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 / 서현)(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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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소유권은 없었으리라.
어느 순간부터 인간은 소유권을 만들어냈다. 그것은 배타적인 권리였으므로, 모으는 재미가 남달랐으리라. 물려 줄 수 있으므로, 늙어 죽을 때까지 욕망하면서 시간가는 줄 몰랐을리라. 관리가 불가능한 것은 소유할 수 없으므로, 귀하고 소중한 것이지만 소유권을 주장할 수는 없었다.
제도가 발전하면서 사람들은 관리할 수 시스템을 갖추기 시작했다. 관리가 시작되자 많은 것들이 소유권으로 변해갔다. 갯벌, 해수면, 호수, 물고기 잡이, 산림, 채굴, 지하, 공간, 이야기, 소리, 서체 모두 사고 파는 대상이 되었다. 소유권자는 다른 사람들이 쓰는 걸 막을 권리가 생겼다. 누구나 공짜로 쓸 수 있고, 누구도 관리하지 않는 물질은 시간이 지날수록 사라져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다행히, 빛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비친다. 부자의 어깨에도, 가난한 자의 어깨에도 똑같이 떨어진다. 너무나 소중한데도, 너무나 공평하다. 공평하면서도 누구에게나 아름답게 비친다. 산사의 석등은 차분하면서도 풍요롭다. 빛은 그대로 있지 않는다. 시간과 계절이 움직이면 순간에 상응하는 빛을 만들어낸다.
건축가는 빛을 다룬다. 빛이 그림자를 배경으로 사용하고, 그림자는 빛을 끌어들여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지나는 거리에서 건축물의 빛과 그림자를 감상해 본다. 어느정도의 솜씨인지, 꼭 그렇게 처리했어야 했는지 상상해 본다. 걸어가는 나의 위치에 따라 변하는 빛의 각도와, 늘어지는 그림자를 느끼며 피식 웃어도 본다.
너무나 다행히도 빛은 무료이며, 엄청난 부자라해도 겨우 나와 같은 빛을 쬘 수 있을 뿐이다.
포스코 강남사옥에 가봐야겠다. 혼자서 벽이 되어 보겠다는 유리의 꿈을 보고 싶다. 유리를 매단 인장력의 팽팽한 긴장을 느껴고 싶다. 시간에 따라 변하는 빛의 각도를 즐길 것이다. 투명과 불투명을 반복하며 투과와 반사를 조율하는 유리의 질감을 느껴보고 싶다.
다행히도 빛은 누구에게나 공짜다.