기 어려운 시절이다.

그래서 책과 가방만 공부하는 자리가 많았다. 공부하는 자리도 수업에 들어가면 3시간은 오지 않았다.

맡아 놓은 자리도 많았고, 두 자리 차지하고 공부하는 사람도 많았다. 도서관에서 데이트 하는 친구들 자리는 말할 것도 없었다. 찾아보면 책만 있는 자리는 널리고 널렸었다. 그 자리를 찾아 공부하면 되었다.

아주 간단한 원리다.


빈 자리에서 공부하면 된다.


문제는 자리 주인이 언제 올런지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것만 안다면 도서관 자리걱정은 끝이었다.

주인이 돌아오지 않는 자리는 어디일까. 빈자리를 이어받아 하루종일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어느날 그 비법을 알아내었다.

일단 수험생들이 앉는 책상은 피해야 한다. 그들은 수업도 없고, 약속도 없고, 데이트도 하지 않는다.

열공생들은 칸막이 없는 책상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책상에도 찾아보면 좋은 자리는 있다.

무엇보다도 칸막이 없는 책상에 앉아야 자리의 주인 성향을 파악할 수 있다.


먼저, 왠지 오지 안을 것 같은 자리에 자리를 펴고 앉는다. 혹시 앉자마자 옆자리 사람이 '여기 자리 있는데요' 말해도 주저할 필요가 없다. 품위있고 당당하게 '오면 비킬께요'라고 말하고 책을 펴고 당당히 공부한다. 자리 주인이 나타나면 책을 들고 가장 가까운 빈자리로 옮겨 공부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른 책상으로 옮기지 않는다는 거다.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 책상을 옮기지 않는다. 수업에 다녀와 내 책이 치워있어도 책상은 옮기지 않는다. 다른 책상으로 옮기는 순간 다시 책상의 8자리 주인의 성향을 다시 추리해야 한다. 한 책상에서 두번 정도만 메뚜기하면 오지 않을 주인자리를 알게 된다. 주인이 수업에 들어갔는지 아닌지도 알게 된다. 그렇다. 내가 깨달은 '도서관 자리 잡는 비법'은 아주 간단한 것이다.


메뚜기는 멀리 날지 않는다.


그렇게 나는 느즈막히 도서관에 나와 여유있고, 평온하게 공부했다.

그렇게 중앙도서관을 수료했다.


돌아보니 나 때문에 애틋한 도서관 데이트가 방해되었던 커플이 있을 수 있겠다.

아침에 일찍 나와 자리잡았던 순진했던 남친님께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남친님이 내 욕을 하면서 여친님과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었을 수도 있겠다.


그리운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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