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돌아, 무엇이 되고 싶니? 저는 아치가 되고 싶어요.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 / 서현)(2/4)

by 고길동

https://blog.naver.com/pyowa/222875715103


학창시절, 예술작품은 교과서로만 볼 수 있었다. 대학시절에도 예술작품은 책으로만 봤다. 김홍도의 풍속화도, 겸재의 인왕제색도도, 레오나르도 다빈지의 모나리자도 책으로만 봤다. 자금성도, 개선문도, 자유의 여신상도, 블루모스크도 책으로만 봤다. 기껏해야 도서관 1층 도록실에 가서 커다란 도판으로 봤다. 도판으로만 봐도 붓칠을 볼 수 있어 조금 더 감동적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역시 책이었다.


국립박물관에서 김홍도의 풍속화를 보고 나는 너무 놀랐다. 작은 그림인 줄은 알았지만, 너무나 작았다. 손바닥보다 조금 컸다. 풍속화에 대한 예찬과 분석글을 많이 보았던 나는 꽤 실망했다. 김홍도의 군선도가 클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그저 병풍정도지 않겠는가로 짐작했다. 그런데 무려 5.8미터나 되었다. 압도적인 스케일에 관객은 완전히 장악된다. 크기만큼 단원도 공을 들여 그렸으므로 구도와 세세한 기교를 파고든다해도 풍속화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이후부터 동양화건 서양화건, 예전 그림이건 현대의 그림이건, 도판의 크기를 꼭 찾아본다.


설명과 논리로는 전달되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물성과 크기다. 크고 작음은 본질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논리는 말하겠지만, 개선문과 독립문이 주는 감흥은 다를 수밖에 없다. 하늘에 별이 가득 떠 있을 때의 압도적 자연은 그 자체로 감동을 준다. 직관과 경험의 세계는 설명되지 않고, 설명할 필요도 없다.


벽돌의 거친 질감, 철근의 뚝심, 돌의 묵직함, 콘크리트의 자유로움, 투명한 유리와 반사되는 빛은 재료의 질감이다. 건축물의 크기, 내부의 동선과 공간, 건축물의 배경은 크기다. 우리는 인간이므로 인간을 기준으로 대소를 판단된다. 분명 크기만으로 생기는 아름다움과 감동이 따로 있다. 크다고 다 아름다울 순 없지만, 크면 감동받을 가능성이 조금 더 있는 듯하다.


로마인들은 벽돌을 쌓아 공중에 띄우는 방법을 발명해냈다. 바로 아치다. 벽돌이 중력을 이겨낸 것이다. 스페인 세고비아 수도교는 서기 50여년경 만들어져서 지금까지도 우뚝 서있다. 어떠한 접합장치 없이 벽돌만으로 30미터를 올렸다. 중력을 이겨낸 벽돌이 2000년 가까이 우뚝 서있다. 그 자체로 감동적이다.



0ccnqoinsnu71.jpg 스페인 세고비아 수도교, AC 50년경, 전체길이 728미터, 최고 높이 30미터, 접합방식이 전혀 사용되지 않음


20141119000313_0.jpg 무동, 김홍도, 27*22.7cm, 보물 527호
image_readtop_2022_225986_16469000874970819.jpg 군선도, 김홍도, 132.8*575.8cm, 국보 13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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